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가 통할까, ‘범죄자’가 통할까
이재명 ‘경제 실정론’ 對 한동훈 ‘이‧조 사법리스크’ 강조 ‘김준혁’ 반복 언급하는 한동훈…‘한동훈’ 언급 않는 이재명
4‧10 총선에서 ‘심판’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총선 공식선거운동이 막바지로 향하는 가운데, 여야 대표는 서로의 약점을 부각하며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현장 유세 발언을 살펴본 결과 이 대표는 정부·여당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고물가와 경제 실정 비판에, 한 위원장은 이재명‧조국‧김준혁 등 야권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의혹 제기에 몰두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당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공식선거운동 첫 날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8일까지 12일 간 이재명 대표는 총 63회, 한동훈 위원장은 128회 전국 곳곳에서 현장 유세 연설을 진행했다. 양 측의 타깃은 명확했다. 이 대표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종착지는 모두 ‘윤석열 정권 심판’이었다. 총선의 실질적 경쟁자인 국민의힘 언급은 적었다. 한 위원장은 야권 내 논란의 인물 하나하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범죄자’로 규정, 이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했다.
이 대표가 수 백회 반복 사용한 단어들을 종합하면 ‘대파’로 상징되는 ‘윤석열’ 정권의 ‘민생’ 파탄과 ‘경제’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 발언이 나온 이후부터 거의 모든 연설에서 ‘대파’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사전투표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파의 투표소 반입을 제한한 이후 정부 비판의 소재로서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는 전날 인천 지역 유세 현장에서 “대파를 들고 선거 유세장 다닐 만큼 이 나라가 우스운 나라가 됐다”며 “자랑스러웠던 나라가 이제 ‘입틀막’, ‘칼틀막’에 이어 ‘파틀막’까지,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라고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고 정부를 직격했다. 같은 날 서울 양천갑 현장에서도 이 대표는 연설 도중 한 지지자가 건넨 대파를 들고는 “이거 얼마짜리입니까. 5900원 주셨답니다”라며 “이거 집에 갖고 가서 대파 요리 해먹겠다. 확실하게 ‘대파’(大破)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실정 중 하나로 ‘R&D 예산 삭감’ ‘서민 예산 삭감’ 등 ‘예산’ 문제에 대해서도 자주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전날 "서울 동대문구 유세 중 “윤석열 정권은 우리가 맡긴 권력과 예산으로 개인적 이익을 챙기고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며 “나라 살림을 맡겼더니 서민들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근로소득세는 그대로고 국가 예산, 세금, 세수 부족하다고 서민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고 꼬집었다.
최근 ‘범야권 200석’ 가능성이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이 대표는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는 취지의 표현도 늘려갔다. 대표적으로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찾아 “충직하지 못한 일꾼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해야 한다”며 “회초리를 들어서 안 되면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李 “말 안 듣는 권력 빼앗아야” 韓 “고통의 시대로 역행 안 돼”
반면 한 선대위원장은 ‘범죄’, ‘범죄자’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하며 연일 이번 총선을 “범죄자와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범죄자’로 지목한 인물은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가 주를 이룬다. 야권의 두 얼굴과도 같은 이‧조 모두 현재 재판 중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엔 각종 과거 언행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민주당 김준혁 수원정 후보,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도 포함됐다.
지난 주말 전후엔 한 위원장의 연설 속에 ‘이‧조’보다 ‘김준혁’에 대한 언급이 더 많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일 충북 청주 유세 연설 중 “김준혁이라는 사람이 있다. 대단히 불쾌하다”며 “이런 꼰대같은 사람들이 성희롱하고 공공연히 음담패설 하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이 가장 자주 사용한 표현을 종합하면 ‘범죄자’인 ‘민주당’의 ‘이재명’과 ‘김준혁’, 그리고 ‘조국’을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거대 야당을 심판하고 ‘야권 200석’을 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범죄’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했다. 전날 그는 경기 광주 지원유세에서 “이들(야당)이 지금 김준혁 후보나 양문석 후보를 대하는 태도를 보시라. 여러분의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하물며 200석을 가질 경우에는 어떻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자주 소환했다. 특히 최근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서면서 한 위원장의 언급을 더욱 잦아졌다. 대표적으로 지난 4일 송파 유세 현장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부동산 폭등, 종부세 폭탄 기억나시는가. 문 전 대통령은 다시 나와 선거 운동하고 있다”며 “잘 됐다. 그분이 그분의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기억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투표하지 않으시면 그때로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김건희’ 언급 않는 李, ‘운동권’ 언급 멈춘 韓
한편 두 대표 모두 선거 초반과 대비해 눈에 띄게 언급을 줄인 단어들도 있었다. 이 대표의 경우, 당초 정권 심판 구호로 민주당이 내세웠던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채 상병 순직·양평 고속도로·명품백 수수 의혹·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예상 외로 적었다. 특히 김건희 여사 이름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총선 경쟁자 한동훈 위원장 이름을 말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윤석열 대통령을 수 백회 언급하며 정권 심판과 탄핵 가능성까지 꺼내면서도 여당의 수장 ‘한동훈’ 이름은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을 향한 한 위원장의 연이은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 위함인 동시에, ‘본진’인 윤 대통령을 맞상대로 설정해 전선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라는 게 당 선대위 측 입장이다.
한 위원장의 경우 취임 직후부터 가장 앞세웠던 ‘운동권 청산’ 언급을 극도로 줄였다. 보수 정당이 통상적으로 사용해 온 ‘종북’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경제‧민생 문제가 중도층 등 유권자들의 주 관심사인 만큼, 이러한 수사는 총선 전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심지어 역풍까지 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