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세상’에 사는 말들은 행복할까 [김지나의 그런데 말(馬)입니다]
고립돼 생활하는 말들, 사회성 결여돼 ‘문제 행동’ 보일 수도 말을 대하는 승마장의 진심은 마방에서 나타나
프랑스 알자스로 일주일 간 승마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벨몽이라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먹고 자며 말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겪은 승마 문화는 한국에서와 많이 달랐다. 가장 눈에 띄게 차이가 났던 것은 바로 말들이 지내는 환경이었다. 90마리의 말을 데리고 있다는 그 승마장에서는 거대한 방목장과 드넓은 초원에 말을 풀어놓고 지내게 했다. 말들은 하루 온종일 삼삼오오 모여 풀을 뜯어 먹었다. 어린 망아지는 따로 마련된 작은 방목장에서 어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에게 방목은 매우 중요하다. 신선한 풀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 외에도, 즐겁게 몸을 움직이고 다른 말들과 어울리는 시간으로서 많은 이점을 준다. 보통 승마장에서 말이 ‘운동’을 하러 나온다는 것은 훈련을 하거나 승마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태우는 일을 의미한다. 사람으로 치면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이다. 가로세로 길이가 4m에 미치지 않는 작은 마방에서 하루 종일 홀로 지내다 정해진 운동 시간에만 잠시 밖으로 나오는 생활이 ‘안전’할 수는 있겠으나 그게 꼭 ‘행복’하다고 할 순 없을 테다.
말들의 생존에도 ‘사회성’은 필요하다
말은 원래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었다. 비록 사람에 의해 가축화되고 생존해나가고 있지만 무리와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성은 인간을 포함해 어떤 동물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다. 고립돼 다양한 외부 환경을 접해보지 못한 동물들은 사소한 자극에도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소위 말하는 ‘문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동물이기에 더더욱 사회성을 길러줘야 하는 것이다.
말들도 당연히 함께 지내는 동료들을 기억하고 알아본다. 승마장을 옮기게 돼 새로운 말들을 만나게 되거나 늘 같이 지내던 친구 말들이 어떤 이유로 사라지게 되면, 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경주퇴역마 ‘나이키’는 불법 승마장에서 지내던 시절 옆 마방에서 지내던 동료 말이 죽어 지게차에 실려 나가는 것을 직접 봤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나이키는 지게차만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말들이 장애물을 넘는 등 운동을 하고 있으면 유심히 바라보기도 한다. 나이키와 같은 승마장에 있는 ‘보배’는 나이키가 주인과 함께 여러 가지 도구를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것을 옆에서 몇 번 보더니, 나이키보다 훨씬 빠르게 습득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시각적인 자극도 말에게 좋은 공부가 된다. 그래서 시합장에서는 말이 장애물에 미리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일부러 가까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같이 운동하는 말이 높은 장애물을 뛰어 넘으면 덩달아 동요해서 자신 없어 하던 것도 갑자기 곧잘 따라하기도 한다.
마방의 벽을 조금만 낮춘다면
보통의 한국 승마장에서는 방목을 한다 해도 초지가 아닌 흙이 깔린 마장에 풀어주는 정도가 최선이다. 다른 말들과 함께 방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로 싸우거나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승마장 운영을 하다보면 그럴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는 승마장이 있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말들을 방치하는 승마장이 있다. 마방에 작게나마 개별 방목장을 만들어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게 하거나, 마방 간 벽의 높이를 낮춰서 말들이 동료의 존재를 인식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반면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 예를 들어 로비나 락커룸, 샤워실을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말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마방이나 방목장은 폐허와 다름없게 내버려두는 곳들도 적지 않다.
승마장을 방문하게 되면 화려한 외관에 현혹되지 말고 마방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지 확인해보길 권한다. 그 승마장이 말을 대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운동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는지, 감정과 생각이 있는 생명체로 존중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