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치안감의 죽음, “줄 없으면 돈으로 승진” 경찰 진급 비리 드러내 [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광주지검의 전방위 경찰 수사 일파만파
2023-11-26 정락인 언론인
전 전남경찰청장, 하남시에서 변사체로 발견
그런데 김 전 치안감의 죽음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부장검사 김진호)가 수사하고 있는 ‘브로커 사건’ 수사의 중심에 있었다. 재임 당시 친분이 있던 사건 브로커 성아무개씨(62)에게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고, 경찰 승진 인사 비위를 저지른 의혹으로 검찰 수사망에 올라있었다. 성씨는 광주·전남 지역의 수사기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보행 데크 설치 업체를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곳곳으로 인맥을 넓혀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광주·전남 지자체와 정·관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 인맥은 특별하게 챙겼다. 그는 사교 클럽인 ‘골프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관리해 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가 주도한 골프 모임이 10여 개나 된다고 알려졌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골프 모임의 경우 광주·전남 지역을 거쳐간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 군수, 기초단체장, 건설업자 등이 주요 멤버다. 골프 모임은 자연스레 민원 해결 창구로 이용됐다. 성씨는 이렇게 쌓은 인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며 경찰 인사에 깊숙이 개입하고,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겼다. 경찰 인사철만 되면 ‘마당발’인 성씨에게 줄을 대려는 경찰관이 적지 않았다. 성씨의 승진 청탁이 먹혀들자 너도나도 그를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씨는 개별 사건에도 관여했다. 사건 관계인 등의 청탁을 받고 사건을 무마한 후 뒷돈을 챙겨왔다. 가상화폐(코인) 투자 사기범인 탁아무개씨(44)는 2019년 5월 목포교도소를 출소한 후 전국에서 잇따른 사기범죄를 벌여왔다. 탁씨는 2020년부터 여러 건의 사기로 피해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그는 이전에도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가 경찰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수차례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런 ‘뇌물의 효험’을 잘 알고 있던 탁씨는 사건 무마를 위해 사건 브로커인 전아무개씨를 찾아간다. 전씨는 “이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며 성씨를 소개한다. 성씨는 “내가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고 자신했고, 당시 광주경찰청장(치안감)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친분을 과시했다. 실제 구속될 줄 알았던 탁씨는 불구속 기소된다. 성씨의 능력을 실감한 탁씨는 28억원대의 코인 사기 등 잇따른 사기 범행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또다시 그를 찾아간다. 탁씨는 2020년 8월부터 성씨에게 사건 무마 명목으로 벤츠 자동차와 현금·코인 등 약 18억54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건넨다.그의 ‘입’에 떨고 있는 지역 실세들
사건 브로커 성씨와 김 전 치안감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구속된 전직 전남경찰청 간부 이아무개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씨는 이씨를 통해 수차례 김 전 치안감에게 승진 등을 청탁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전 치안감의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검찰 수사에 지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검찰은 계속 수사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성씨가 경찰 인사와 사건 개입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공사 수주, 불법 정치자금 제공, 1000억원대 범죄수익 은닉 등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 중 1000억원대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는 과정에 성씨가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4000억원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되자 딸이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1000억원대 범죄수익을 현금화하는 과정에 성씨가 관여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지역에서도 성씨가 자치단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데크 설치 공사를 따냈다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여기에 관련된 인사만 100여 명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성씨가 전남 지역 기초단체장 3~4명의 선거법 위반 수사에 개입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찰 최고위직뿐만 아니라 정치인 등 지역 유력 인사들도 언제든지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돈과 인맥으로 얽히고설킨 경찰
경찰 계급은 순경(9급)에서 치안총감(경찰청장)까지 11계급이다. 9개 계급인 일반 공무원보다 2개가 더 많다. 여기에 계급정년이 있어 일정 기간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해야 한다. 경찰이 승진에 목을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찰에서 승진하려면 ‘줄을 잘 잡거나’ ‘뒷돈을 줘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인사철만 되면 인사권자에게 줄을 대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학연, 지연, 출신연은 물론이고 인사권자와 친분이 있는 인물을 찾아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이 개입한다. 인사철만 되면 청장을 비롯해 인사라인에 있는 간부들은 외풍에 시달려야만 한다. 현행 경찰 인사 내규를 보면 총경급 이상 간부는 경찰청장이, 경감과 경정은 각 지방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게 돼있다. 경위에서 경감까지의 경우 서장이 추천서를 써주게 돼있고, 순경에서 경위까지는 서장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순경에서 경위까지의 승진 여부는 일선 서장의 전권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위직 경찰관들의 승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서장은 ‘특별 승진’과 ‘심사 승진’이라는 인사 재량권도 가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감까지 근속 승진이 가능하지만 인사고과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승진시험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인사고과가 나쁘면 승진하기 어렵다. ‘인사고과’를 잘 받으려면 서장 등 지휘부에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승진 인사가 이루어진 후에는 ‘누가 얼마를 주었느니’ ‘누구는 힘 있는 줄을 잡았느니’ 하며 매관매직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상과 액수까지 떠돈다. 한 전직 경찰 간부는 “인사가 끝나면 누가 돈을 주고 승진했는지 대강 짐작된다. 파격적으로 승진한 사람은 거의 다 돈을 줬다고 봐야 한다. 자신이 자랑삼아 얼마를 주고 승진했다고 직접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승진을 위한 뒷돈 액수도 계급에 따라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경찰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보통 경위는 2000만원, 경감 3000만원, 경정 4000만원, 총경 5000만원 이상, 경무관은 1억원 이상을 줘야 한다. 금액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올라간다. 뇌물을 주고 승진해 인사권자가 되면 ‘본전 생각’에 뇌물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내가 서장 할 때 돈을 가져온 경찰관이 있었다. 한번은 공개적으로 돈을 돌려준 적도 있고, 청문감사관을 불러 ‘본인에게 돌려주라’고 한 적도 있다. 그다음부터는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총경급 이상 간부에겐 청장 등 최고 지휘부가 로비 대상이 된다. 금품은 주로 현금이 오가며, 돈을 전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결재나 보고 등을 빙자해 사무실로 찾아가 직접 전달하거나 외부의 밀실, 또는 본인이나 부인이 해당 간부의 집을 방문해 돈을 전달하는 방법 등이다. 만약 승진에 실패하면 돈을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지 않으면 뒤탈이 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전직 경찰 간부는 “지인이 경감에서 경정으로 승진하려고 브로커에게 4000만원을 줬지만, 결국 실패하고 돈을 돌려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