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블스》 잘 가세요, 이젠 멀리 안 나갈게요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 흔들리며 마블 시리즈 역대 최악의 성적 기록 한국 팬 시선 쏠린 박서준의 분량과 존재감도 진한 아쉬움 자아내
2023-11-19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무매력의 캐릭터들
4611만 달러. 《더 마블스》의 북미 오프닝 스코어다. 마블 시리즈 역대 최악의 개봉 성적이기도 하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첫 주말 성적 30만4539명(누적 관객 수 44만 명)으로, 개봉만 하면 관객을 무섭게 빨아들이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그 위상이 말도 안 되게 쪼그라들었다. 마블의 급변한 신세에 대해 외신은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관객의 피로감’을 꼽는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질문, 무엇이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안겼을까. 《캡틴 마블》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캐럴 댄버스는 혼자가 아니다. 《더 마블스》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모니카 램보와 카말라 칸이 합류해 팀을 이뤘다. 모니카 램보는 마블의 모회사 디즈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의 《완다 비전》을 통해, 카말라 칸은 《미즈 마블》로 OTT 시청자와 통성명한 바 있다. 짐작하겠지만, 지난 몇 년간 마블이 고집스럽게 밀고 있는 영화와 OTT의 연계다. 다행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 때처럼 디즈니+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서사를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경우 디즈니+ 《완다 비전》의 후속편처럼 만들어 놓은 탓에, OTT를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흐름으로 가득했었다). 디즈니+ 관람 여부와 무관하게 서사는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는 의미다.박서준의 아쉬운 마블 입성
자, 그리고 국내 팬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던 박서준. 박서준의 마블행(行) 관련 소식이 전해진 건 2021년. 영화와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을 기밀로 붙이는 마블의 철통 보안 시스템은 팬들의 상상력만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박서준이 헬렌 조의 아들 아마데우스 조를 연기할 것이다!’ ‘아니다. 주요 빌런을 연기했을 것이다!’ ‘아니다, 캡틴 마블의 연인일 것이다!’ 등의 설이 이리저리 난무했었다. 그리고 공개된 영화 속에서 박서준은?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알라드나 왕국의 ‘프린스 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알라드나는 노래와 춤으로 소통하는 행성이다. 그런 설정에 맞춰, 봉황처럼 생긴(?) 왕관을 쓰고 모습을 드러낸 박서준은 등장과 함께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더니 급기야 캡틴 마블과 커플 댄스를 춘다. 그리고?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알라드나 행성에 출몰한 적들에게 칼 몇 번 휘두르고, 미즈 마블에게 무기 사용에 대한 조언 하나 짧게 하고는 사라진다. 그러니까, 뭐랄까. 니아 다코스타 감독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보고 반해 박서준을 캐스팅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 애정이 애석하게도 아시아인 캐릭터를 그리는 가장 안 좋은 쪽으로 풀어져버린 인상이랄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박서준에겐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작업물이다. 물론 배우 입장에선 경험치를 쌓는 데 의의를 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견에 완전한 동의는 못 하겠다. 어떤 배역을 선택하느냐가 배우의 많은 것을 보여주듯, 어떤 배역을 맡지 않았는가 또한 배우가 걸어나가는 이력엔 중요하니 말이다. 물론 아무리 한국 인기 배우라고 해도, 할리우드에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마블의 존재감이 이토록 차갑게 식을 줄, 예지력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고서야 알았겠나. 여러모로 마블에 합류하는 시기가 안 좋았다.고양이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더 마블스》에도 확실한 재미 구간은 존재한다. 고양이 캐릭터 ‘구스’가 등장하는 신들이다. 구스는 캐럴 댄버스가 공군이던 시절 의지하던 웬디 로슨(아네트 베닝) 박사가 키우던 고양이. 무늬만 고양이일 뿐, 실제 정체는 자신보다 큰 물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촉수를 가진 외계 생명체인데 이번엔 새끼 고양이들까지 떼로 등장해 존재감을 흩뿌리고 다닌다. 다만 그것이 안기는 재미와는 별개로, 고양이 등장 신들이 마블보다는 《맨 인 블랙》 느낌에 더 가까워서 살짝 톤이 어긋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캡틴 마블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게 고양이라면, 이건 좀 생각해볼 문제이기도. 쿠키 영상엔 마블의 원대한 야심이 드러난다. 21세기폭스를 인수함으로써 ‘엑스맨’ ‘판타스틱4’ 등의 판권을 되찾아온 마블은 ‘엑스맨 vs 어벤져스’의 영화화에 본격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친정집으로 돌아온 히어로들이 마블에 어떤 자극을 안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