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더 커졌다”…심판론 외쳤지만 못 웃는 의사들

민주당 압승에 의료정책 추진 방향 우려 목소리 총선 후 의·정 갈등…‘대화 vs 강행’ 갈림길 국회 입성 의사 8인…갈등 중재 역할 나서나

2024-04-12     강윤서 기자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10일 오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2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에도 전환점이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의료계는 사태 해결을 두고 ‘셈법’이 복잡해진 분위기다. 여당의 패배가 ‘윤석열 정권 심판의 결과’라며 환호하면서도 절대 다수 의석수를 가져간 더불어민주당이 의·정 갈등 해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사회는 여당의 총선 참패 주요 원인으로 윤석열 정권의 무리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강행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개혁이라는 목적과 달리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 규모 결정이 ‘불통’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고 이에 대한 격한 반발이 결국 ‘심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상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은 “이번 총선 결과는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비판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도 “의대 증원 과정에서 보여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보수의 근간을 무너뜨렸다”며 “이는 의사만 실망시킨 것이 아니며 합리성 있는 지식인, 전문직 모두 의대 증원을 보며 상식의 붕괴와 광기를 느꼈다”고 평했다. 다만 의사들은 여당의 패배를 반색하면서도 동시에 우려를 표한다. 이들은 총 175석을 석권한 민주당의 향후 의료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서울대 의대 비대위 자문위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두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걱정이 더 커졌다”며 “역사적으로 그간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근거 없는 의사 증원 정책과 권역별 진료 체계를 파괴하는 실손 보험제도 등으로 인한 불신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김윤 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민주당의 보건의료 책임자로 들어간 김윤 당선인은 의사 직분을 폄하하고 악마화해 국민이 의료진을 불신하게 만든 핵심 인물”이라며 “이런 사람을 내세운 정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초강경파’로 알려진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은 전날 오전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음이 참 복잡하다”며 글을 남겼다.  정부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았던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이런 선거는 정말 처음”이라며 “국민의힘의 패배를 바라면서도 대패를 바라진 않았다. 보수의 파멸에 환호하는 의사들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윤이란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 그가 발의하는 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가 가능한 시대를 살게 됐다”며 “의사들을 괴롭히던 정당이 참패했음에도 의사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힘들어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10일 제22대 총선 지상파3사 출구조사를 바라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정갈등 ‘봉합’vs‘격화’…정치권, 중재자 나오나

총선 결과를 계기로 의·정갈등 양상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현재의 강경책을 고수할지 혹은 본격적으로 타협을 시도할지 등 전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의료계에서는 2000명 증원 규모를 두고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정부의 움직임을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윤 대통령이 전날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가 당분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의사들과 본격적인 대화를 모색하는 등 유화책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총선 결과가 정부의 정책 추진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당 정책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기에 오히려 정부가 강경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더불어 각 의대별 2000명 증원 배분이 일단락 된 가운데 정권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의료개혁을 더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경우 의료공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본격적으로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간 의·정갈등에 나서지 않은 정치권에서 새로운 중재자가 등장할지도 관건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의사 출신 8명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 모두 의대증원을 찬성하지만 대다수가 증원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례대표로는 국민의힘에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소장인 인요한 후보, 을지의대 재활의학과 출신 한지아 후보가 당선됐다. 민주당에서는 의대 증원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김윤 후보가 국회에 입성했다. 조국혁신당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활동한 김선민 후보, 개혁신당에서는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한 이주영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구에서는 안철수·서명옥 국민의힘 후보, 차지호 민주당 후보가 국회에 입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