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의 마지막 4년, 온통 고통이었다

대전 교사 유족, 학부모 8명 및 교장·교감 경찰에 고소 “피해자였음에도 가해자로 몰린 채 생 마감한 고인 명예 회복돼야”

2023-10-05     이혜영 기자
악성민원 등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 선택한 대전 교사의 유족과 변호인, 교사노조 관계자가 10월5일 대전경찰청에 가해 학부모들과 당시 학교 관리자들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기자화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등진 교사들의 유족과 동료를 잃은 또 다른 교사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이초 교사 사망을 계기로 교권 보호 중요성과 정책 보완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과거에도 현재도 벼랑 끝에 선 교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를 겨냥한 학부모의 악성민원과 무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바로 그 시점에도 수년 간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리며 고통을 겪던 한 교사가 자녀들과 가족들을 남긴 채 먼 길을 떠났다. 유족과 동료 들은 교사의 죽음에 책임 져야 할 가해자로 학부모, 그리고 학교 관리자들을 지목했다. 직접 가해자인 학부모와 교사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방치해 둔 교장·교감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전 교사 유족, 가해자들과 ‘법적 투쟁’ 시작

4년 간 악성민원에 내몰리다 사망한 대전 교사의 유족이 가해 학부모들과 학교 관리자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 대전 교사의 유족은 5일 공무집행방해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학부모 8명에 대한 고소장을 대전경찰청에 접수했다. 유족은 당시 학교 관리자였던 교장과 교감에 대해서도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고소했다. 유족과 초등교사노조, 대전교사노조 측은 고소장 접수 전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 학부모들은) 자녀만을 위한 이기심으로 교사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고 악의적 민원을 제기해 고인을 모욕하는 언사 등을 지속했다”며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학교폭력과 아동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고 증언을 수집한 결과 선생님은 생애 마지막 4년 동안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선택한 대전 초등 교사의 유족들이 9월9일 오전 해당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영정사진을 들고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과 교사노조에 따르면, 가해 학부모들은 국민신문고 7회 등 총 14회에 걸쳐 숨진 교사에 대한 민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교사 괴롭힘의 시발점으로 지목되는 사건은 2019년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했다. 당시 피해 교사는 동급생을 폭행한 학생을 교장실에 보냈는데 이에 반발한 해당 학부모와 다른 학부모들이 아동학대로 교사를 고소했고, 이후 4년에 걸쳐 끈질기게 악성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가해 학부모들의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교단은 물론 일상 생활과 온라인에서도 교사를 옥죄었다. 학부모들은 온라인커뮤니티에 피해 교사를 아동학대 범죄자로 낙인찍는 게시물을 올리는 등 고인 명예를 반복적이고 고의적으로 훼손했다는 게 유족과 노조 측 주장이다. 교사는 사망 직전까지 악성민원과 고소로 인한 후속 조치와 대응 등으로 고통을 받았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상당한 심적 부담을 호소했다. 학교 차원의 대응과 교육계의 지원 없이 오랜 시간 고군분투해 오던 교사는 9월5일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고심 끝에 법적 대응을 결정한 고인의 남편은 가해자들이 ‘사적 제재’가 아닌 ‘사법 절차’를 통한 엄정한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사법기관에서 엄정하고 정의로운 심판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유족과 교사들은 학교 관리자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교사를 외면한 채 교육활동보다 본인의 안위를 우선으로 한 학교 관리자의 태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며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학부모들의 선 넘은 행동 배경에는 관리자들의 의도적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교사노조는 유족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지속적으로 방해받으며 학교폭력 가해자, 아동폭력 가해자라는 고통스러운 이름을 달고 살았던 고인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며 “악성민원을 넣는 학부모와 보신주의로 일관한 관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길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9월4일 고인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에 근조화환과 추모의 메시지가 놓여져 있다. ⓒ 연합뉴스

잇단 교사 죽음에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

서이초 교사 사망을 계기로 2년 전 발생한 의정부 교사 사망 등 수면 아래에 있던 교권침해 사례가 하나둘 알려지며 공분이 커졌다. 그러나 교권 이슈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국회에서 ‘교권보호 4대 법안’이 논의·통과된 때에도 대전 교사를 비롯해 장기간 고통 받았던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선택은 계속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교육 당국과 정치권이 모두 나서 개선을 외쳤지만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제도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300쪽짜리 정책 보고서를 제출한 ‘현장교사 정책TF’는 지난달 25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전국 교육청에서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 없는 구호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직격했다. ‘1학교 1변호사’를 포함해 연수와 교육, 인식 강화, 심리상담 지원 등으로 요약되는 지역 교육청의 정책이 허술하고 현 상태를 안일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현장교사TF가 5583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사들은 ▲아동학대 무혐의 종결 시 악의적 신고자 교육감 명의 고발 ▲학교폭력 접수부터 결과 이행까지 전과정 교육지원청 상향 이관 ▲관리자 업무와 권한·책임 명시 ▲민원처리 중 고충처리, 교권침해와 위법행위에 대한 고소고발 및 대응전담 ▲업무 및 민원으로 사망한 교사 순직 인정 추진 ▲악성민원인 처벌 등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정책 수립과 추진을 요구했다.
9월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사 단체는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여론의 주목이 없었다면 ‘단순 추락사’로 기록된 의정부 고(故) 이영승 교사처럼 억울한 죽음을 풀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라며 유족의 요구가 있는 교사 사망 건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서울 강남 지역 한 초등학교 학부모 단톡방에서 교사를 조롱하고 인격 모독성 발언을 일삼은 학부모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 지역에서 10년 넘게 초등교사로 근무해 온 박아무개(42)씨는 “수십만 교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절규하는 와중에도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미친 여자’ ‘부검하자’ 등 눈을 의심케 하는 학부모 간 단톡방 대화 내용이 공개된 걸 보고 비참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단호한 대응을 약속한 교육 당국이 또 터져 나온 교권침해 사안에 미적지근한 반응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며 과연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