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억누르기만 하면 사회의 성의식은 변태스러워진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남현희-전청조 사건’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 성교육 현실…건강한 성인지 감수성과 성인권 교육 강화해야

2023-11-26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최근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한 사건 중에 유독 ‘남현희-전청조 사건’은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펜싱 국가대표로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던 남현희씨가 재혼을 발표하면서 그 상대인 전청조씨가 자청한 매체와의 인터뷰가 정작 그의 발목을 잡아 무려 30명이 넘는 피해자와 30억원이 넘는 피해액을 낸 사기범죄의 행각은 다행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재벌 3세 사칭, 투자 사기, 사기 전과 10범의 이슈를 넘어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수술, 성관계 등 매우 사적인 내용이 밝혀지면서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 전씨의 사기 사건에 연루된 남씨는 ‘처음에 여자였으나 나중에는 성전환수술을 해 남자였다’ ‘나는 원하지 않았으나 그가 나의 마음을 사기 위해 명품들을 선물했다’ ‘임신인 줄 알았으나 속임수였다. 그가 가져다준 임신테스트기가 가짜였다’ ‘분명히 성관계를 했지만 남자라고 생각했다’ 등의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자신의 공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환 이식’이라든가 ‘트랜스젠더 남성이 임신을 시킬 수 있다’는 그야말로 괴이한 이야기가 사회에 회자되었으며, 이에 더해 남씨가 결혼생활을 12년이나 하고 딸까지 낳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성적 무지함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남씨 개인만의 문제일까?
전청조와 사기 공범 혐의를 받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가 11월8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청조가 11월 10일 서울동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뉴시스

성전환 수술해도 생리적인 성별은 못 바꿔

20여 년 전에 필자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겪은 한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남성인 줄 알고 몇 년간 동거했던 상대방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트랜스젠더 남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난 후에도 그 여성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실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남성이 임신을 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여기저기서 받는다. 25년 넘게 우리나라의 성교육 현장에서 일해온 필자는 우리 사회의 성교육 현실에 심한 자괴감이 들어 마음이 힘들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피해 당사자이자 공모 의혹을 받고 있는 남씨가 그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전씨와의 사적인 행위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으면서 정작 사회적 약자이면서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모두가 조롱과 수모를 당하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달라 성정체성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은 여성이거나, 또 그 반대의 경우다. 그들이 겪는 불일치함은 개인으로는 그들의 인생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며, 그로 인해 사회에서는 소수자로서의 심한 차별을 받는 사회적인 약자들이다. 필연적으로 성전환을 택해야(꼭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그나마 자신에게 진실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별을 바꾸는 ‘성전환’이 아니라 ‘성회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원래 그렇게 살았어야 할 성별로 회복한다는 뜻이다.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외모만 바꿀 수 있을 뿐 태어난 생물학적인 생리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원래 여성이었다가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남성은 정자를 만들어낼 수 없고, 임신도 당연히 시킬 수 없다. 성기 수술로 외형상 고환이 있다 하더라도 외형일 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정자를 생산하는 남성의 생식 기능을 가질 수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궁이 없기 때문에 월경은 물론 임신을 할 수는 없다. 트랜스젠더 남성은 자궁이 있으면 임신이 가능하다. 실제로 외국에는 그런 예가 종종 있다. 트랜스젠더 중에는 성전환수술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인 성별 정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가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제대로 살기 위해 수술을 하기도 한다. 많이 알려졌지만 그 수술은 과정도 지난하고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에 더해 평생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적인 성별 정정이 안 되면 트랜스젠더들은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하기도 한다. 다행히 최근 우리 사법부는 꼭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아도 법적인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도록 한 판례를 내기도 했다.  

성인권 교육 부재가 사회 혐오·차별 부추겨

문제는 이런 성정체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당당한 인생을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을 우리가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차이로 차별을 당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고 공정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등 성적 소수자들이 사회적인 약자로 많은 차별을 당하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적 다수자들조차 성적 지식이 빈곤해 자신의 몸과 마음, 관계를 건강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성소수자들, 성인권 그리고 보편적이고 건강한 성 관련 지식 등을 알아야 많은 차별과 부당함이 개선되고 사회가 건강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2022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섹슈얼리티’ ‘성평등’ ‘성소수자’ 등을 지워버렸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은 물론이고, 성평등이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실제 일부 보수단체의 성교육 반대 활동으로 성교육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지금까지 몇십 년간 역대 정부들이 맥을 이으며 진행해 오던 성인권 교육사업의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성인권 교육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성인권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평등에 대한 중요함을 알려주는 교육이다. 성인권 교육사업은 학생 스스로 성적인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성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2013년에 시작했으나 이번 정부의 예산 삭감에 따라 전국 17개 시도 중 13곳이 성인권 교육 폐지를 결정했다. 그나마 부산시는 현장 모니터링 결과, 사업에 대한 만족도와 참여율이 높아 자체 예산 편성을 검토 중이라니 다행한 일이다. 성인권에 대한 교육이 없어지면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더욱 심해질 것은 자명하다. 또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성지식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현실의 성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성인지감수성과 성의식을 함양할 시기인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학교 성교육은 기술·가정·과학 등과 보건교육 수업시간밖에 없는데(그나마 안전·절주·금연·운동·성 등 보건교육 내용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학교 교육은 수능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건교육을 위한 수업시간의 배정조차 어렵고,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교사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점점 보수화되는 사회는 건강한 성에 대한 담론의 장을 자꾸 닫아가고 있다. 성을 금기로 억누르면 죄의식을 만들고, 죄의식은 강박이 된다. 그러면 사회의 성의식은 변태스러워진다. 건강한 성담론과 성인권 교육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