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논란’에 코너 몰린 이재명, 한숨 돌린 한동훈

김영주 탈당‧박용진 재심…민주, ‘비명 공천 학살’ 논란에 내홍 반환점 돈 국민의힘은 순항…TK‧강남 ‘물갈이’ 파장에 촉각

2024-02-20     박성의 기자
22대 총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 모두 공천을 두고 크고 작은 잡음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비이재명(비명)계 공천 학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대상자가 된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의 ‘밀실 공천’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탈당까지 선언하면서 내홍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도 TK(대구‧경북) 및 강남 등 ‘텃밭 공천’을 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나, 민주당에 비해 공천 작업은 순항하는 모양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비명 학살’ 논란에 탈당 선언까지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해 연말 당 소속 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최근 당은 평가 결과 하위 20%에 들어간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이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선에서 하위 10~20%는 득표수의 20%를 감산당하고, 최하위 10%는 득표수의 30%를 감산당한다.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민주당이 ‘하위 20%’로 분류한 의원은 총 3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낙제점을 받은 31명 중 대부분이 비명계 의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전날 한 언론은 민주당 현역 의원 평가 최하위권에 들어간 31명 가운데 90%에 이르는 28명이 비명계라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른 결과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대상자가 된 의원들은 자신들이 ‘이재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급기야 탈당을 선언하는 의원도 나왔다. 4선 중진이자 현역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은 전날(19일) 하위 평가 대상에 선정된 것에 불만을 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김 부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친명도 아니고 반명도 아니다”며 “그런 저를 반명으로 낙인찍었고 이번 공천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명분으로 평가점수가 만들어졌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유치원 3법’을 만들고 ‘삼성저격수’로 불렸던 박용진 의원도 ‘하위 10%’ 대상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탈당 대신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며, 비명을 겨냥한 ‘자객 공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박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엔 친이재명계 인사인 정봉주 전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공천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 한 번도 권력에 줄 서지 않았고 계파정치, 패거리 정치에 몸담지 않았다”며 “오직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만을 바라보고 온갖 어려움을 헤쳐왔고, 공정과 원칙이 아니면 의정활동에서도, 정당활동에서도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많은 고초를 겪었다”며 “오늘의 이 모욕적인 일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밀실 여론조사’ 의혹까지 불거지며 내홍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일부 지역구에서 비명계 현역 의원을 제외한 후보 적합도 조사가 실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실제 설훈(5선·경기 부천을), 이인영(4선·서울 구로갑), 홍영표(4선·인천 부평을), 송갑석(재선·광주 서구갑) 의원 등의 지역구에선 이들을 제외하고 친명 예비후보자를 넣어 여론조사가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논란에 이재명 대표는 “환골탈태 과정서 생기는 진통”이란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훌륭한 인물들로 공천관리위원회가 잘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하위 20% 명단에 비명계가 대거 포함됐다’는 지적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아끼는 분들도 많이 포함된 거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순항하는 한동훈號…도화선은 TK?

민주당과 비교해 국민의힘은 비교적 순항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이날까지 신청자가 있는 242개 지역구 중 99개는 단수추천, 4개는 우선추천, 61개는 경선을 각각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잡음 없이 공천 반환점을 도는 모양새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의힘 공천관위원회가 갈등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전략공천과 단수추천을 최소화하면서 당내 갈등을 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친윤계 복심으로 불렸던 김기현 전 대표는 울산 남을에서 박맹우 전 울산시장과,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은 장승호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건설분과 부위원장과 경선을 치른다. 이철규 의원은 단수 추천 요건에 해당됐으나, ‘친윤 공천 논란’을 의식해 경선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도 공천 상황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공천의 유일한 기준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며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밀실사천, 공천학살 등 민주당 공천과 관련해 나오는 말들은 민주당이 자신한 시스템 공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힘도 갈등의 뇌관은 남아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현역 의원의 컷오프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컷오프가 결정된 현역 의원은 최영희·서정숙 의원 2명 뿐으로 둘 다 비례대표 의원이다. 특히 당선 확률이 높은 TK 및 강남 지역구의 ‘물갈이설’이 파다한 상황인지라, 이 지역 의원들의 컷오프가 결정된다면 민주당처럼 공천 논란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취재에 따르면, TK지역 일부 현역 의원들은 컷오프에 대비해 ‘흰색 점퍼’(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비대위 회의에서 “공천이 시스템 공천으로 나름 원칙을 지켜서 진행되고 있다. 단적으로, 발표할 공천 결과에 대해 나도 보도자료가 만들어지는 무렵에 보고받고 그 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 지역구에 한 분만 제시할 수밖에 없어서 공천 구조상 훌륭한 분들이 많이 탈락할 수밖에 없다”며 “후보로 나서는 분만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국민을 위해 올해 4월 승리하는데 우리 모두 함께 가자”고 덧붙였다. 공천을 둔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보다는 야당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정파를 떠나 민주당의 최근 공천 상황이 납득가능하고, 정상적이라 판단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반문한 뒤 “무리하게 공천을 진행하려 한다는 정황이 이미 드러났다. 이재명 대표가 강조했던 혁신공천과 멀어질수록 총선에는 분명한 악재”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의 공천은 아직까진 무난한 편이다. TK나 강남의 공천 결과가 남아있지만 확실히 야당에 비해 잡음은 덜한 편”이라고 진단한 뒤 “아무래도 여당은 컷오프 대상자 등에게 공직이나 공공기관의 ‘자리’를 약속하며 달랠 여지가 있다. 분명한 여권의 공천 어드밴티지(유리한 지점)”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