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나라는 여성 혼자 여행하기에 불안한 곳이 되었나 [김동진의 다른 시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 느끼지 못한다면…저출생 대책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 만드는 것에서 출발
최근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4년 만에 방문한 공항은 많은 여행객으로 북적여 입국심사대의 긴 줄에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주요 여행사 및 항공사들의 매출이 2023년에 점차 증가해 4분기에는 2019년 이후 최고치에 도달했다고 하니, 그 현상이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여행객 증가 현상 때문인지 필자의 SNS에는 지난해 BBC에서 선정한, 여성이 혼자 여행하기에 안전한 국가 상위 10개국에 한국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뉴스가 재인용되고 있었다.
미국의 조지타운대학에서는 해마다 ‘여성 평화 및 안전 지수(Women Peace and Security Index)’를 조사하고, 여러 언론기관 혹은 여행사 등에서 이 지수에 기반해 여성이 혼자 여행하기에 안전한 국가를 선정한다. 혹시나 해서 2023년 이후 지금까지의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여러 조사 결과 중 한국이 안전한 국가로 뽑힌 경우는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은 여성이 혼자 여행하기에 안전한 나라로 꼽히지 못하는 걸까. 여행하기에 안전하다는 것은 사실상 일상생활을 하기에 안전하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과연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지하철에서 그들이 고개를 들지 않는 이유
지난 연말, 배우자와 함께 서울의 한복판 명동에 다녀왔다. 연말을 즐기러 나온 인파들로 거리에 사람이 매우 많아, 필자의 배우자는 어떤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뒷골목은 말 그대로 건물의 뒤편 사이에 있어 매우 좁았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웠고, 곳곳에 담배꽁초가 널려있었으며, 시큼한 냄새마저 풍겼다. 배우자는 그저 여기가 사람이 없는 곳이라 더 빨리 집에 갈 수 있다며 그 길로 들어섰다. 그 골목을 빠져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에 여성인 필자가 경험한 공포의 감각을 남성인 배우자와는 공유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가 진 후에 혼자서 인적 없는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여성의 일상의 일부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혼자 택시를 탈 때도 항상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내가 지금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이 택시를 타고 있는 것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친구와 통화를 한다. 통화하지 않은 경우에는 집에 들어가서 잘 도착했다고 서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이런 불안감 및 공포감은 남성과는 공유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특히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감각을 느끼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설치기사 혹은 수리공을 불러야 할 때, 일부러 성인 남성의 신발을 현관에 놓아두기도 한다. 실제로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방문한 수리공들이 가해자가 된 성범죄가 존재하기에, 이런 조치를 통해 여성은 조금이라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필자의 대학원 수업 수강생인 젊은 여성들은 혹시라도 모르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가 폭행당할까 두려워,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서 절대 시선을 들지 않고 일부러 고개를 숙여 자신의 휴대폰만 바라본다고 했다. 단지 헤어스타일이 숏컷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의점 여직원이 20대 남성에게 폭행당한 사건 직후에 나눈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사건 이전부터도 이미 젊은 여성들은 지하철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신체적인 안전에 관한 사례를 주로 들었지만, 여성의 안전에는 단지 신체적 측면 이상의 것이 포함된다. 안전은 또한 괴롭힘이나 성차별과도 관련이 있으며, 성별에 따른 사회적 압력과 관련된 여성의 심리 및 정서적 건강과도 연관이 있다. 또한 안전의 개념은 집과 직장 같은 생활반경, 더 나아가 디지털 공간까지로도 확장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직장에서의 성차별로 인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위축된다고 느낀다면, 혹은 일상생활에서 불법촬영의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면, 이 역시 안전하지 않은 삶일 것이다.
여성 개인의 문제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
또한 여성의 안전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여성 평화 및 안전 지수(WPSI)’는 크게 포용성·정의·안전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용성’ 영역에는 교육·고용·경제력 측면에서 여성에게 얼마나 기회가 주어지는지와 국회의 여성 의원 수 비율이 포함된다. ‘차별’ 영역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한 법적 차별의 존재 여부, 또 실제로 여성이 자신의 사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정도, 출산 시 산모의 사망률, 남아 선호 경향 등을 측정한다. ‘안전’ 영역에는 친밀한 파트너로부터의 폭력 경험, 지역사회의 치안, 여성에 대한 정치적 폭력, 무력 분쟁 지역 거주 여부가 포함된다.
이 모든 지수는 단지 여성의 신체적인 안전만을 측정하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감각은 사실상 여성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단지 밤에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예컨대 위의 지수를 측정할 때, 여성에게 불리한 법적 차별이 있는지와 실제로 여성이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발생한 20대 남성의 숏컷 여성 폭행 사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2019년부터 시행되었지만, 정작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미를 협소하게 규정한 탓에 이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혐오 범죄의 피해자로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피해자는 팔에 깁스를 하고, 앞니 세 개가 흔들리고, 이명이 생겼고, 심각한 왼쪽 청력 손실에, 거의 매일 자신이 죽는 꿈을 꾸고, 공공장소나 카페 등에는 누가 해코지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가지 못한다. 그런 일들을 겪는 동안 이 여성은 피해 상담, 수사기관 및 법원 동행, 변호사 선임 등 법률 지원, 의료 지원, 치유 및 회복 프로그램 지원 등을 받을 길이 없었다. 안전하다는 감각에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가 포함된다면, 여성은 지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인구의 대략 절반은 여성이기에,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사회 전체를 향상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안전이란 단지 물리적인 안전뿐 아니라 여러 삶의 영역을 포괄한다. 내 삶의 영역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생존 이상의 것을 생각하거나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출생 대책이란 다름 아니라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 하나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고 느끼는 사회에서는 그 어느 여성도 자녀를 출산, 양육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여성 안전의 측면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