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기록해 왔나
《다이빙벨》부터 《너와 나》까지…다양한 방식으로 ‘그날’ 상기
2024-03-30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세월호 다큐는 정치적인가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사회적 비극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창작물로 소환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달랐다. 세월호 침몰과 구조 과정의 문제 등 진상 규명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니만큼,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작업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참사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이 그 시작이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이빙벨》은 세월호 희생자 수습 과정에서 실효성 논란을 빚었던 장비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진실을 다뤘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뜨겁게 담겼다. 첨예한 사회 현안을 빠르게 기록한 용감한 시도와는 별개로 작품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가 논의됐어야 할 영화는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초청과 관련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작품 외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부산시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을 반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압 논란에 휩싸인 것. “영화제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예산 삭감 등의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시간과 함께 깊어진 세월호 다큐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다큐가 담아내는 대상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봤던 ‘보통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운 《당신의 사월》(2021), 세월호 사건 당시 두 달 이상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간 《로그북》(2021)이 대표적이다. 이소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장기자랑》(2023)은 방식 면에서 한층 깊어진 면모를 보여줬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로 꾸려진 극단 ‘노란리본’이 창작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 영화는 마냥 슬프지 않다. 엄마들은 무대 위에서 욕망하고 춤추고 웃고 연대한다. 세월호와 천안함 생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연구한 서울대 김승섭 교수는 저서 《미래의 피해자들이 이겼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타인의 고통에 엄격한 사회에서 유가족은 착하고 비참한 피해자의 전형을 갖춰야 했습니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싸우면 싸운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실은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인데도 말이죠.” 《장기자랑》은 이러한 피해자다움, 유가족다움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족들을 그리며 호평받았다. 《장기자랑》이 세월호 유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을 벗겨준 작품이라면, 4월4일 찾아오는 《바람의 세월》은 유족이 직접 카메라를 든 작품이다. 단원고 2학년 딸을 잃은 문종택씨가 3654일간 찍은 영상이 무려 5000여 개.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기 위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모은 기록들이 《바람의 세월》로 만들어졌다. 제목에서부터 야속한 세월의 바람이 부는 느낌이 든다.조심스러웠던 상업영화계의 행보
다큐멘터리가 세월호를 정면에서 다루는 동안, 극영화들은 상황을 조금 더 예의주시했다. 특히 상업영화계는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행보가 조심스러웠다. 세월호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지는 분위기 역시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2014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준비했던 극영화 《세월호》는 재난을 눈요기로 삼는 듯한 완성도 떨어지는 포스터와 홍보 영상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유가족 동의도 얻지 않고 기획에 들어갔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 부분. 제주도로 향하다 발생한 참사를 소재로 하면서 ‘제주도 숙박권’을 펀딩 리워드로 제시한 발상 또한 역풍을 부르며 제작이 좌초됐다. 여러 우려 속에서 최초로 당도한 세월호 극영화는 《눈꺼풀》(2018)이다. 제주 4·3을 그린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로 한국 영화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작품이다. 《눈꺼풀》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으나, 개봉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개봉이 늦어진 이유를 두고 뒤숭숭한 소문이 돌았다. 4·3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오멸 감독이 박근혜 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이 정권이 바뀐 후에야 밝혀졌다. 《눈꺼풀》 개봉 4개월 후, 옴니버스 영화 《봄이가도》가 관객을 만났다. 그해 봄 고등학생 딸을 잃은 엄마, 구조작업에 투입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 아내를 떠나보낸 남자의 일상이 세 개의 단편으로 흘렀다. 에피소드마다 시 구절이 삽입된 것이 특이점. 한용운의 ‘나는 잊고저’,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정호승의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이 인물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먹먹함을 안겼다.세월호 징후를 담은 영화들
위에 언급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징후를 담은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익사 사고로 죽은 소년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살아남은 아이》(2018),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몰린 소녀를 통해 애도의 방식에 대해 질문한 《죄 많은 소녀》(2018)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재난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 속에서 세월호 흔적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터널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김성훈 감독의 《터널》(2016), 한재림 감독의 항공 재난영화 《비상선언》(2022) 등이 나왔을 때 많은 이가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호출했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이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DNA처럼 깊게 뿌리 박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왜 10년 동안 꾸준히 세월호 참사를 담아왔을까. 그리고 영화와 영화 창작자들은 비극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배우 설경구가 영화 《생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시를 쓰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가수는) 노래를 만들어 추모했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왜 이런 영화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