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0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난 다섯쌍둥이의 ‘기적’…육아는 ‘현실’

[인터뷰] 다섯쌍둥이 키우는 육군 서혜정 소령·김진수 대위 부부

2024-02-23     정윤경 기자
6500만분의 1. 다섯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0만분의 1로 알려진다. 로또 1등보다 값진 행운은 1991년생 동갑내기 부부 서혜정 소령과 김진수 대위(이상 17사단)에게 찾아왔다. 2021년 11월, 국내에서는 34년 만에 다섯쌍둥이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두 살배기 딸 소현·수현·서현·이현(첫째~넷째)양과 아들 재민(다섯째)군이다. 2년6개월간 부부의 간절한 기다림 끝에 인공수정을 통해 나온 아이들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귀해진 대한민국에서 다섯쌍둥이 출산은 그야말로 경사 그 자체였다. 국민적 관심 속에서 태어난 다섯쌍둥이는 지금 어떻게 크고 있을까. 육아라는 현실의 벽을 마주한 다섯쌍둥이의 부모는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저출산을 넘어 ‘무(無)출산’을 향해 가는 한국 사회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다섯쌍둥이 엄마·아빠를 시사저널이 2월18일 만났다.
2월18일 다섯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김진수 대위, 서혜정 소령 부부와 자녀 김소현·수현·서현·이현·재민(순서없음)의 가족사진 ⓒ시사저널 이종현

6500만분의 1 확률 출산 기적…“백 번 천 번 잘한 일”

“자기야, 큰일 났어. 아기집이 다섯 개 보인대.” 2021년 4월 어느 날, 혜정씨는 초음파 사진으로 다섯쌍둥이를 보고 남편 진수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단 많이 먹자. 많이 먹고 잘 키우자”는 진수씨의 씩씩한 대답에, 혜정씨는 다섯쌍둥이 출산이라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 처음 간 병원에서는 산모의 건강을 우려해 ‘선택적 유산’을 권했다. 혜정씨는 “다섯 명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모두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출산이 임박한 28주 무렵 혜정씨는 일반적인 만삭 배를 넘어섰다. 진수씨는 양손을 내밀어 깍지를 끼면서 “배가 이만큼 나왔었다”고 회상했다. 출산 당일 제왕절개수술을 위해 투입된 의료진만 30명이 넘었다. 극소 저체중아로 태어난 다섯쌍둥이는 중환자실 신세를 지다 둘째 수현양의 퇴원을 끝으로 생후 103일 만에 완전체로 모이게 됐다. ‘기적’과도 같은 출산 끝에 부부는 육아라는 ‘현실’을 마주했다. 당장 다섯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출산 후 남편 진수씨에게 주어진 출산휴가는 고작 열흘뿐이었다. 결국 창원에 살던 다섯쌍둥이의 친할머니가 올라와 인천에 있는 부부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평일에는 어린이집 하원 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돌봄 선생님이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다.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아 부부가 부담하는 돌봄 서비스 비용은 월 30만원 정도다.
ⓒ 김진수 대위 제공
주말이면 온 가족이 총출동해 ‘군사작전’과도 같은 육아를 한다. 시사저널과 만난 이날도 부부와 할머니, 큰아버지 부부까지 모두 5명이 모였다. 혜정씨는 성인 1명당 아이 1명씩 ‘전담 마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섯쌍둥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부부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하는지’다. 혜정씨는 “박물관이나 놀이공원에라도 가려면 36개월 이후부터는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다 돈”이라며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는 “입장료 등 다자녀 할인을 팍팍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수씨는 양육자의 개인 시간도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서울 시민 2005명 중 82.8%는 ‘아이를 낳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출산 이후 개인 시간 부족’을 크게 느낀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 78.4%가 ‘아이 돌봄으로 아파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진수씨는 ‘돌봄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이집 제도를 개선해 매번은 아니더라도 야간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내와 함께 여가시간을 갖고 싶다”고 토로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아플 때다. 얼마 전에 소현·수현·이현이가 동시에 고열과 폐렴 증상을 보였다. 현재 대전의 군 교육기관에 입소해 있는 혜정씨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휴가를 내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부부가 아픈 아이 셋을 돌보고, 남은 아이 둘은 집에서 할머니가 챙겼다. 아이들을 나흘 입원시키는 데 120여만원이 들었다. 단(單)태아에 비해 보험 가입 조건이 까다로워 다섯쌍둥이는 민간보험에 들지도 못했다. 그나마 군 단체보험에 자녀가 가입돼 있어 일부 병원비 등을 돌려받는다고 했다. 850g~1.05kg의 극소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발달 검사도 받아야 한다. 검사비는 비급여 항목을 포함해 1인당 15만원 정도다.
김진수 대위, 서혜정 소령 부부와 자녀 김소현·수현·서현·이현·재민(순서없음)이의 가족사진 ⓒ김 대위 제공

“대출 지원, 소급 적용해야…다둥이 낳게끔 환경 조성”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다섯쌍둥이의 식비와 생활비도 큰 부담이다. 혜정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스마트폰도 한 대씩 사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섯쌍둥이에게 매달 들어갈 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혜정씨는 “학원은 아예 못 보낼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부부는 1명당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받는다. 혜정씨는 “이마저도 어린이집 활동비로 다 나간다”고 했다. 부부는 신생아 출산가구에 대해 주택 구입자금 대출이자율을 추가 감면해 주는 디딤돌대출 혜택을 받지 못했다. 디딤돌대출 소득 조건이 부부 합산 연 8500만원 이하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특례대출의 부부합산 소득요건은 이보다 나은 연 1억3000만원이지만, 부부는 정책 시행 이전에 출산해 소급 적용을 받지 못했다. 진수씨는 “우리는 7인 가구인데 부부 소득만을 기준으로 대상을 정하면 어떡하나”라면서 “대출은 삶과도 직결되는 큰 문제인데 신경을 써줘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혜정씨도 “정책이 발표된 당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지원할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소급 적용해 줘야 한다”면서 “첫째를 낳은 사람이 둘째도 낳게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는 육아휴직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남자도 육아휴직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진수씨는 “육아휴직은 당연히 쓸 수 있는 권리인데 선택 사항으로 하면 쓰는 사람만 쓰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급’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진수씨는 “야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사람과 육아휴직도 쓰고 ‘칼퇴’하는 사람을 비교해 보면 상급자는 누구를 진급시키겠느냐”며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부부는 다섯쌍둥이 출산에 대해 “백 번 천 번 잘한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진수씨는 “왜 (아이를) 안 낳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힘들긴 하지만 나와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가족들끼리 모일 일이 잘 없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 모임 횟수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진수씨가 “오둥이 동생도 생각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자 혜정씨는 “그럴 일은 없다”고 딱 잘랐다. 그러면서도 혜정씨는 “새로운 행복은 낳아봐야 아는 것”이라며 “다섯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커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점점 말문도 트이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진다”며 “또 어떤 새로움을 우리에게 안겨줄지 매일매일 기대된다”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