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영업, 탈출구는 없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등 금융 지원 조치로는 한계 자영업 구조조정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해야
가끔 이용하던 동네 슈퍼 하나가 최근 문을 닫았다. 임대료도 부담이었고, 인건비 상승 때문에 직원을 줄였는데도 수익이 남지 않아 결국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 동네만의 일은 아니겠다. 거리를 걷다 보면 흔하게 보는 것이 임대라는 큰 글자에 전화번호가 쓰여 있는 빈 상점이다. 외진 곳이 아니라 대로변에 있는 건물 1층에서도 자주 본다. 코로나가 극심하던 시절에 문을 닫았던 지하철 상가는 여전히 비어있다. 자영업자 폐업률은 지난해보다 30%나 급등했다. 동네 빵집을 하는 지인의 딸은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자영업자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
실제로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집계하는 전국 소상공인 체감경기실사지수(BSI)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은 그 전달보다 나빴고, 이번 달은 지난달보다 나쁜데,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식이다.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물가까지 크게 올랐다. 물가 상승은 자영업자의 원가 부담 증가와 판매 부진으로 인한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올 2분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처분소득은 1년 전과 비교해 19.5% 감소했으며,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6% 감소했다.
방법은 고용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 8월 기준으로 아무도 고용하지 않고 혼자 운영하는 자영업자 수는 437만 명으로 15년 만에 가장 많았다. 통계를 보면 서비스업 둔화 추세가 뚜렷하다. 올해 10월 서비스업 생산(불변지수)은 1년 전보다 0.8% 증가하면서 증가 폭이 0%대에 머물렀다. 2021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산업별로 가장 크게 하락한 업종이 영세 자영업이 많은 숙박·음식업이다. 올해 2분기 -2.7% 감소세로 전환한 이후 3분기에는 -4.7%로 더욱 감소 폭이 커졌다. 소상공인들이 주로 신청하는 개인회생은 작년보다 41%나 급증했다.
현재 자영업은, 빚으로 빚을 갚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6월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43조원으로 역대 최다다.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19년 말 대비 358조원 증가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난 3년 동안 자영업자들은 해마다 100조원의 대출로 버텼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에도 자영업자 대출은 23조4000억원 증가했다. 빚이 늘면 부실 위험도 증가한다. 올 2분기 기준 자영업자 연체율은 1.15%로 8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는 더 위험하다.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전국의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177만8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743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43조3000억원 늘어났다. 이 중에서 13조원이 연체됐다. 물론 역대 최대 규모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었다. 당장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만한 신용도 부족해 대부업체에서 급전을 빌려야 했던 자영업자들이 시급한 문제다. 90일 이상 이자를 못 갚은 한계차주 비중이 무려 23.7%라고 한다. 이들은 정부나 은행이 시행하는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은행과 달리 자금 조달 비용이 큰 대부업체에는 상생을 강요하기도 어렵다.
정부도 자영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소상공인에 대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과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은행대출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해 왔다. 일부 재난지원금에 적용될 예정이던 환수 조치를 백지화하기도 했다. 정부가 그동안 쏟아낸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손실 보상 등의 조치는 나름대로 필요한 역할을 했다. 경기 하강과 코로나라는 급격한 외부 충격에 따른 단기 유동성 위기는 이런 조치들 덕분에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만기 연장이든 이자 감면이든 일시적으로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조금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가계는 지금 코로나 이전 시절로 돌아가 소비를 할 여력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 가계는 지난해 2분기 기준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13.4%를 썼다. 경제가 성장해 소득이 늘어야 소비도 증가하는데 빚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연 1%대 성장으로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금리는 높다. 자영업자 대출의 대부분은 금리가 5%를 넘는다. 이자라도 갚으려면 영업이익이 그만큼 나야 한다. 하지만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영업이익률도 5%를 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중소 자영업자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기는 어렵다. 채무 조정으로 2025년 9월까지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때 가면 사정이 나아져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산업구조 변화로 위기 내몰린 자영업자들
자영업의 위기는 구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자영업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소비 침체와 함께 산업구조 변화가 가져온 수요 변화 때문이다. 재래시장 옷가게와 신발가게의 최대 경쟁자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 서비스, 해외 직접구매 확산 등 급격한 소비행태 변화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경기가 여전히 좋은 미국에서조차 유통 체계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문을 닫는 소매점포가 늘고 있다.
상황은 나아지기 어렵다. 한국 경제에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덫이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소비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거리의 빈 상가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으로 자영업자는 572만7000명을 기록해 전체 취업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수준은 15% 정도다.
악순환 구조에 빠진 자영업에는 일시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라고 해서 응급처방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잠깐의 자금 지원이나 세금 감면 같은 조치들은 경쟁력을 키워주는 방안이 아니다. 금융 지원은 결국 단계적으로라도 종료할 수밖에 없다. 유예되고 있는 금융권의 대출금도 은행이 망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결국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코로나19 기간에 정부는 재난지원금 지급이나 손실 보상 등 다양한 금융 지원을 했지만, 산업 재편에 대응한 자영업 구조조정은 시도하지 못했다. 채무 상환 능력이 부족한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채무 재조정과 동시에 폐업 지원, 사업 전환 유도 프로그램 등으로 출구를 마련해 주는 일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연히 발생할 고용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채무 조정이 원금이나 이자 감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영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루기만 할 일도 아니다. 재벌그룹 회장들이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다고 자영업 사정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