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대전’ 서막 열리나…총선 앞 ‘親明-親文’ 갈등 고조
한때 동지 추미애-임종석, ‘文책임론’ 두고 공개 설전 ‘자객 공천’ 의혹에 친문계 “학살 예고편인가” 부글부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재인(친문)계와 친이재명(친명)계 간의 파열음이 이는 모양새다. 친문계 현역 의원 지역구에 친명계 인사들이 연이어 도전장을 던지는 과정에서 ‘자객 공천’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친문계 인사들과 친명계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의 신구(新舊) 권력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에 親文의 자리는 없다?
민주당은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비이재명(비명)계와 이 대표를 따르는 친명계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딪힌 데 이어,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친문계 핵심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이 대표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 “당이 원해 출마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깊게 패인 양측의 감정 골이 오는 총선을 앞두고 ‘내분’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이낙연 전 대표와 일부 비명계 인사들이 탈당한 가운데, 친문계 인사들이 친명계와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하는 양상이다. 친명계가 조직적으로 친문계 지역구 탈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면서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영표 의원 지역구(인천 부평을)에는 친명 초선 비례인 이동주 의원이, 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의원 지역구에는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감사가, 재선 강병원(서울 은평을) 의원 지역구에는 김우영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각각 도전장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친명계 인사들이 노리는 지역구 모두 친문계 핵심인사가 현역으로 있는 곳들이다.
친명계 지역구 출마로 당 검증위원회를 통과한 뒤 친문계 의원의 지역구로 돌연 출마 지역을 바꾸는 후보들도 속출하고 있다. 당초 친명계 이연희 민주연구원 상근부원장은 ‘서울 동작을’로 출마하는 것으로 당 검증위를 통과했다. 서울 동작을은 친명 이수진 의원이 현역이다. 그러나 최근 친문계 도종환 의원 지역구인 ‘충북 청주흥덕’에서 출마하겠다고 결심을 바꿨다. 그러면서 자신과 이재명 대표의 인연을 강조하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 부원장은 지난 24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시절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후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선대위 전략상황실장, 정치혁신위 혁신위원 등 당의 전략과 정책 개발에 힘써 왔다”며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략과 정책으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보필해 왔다”고 자신이 친명계임을 내세웠다.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도 서울 서대문갑 출마 의사를 철회하고 이틀 만에 친문 윤영찬 의원(경기 성남중원)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윤 의원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이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남중원의 민주당 후보는 민주당의 정신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후보여야 한다”면서 “하지만 지금 성남중원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오겠다는 후보는 민주당의 기본 정체성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직격했다.
추미애도 등 돌렸다…친문계 ‘부글부글’
친문계로 분류됐던 인사들이 돌연 친문계를 저격, 친명계와 ‘연대’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인사였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석열 정부 책임론’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친문계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추 전 장관은 지난 28일 SNS를 통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를 치켜세우며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두 비서실장(임종석·노영민)을 추천할 것이 아니라 곽상언 변호사를 (민주당 총선 후보로) 추천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곽 변호사는 서울 종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추 전 장관이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친문계를 저격한 것 아니냐는 의심섞인 관측도 나온다. 추 전 장관의 옛 지역구는 ‘서울 광진을’로, 현재 친문계로 분류되는 고민정 의원의 지역구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추 전 장관이 출사표를 던진다면 서울 광진을에서 고 의원과 맞붙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친문계 인사들은 초조함과 분노를 동시에 내비치는 모습이다. 취재 중 만난 한 친문계 야권 인사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언제부터 이재명이 대표했냐”고 반문한 뒤 “(친명계가) 당권을 ‘독점’하기 위해 사실상 ‘학살’을 벌이겠다는 것 아니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총선을 앞두고 그간 침묵하던 친문계 인사들도 공개적인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9일 채널A에 출연, 추 전 장관을 향해 “자꾸 도를 넘어가시는 것 같다. 기억의 편집이 너무 심하다”고 응수했다. 경기도 용인정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하는 박성민 전 최고위원도 TV조선 유튜브 ‘강펀치’에 출연해 “추미애 전 장관이 총선에 출마한다면 내부 비판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본인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웬만한 지역구에는 친명계 현역들이 다 배치되어 있다. 친명계 원외 또는 비례의원들이 비비고 들어갈 지역구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사람들이 ‘수박론’을 퍼트려가지고 비명계를 공격하고 있다. 이들을 낙마시킴으로써 그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리싸움이 펼쳐지는 것”이라며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