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억씩 적자’ 벼랑 끝에 선 병원들…“최악의 경영난”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비상경영체제 돌입 경희의료원 “급여 지급 중단·희망퇴직까지 검토” 병원 경영난에 신규 간호사 발령까지 일시정지

2024-05-08     정윤경 기자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와 보호자가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석 달째로 접어든 의료대란에 ‘비상선언’을 선포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전공의 등 의료진 부족으로 외래·수술 건수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아 온 대학병원들은 급여 지급을 중단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가 집단 사직한 2월 말 이후 서울시내 대형병원인 ‘빅5’는 하루 평균 10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전공의 집단 사직 직후인 2월 2주 차부터 한 달간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238억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빅5는 줄줄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은 기존 5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1000억원으로 늘렸다. 세브란스병원은 의사 직군을 제외한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무급휴가뿐만 아니라 빅5 중 최초로 희망퇴직 신청도 받는다. 빅5가 아닌 서울 소재 대학병원도 경영난에 허덕이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3월부터 일찌감치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경희의료원은 무급휴가 시행, 보직 수당·교원 성과급 반납, 운영비 삭감 등 자구책을 마련해왔으나 매일 발생하는 수억원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다. 오주형 경희의료원장은 지난달 30일 교직원에게 “개원 이래 최악의 경영난으로 의료원의 존폐 가능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오 원장은 “현재 상황이 이어질 경우 개인 급여 등 비용 지급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측된다”며 “당장 올해 6월부터 급여 지급 중단과 더불어 희망퇴직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수도권 대학병원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취재에 따르면,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경상국립대병원은 의료 대란 이후 하루 평균 2억5000만원 적자를 내고 있다. 희망자에 한 해 무급휴가까지 받는다. 도내 유일한 국립대병원인 제주대병원은 코로나19로 인한 환자 수 급감에다 전공의 집단 사직까지 겹치면서 올해 재정적자만 6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대학병원은 전공의 등 의료진 부족으로 외래·수술을 대폭 줄여왔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달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의료대란 전보다 약 40~50% 줄었다. 또 다른 빅5인 삼성서울병원도 기존 대비 병상은 60∼70%, 수술은 50% 아래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대란 전보다 수술 건수를 절반 이상 줄였다는 비수도권 대학병원의 관계자는 “의료진 복귀 없이는 대형병원이 만성 적자에 시달릴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국가에서 운영 예산을 지원해 주는 등 사태를 수습할 기미가 안 보인다”며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하루빨리 병원 경영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대란 여파는 신규 간호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전적 손실을 본 병원이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서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있는 직원도 줄이는 판에 신규 인력 채용은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이탈하고 나서 간호사들은 더 많은 일을 떠안았지만 병원에서는 무급휴가를 신청하라고 권고하는 상황”이라면서 “지난해 채용한 간호사에 대해 병원이 2월 말부터 발령을 내야 하는데 간호사들이 무한정 대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