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표심’ 앞세워 여당 지지 철회 압박
설 연휴 직후 총파업 예고…정부 ‘강력 대응’ 엄포
2024-02-06 정윤경 기자
19년 만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확실시 되면서 의사 단체가 ‘정권 심판론’에 불을 댕겼다. 보수 정당 지지세가 높은 의사들은 ‘총선 심판’ 구호를 내걸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을 향한 표를 거둬들이겠다고 경고했다.
6일 정부는 보건복지부 소속 심의기구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소집해 의대 증원 규모를 심의·의결한 뒤 의료계에 통보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 정원이 부족해 많은 국민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사 인력 확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각 반발하면서 정부를 향해 최후통첩을 날렸다. 의협은 이날 오전 11시께 의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할 경우 의협 집행부는 총사퇴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굳건한 보수 지지층 ‘의사단체’…尹정부와 전면전 돌입 예고
의사들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을 겨냥하고 나섰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인다면 대통령과 여당 심판론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다.
의협 기관지 ‘의협신문’이 지난달 25일부터 8일간 전국 의사 107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10명 중 8명(79%)은 평소 지지하는 정당을 ‘국민의힘’이라고 꼽았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6.3%에 그쳤다.
그러나 ‘의대 증원’이라는 가정이 붙자 표심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부가 적지 않은 수의 의대 증원을 발표할 경우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물었더니, 국민의힘을 지지할 계획이라는 답변은 65.9%포인트(p) 감소한 13.1%로 크게 하락했다. 10명 중 1명 정도만 여당을 지지하고, 7명은 지지 의사를 철회한 셈이다. 국민의힘 지지를 밝혔던 의사들은 이준석 대표가 주도하는 개혁신당(51.7%)이나 민주당(22%)으로 지지를 선회했다.
이는 여당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맞춰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강하게 밀고 나간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한 의사 단체를 향해 “결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의협과 의대 증원을 협상 테이블에 놓고 논의를 해왔지만 결국 1년 동안 해법을 찾지 못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 발표까지 이어지면 의협은 총선을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 당장 의협은 설 연휴 직후 집단 휴진이나 파업 등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의대 증원 시 총파업 등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88.2%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86.5% 참여 의사를 밝혔고, 전국 17개 국립대병원 참여율은 84.8%로 나타나 현실화 할 경우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3년간 회장직을 맡으면서 내 입에서 ‘파업’이라는 말이 나온 적 없다”며 “(정부가) 의협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정말 다시 한번 유연성을 갖고 협의에 임해달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사들이 총파업 등 단체 행동에 나설 것에 대비해 가용할 수 있는 법적 대응 카드를 모두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이 범죄에 구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최대 10년까지 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이 회장은 “총파업 강행 시 의협 회원과 전공의, 의대생 우선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며 “이들에 대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시 의협이 적극 지원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모처에서 의대 증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회의는 각자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4분만에 끝났다. 의대 증원이 발표되면 규모는 1500~2000명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묶여있던 의대 정원이 19년 만에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