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논쟁→남녀 갈등→정치 쟁점까지… 논란의 ‘성인페스티벌’ [배정원의 핫한 시대]
한국성인콘텐츠협회 주최 행사, 서울시·수원시 등이 불허 성적 욕망 솔직한 표현 인정되지만 법 테두리 내에서 방식 고민해야
최근 한국성인콘텐츠협회(KACA)와 플레이조커가 개최를 준비 중이던 ‘성인페스티벌(2024 KXF The Fashion)’이 지방자치단체의 불허로 취소됐다. 주최사인 플레이조커는 작년 12월 경기도 광명시에서 열렸던 행사를 올해 4월 수원에서 개최하려 했다. 이후 수원시의 불허로 파주, 서울 한강변, 강남 신사동 주점 등으로 장소를 타진했으나 모두 허가를 얻지 못해 결국 행사 진행을 포기했다.
이번 성인페스티벌은 작년에 이어 일본 AV(Adult Video·성인용 비디오) 여배우들을 초청해 그들과의 팬미팅, 이브닝 파티와 함께 섹스토이, 란제리 패션쇼 등의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성인페스티벌’의 개최 계획을 알게 된 수원시와 주민, 시민단체의 반대 탓에 대체지로 파주를 수소문했지만 불발됐고, 서울 한강변의 선상주점뿐 아니라 압구정동의 민간 주점에서도 서울시의 강력한 행정제재로 열리지 못하게 됐다. 이에 서울시 게시판은 페스티벌의 개최 여부에 대한 찬반 여론으로 연일 뜨거웠다.
급기야 개혁신당의 천하람 당선자는 “성인이 성인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서 공연 또는 페스티벌 형태의 성인문화를 향유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남성의 본능을 범죄시 말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19금 뮤지컬은 허가하면서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페스티벌을 금지하느냐”는 발언으로 성인페스티벌의 ‘찬반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점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번 행사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여성의당은 지난해 열렸던 ‘성인페스티벌’이 여성을 성 상품화하고 유사 성매매 혐의가 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행사 내용 중 AV 배우들이 치마를 들추고 엉덩이를 맞는다든가, 참석자들의 몸을 만져주는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여성을 성 상품화 대상으로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또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행사에서도 그 이상의 성매매 알선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빈곤한 상상력과 성 상품화로 가득한 콘텐츠
이번 성인페스티벌 개최는 “자극적 성문화를 조장할 뿐 아니라 AV 제작과 유통이 엄연히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행사가 열린다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라”는 목소리까지 양쪽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관심을 모았다.
이에 더해 성인페스티벌 주최사인 플레이조커는 “국내 반대 여론으로 인해 일본 AV 배우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행사를 취소한다”고 했다가 “6월에 행사 규모를 더 키워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지자체의 대응과 정치권 인사의 언급이 별것 아닌 행사를 더 크게 부풀리고 홍보를 해준 꼴이다.
이 사건을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0여 년 전 마카오에서 열린 아태피임학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피임학회가 열리는 위층에서 마침 섹스박람회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일행과 함께 구경을 갔다. 섹스박람회라니 듣기도 처음이었고, 어떤 내용이 전시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호텔 한 층을 다 사용하는 넓은 장소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모여있었다.
커다란 무대에서는 남녀 출연자들이 나와서 환한 조명 속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있었고, 많은 부스에서는 기기묘묘한 섹스토이들을 전시해 판매하고 있었다. 흉물스럽지 않고 귀엽고 예쁜 세련된 모양과 기능을 가진 다양한 섹스토이도 신기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들고 기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질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러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있고, 시종 웃음을 터뜨리는 곳이 있어 가보았더니 세상에, 한 나이 든 백인 남자가 아랫도리를 홀딱 벗고 자기 성기를 붓 삼아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커다란 카우보이 모자를 멋지게 쓴 그 남자의 주변에는 많은 남녀가 몰려들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가 성기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희망자들의 줄이 길었다.
그의 부스에는 그렇게 그린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저렇게 그려내다가는 성기가 남아나지 않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 듯싶었다) 그에게 자신을 그려 달라며 대기하고, 그가 그리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그들에게 그의 행동은 아주 재미있는 퍼포먼스이며 유희였을 뿐 어떤 윤리적인 기준도 작동하지 않는 듯 보였고, 나 역시 충격을 받았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남녀 모두 평등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어야
이번 행사로 인한 난리법석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주최 측은 입장 시 신분증을 확인하는 등 성인 인증을 확실히 할 것이며, 일본 AV 배우가 비키니를 입고 패션쇼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성인페스티벌의 내용을 겨우 그렇게밖에 구성할 수 없었는지 많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AV는 제작도 유통도 불법이다. 법이 지나친지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법은 법이므로 지켜져야 하고, 지자체와 정부는 현재로선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AV 산업 자체가 불법인데 그 2차 산업이랄 수 있는 AV 배우가 나오는 행사라니, 그리고 그들이 참여자들의 몸을 만져주기까지 한다니, 참으로 상상력이 빈곤한 행사다. 비록 자발적으로 성인영화에 참여하고, 팬덤을 가진 AV 배우라니 우리가 가진 성인영화 산업에 대한 선입견을 일견 교정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 사업의 구조 안에서 구성원들인 그들이 정말 자유로운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유로우려면 그 이전에 평등과 안전감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AV 산업에 유입되는 대상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고, 성 상품화의 대상이 되면서 성 착취에 대한 혐의의 시선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및 스마트폰 확산으로 인해 남성들은 이미 포르노물을 포함한 AV 영화를 개인적이고도 일상적으로 보고 있고, 그렇기에 화면 속 AV 배우의 팬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것이 현실인 점도 인정해야 한다. 또 포르노물을 남성만 즐기는 것도 아니며 포르노물이 성범죄의 오롯한 원인인 것도 아니다.
다른 면으로는 이번 해프닝으로 인해 성에 대해 유독 이중적이고, 금기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성 표현과 성적 쾌락에 대한 담론이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에 대해 점잖은 척하고, 쉬쉬하며 보수적인 척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는 시간대의 공영방송 뉴스에 ‘한 개인과 불륜녀의 녹취록’을 틀어대는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포르노’적이지 않은가? 성은 금기로 누르면 죄책감을 만들고 그 죄책감이 쌓이면서 강박이 생긴다. 성에 엄숙해지고 억압이 강해질수록 사회가 맑아지기보다 더 변태스러워지는 이유다.
어떤 특정한 성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 평등하고 유쾌하게 성을 즐길 수 있는 ‘성인페스티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