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청년들은 왜 부자 세습의 20년 이상 장기집권을 받아들일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민주주의냐, 독재냐’보다 ‘정권이 어떻게 성과를 내고 불만을 관리하는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
2024-03-02 임명묵 작가
문화적 자유 보장하고 청년들 삶 간섭 안 해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 유가가 폭락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아제르바이잔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경제적 기회가 주로 수도 바쿠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청년층 대부분은 일자리를 위해 바쿠로 이주하지만, 바쿠의 높은 물가와 주거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다.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며 부를 축적한 엘리트층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이나 인권단체들은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각종 억압적 수단을 동원해 시민의 불만을 억누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경제적 곤경으로 인해 시민, 특히 청년층이 정부에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막고자 정권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2019년에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과거 정권부터 충성해온 노년층 엘리트를 축출하고 정부 요직에서 세대교체를 진행한 것은 대표적인 친(親)청년 정책 사례다.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언론이나 집회의 자유는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같은 구소련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억압되지만, 인터넷을 통한 청년층의 불만 표출을 발 빠르게 파악해 대처하고자 하는 거버넌스 개선 노력도 동시에 진행된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이런 사전 대응은 청년층 사이에서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지속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다.아르메니아와의 분쟁 통한 국민 통합 효과
세 번째이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제르바이잔 정권의 대외 정책이 성공을 거둔 데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인접한 아르메니아와 독립 시기부터 30년 넘게 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영토 분쟁을 벌였다. 1994년에 아르메니아는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얻어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했다. 당시 미국과 프랑스의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이 서방에서 여론을 움직여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게 만든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마땅한 우호국을 찾기 어려웠다. 상황은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인 헤이다르 알리예프 때부터 달라졌다.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튀르키예·러시아·유럽연합을 오가며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자국이 보유한 천연자원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쳤고, 이는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 정권까지 이어졌다. 이를 통해 2020년 제2차 카라바흐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승리를 거두었고, 지난해에는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을 멸망시키며 카라바흐 지역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은 러시아와 이란을 자극하고 있고, 아르메니아와의 추가적인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아제르바이잔의 지정학적 환경은 국민에게 언제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환경 속에서 알리예프 부자가 어쨌든 ‘민족의 숙원’인 카라바흐 수복을 달성했으니, ‘부족한 점이 있어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정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강하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의 청년 남성들은 대부분 군복무를 하고, 많은 수는 심지어 참전 경력도 갖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문화적 자유 보장, 거버넌스의 지속적인 개선, 민족주의를 통한 국민 통합과 대외 정책에서의 성과는 아제르바이잔 정권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지지를 얻게끔 만들었다. 부자 세습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권위주의, 경제적 난관과 불평등 속에서도 말이다. 정치적인 면만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여론은 세대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세대 차이의 부재로 인해 특수하다. 아제르바이잔 정권이 문화적 자유를 억압하거나,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거나, 아르메니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면 청년층의 정권 지지는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그럴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세계 다수 지역에서 ‘민주주의냐, 독재냐’보다도 ‘정권이 성과를 어떻게 내고 불만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