‘팔레스타인’ 계기로 더욱 급진화된 미국의 MZ세대 [임명묵의 MZ학 개론]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기성세대와 비판적인 MZ세대 대립 구도 뚜렷 청년층,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계를 일종의 ‘검열’로 받아들여

2024-05-24     임명묵 작가

얼마 전 대학원 연구실에 갈 일이 있어 서울대 캠퍼스를 찾았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인문대로 올라가는 길에 눈에 띄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 축제 기간에 동아리들이 운영하는 간이 상점이 설치되는 연못 앞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여러 개의 팔레스타인 국기가 보였다. 유대인이나 무슬림이 많지 않은 한국의 대학교 안에서 팔레스타인 농성 텐트를 보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한국의 대학교에도 팔레스타인 지지 텐트가 설치되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서구 선진국 세계의 일원으로서 한국에도 영어권 사회의 여론 동향에 매우 민감한 집단이 나타났고, 이들은 영어권의 이슈를 한국에도 소개하는 데 매우 열심인 경향이 있다. 그 말인즉슨, 한국의 팔레스타인 지지 농성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의 운동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월 미국의 대학가는 그야말로 ‘팔레스타인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스라엘 규탄 집회의 기세가 엄청났다. MIT, 컬럼비아대, UC버클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수의 명문대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대가 무수히 많은 텐트로 ‘텐트촌’을 만들어 농성을 펼치고 일부 건물도 점거할 정도였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경찰이 본격적인 진압을 시작해 5월에는 시위의 기세가 조금 가라앉았지만, 학생 시위가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미국은 다른 모든 국가가 이스라엘을 비판할 때도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이스라엘의 혈맹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의 대학가에서 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불붙게 되었을까?

4월30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시티 대학생들이 친팔레스타인 시위 행진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美 Z세대의 이념, 기성세대보다 더 진보적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여론의 막강한 지지다. 우선 미국 공화당의 경우는 설명하기 매우 쉽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주요 기반으로 삼는다. 이들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성경의 땅’인 이스라엘에 문화적으로 강한 애착을 갖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이 성경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미국 민주당의 경우 기독교 정신보다는 자유주의 이상을 따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비판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미국 사회에서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유대인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기 때문에 공화당 못지않게 이스라엘과 연대가 강하다. 네타냐후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이스라엘 우익 정권에 불만을 품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팔레스타인 지지’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어쨌든 이스라엘이 아직은 중동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리버럴한’ 국가라는 점도 작용한다.

미국은 이처럼 정권교체에 따른 리스크를 질 필요 없이 초당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여론을 오랫동안 형성해 왔다. 그렇기에 미국 대학가에서 갑작스럽게 번진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강한 충격을 준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도보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기성세대와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MZ세대’의 구도가 매우 뚜렷하게 관찰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왜 우리 젊은 학생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편에 서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갑론을박이 한창인 상황이다.

우선 여기에는 MZ세대, 그중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출생한 Z세대의 이념이 기성세대보다 더 진보적, 혹은 좌파적이라는 점이 근본적으로 작용했다. 현재 서구권 청년층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넘어 성(性) 평등, 인종 평등, 기후 정의 등의 의제에서 훨씬 더 진보적, 심지어 급진적이라 부를 수 있는 여론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 특히 인종 평등은 히스패닉 인구 비중이 25%까지 높아지고, 백인 비중이 50%로 떨어지면서 커다란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2020년에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간 선례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Z세대는 자신들의 주요 의제인 ‘미국의 인종 평등’을 ‘전 세계적 인종 평등’과 ‘탈식민’으로 확장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물론 기성세대는 이를 ‘미국 국내의 급진주의를 미국 외교정책으로 확대하라’는 위험천만한 주장으로 보았다.

 

틱톡 중심으로 ‘가자지구 참상’ 영상 공유

하지만 미국 기성세대의 반박, 예컨대 이스라엘이 미국 안보 지형에서 갖는 중요성이나 하마스의 테러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청년층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미국 MZ세대, 특히 Z세대들이 자신들만의 소통 채널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는 일찍이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라는 대학살로 이어진 역사 때문에 반유대주의 표현을 몹시 민감하고 위험한 것으로 경계한다. 따라서 대형 뉴스나 신문을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는 물론이고 페이스북·유튜브 등 대다수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장 철저히 규제하는 사안 중 하나가 반유대주의다.

그런데 청년층으로 갈수록 이런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계를 일종의 ‘검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미국 청년층은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온라인 플랫폼, 중국의 틱톡에서 급진적인 이스라엘 비판부터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미국 언론 지형에서는 금기시되는 주제를 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통 창구가 갈라지면 서로 의견이 같은 사람끼리만 교류하게 되어 논의 구도가 양극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틱톡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미국의 Z세대가 ‘가자지구의 참상’과 ‘경찰의 학생 진압’ 영상을 활발히 공유하며 자신들의 여론을 더욱 급진화하는 흐름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에서 청년층의 갑작스러운 급진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1960년대에 베트남전 반대와 흑인 민권운동을 전개하면서 대학가를 급진화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록 음악과 히피 문화로 대표되는 새로운 청년 문화와 정치적 급진주의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반작용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기성 문화를 모두 타도하자는 청년 운동이 너무 거세지자 미국 사회는 피로감을 느꼈고,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커졌다. 그렇게 베트남 전쟁에 빨려들어간 민주당은 청년층의 지지를 상실해 국내 정책 수행에도 빨간불이 켜졌고, 급진적 청년 운동의 결말은 역설적으로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되었다.

68세대가 베트남전을 통해 겪은 경험을 MZ세대도 팔레스타인을 통해 겪게 될지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시기상조다. 그러나 이를 심상치 않은 흐름으로 보고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급진 청년 운동이 가장 거셌던 1970년대는 미국의 대외 활동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안보가 가장 위험해졌던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상원에서도 통과된 틱톡 강제매각법이 눈에 띈다. 미국의 규제하에 놓이게 된 틱톡에서 미국 MZ세대의 급진주의는 순치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명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