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잼버리’의 역설…‘재난 여행지’가 된 새만금 야영지

‘의도치 않은’ 노이즈마케팅 덕분…‘다크투어리즘’ 명소 되나 전북 부안 새만금 잼버리 전망대…하루 2000~3000명 찾아 “인간탐욕에 대한 ‘갯벌의 반격’…부실잼버리의 역설 직시해야”

2023-08-17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부실 잼버리의 역설일까. 국내외 여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던 전북 부안 새만금 세계잼버리 야영지가 뜻밖에 재난여행지로 뜨고 있다. 일종의 ‘재난여행’,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추모여행) 장소로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한 스카우트들이 태풍을 피해 철수하는 바람에 조기 종료하는 등 갖은 풍파를 겪었지만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의 덕을 보고있다. 

새만금 사업이 진행 중인 해창갯벌 매립지에서 열린 새만금 잼버리대회는 폭염과 벌레 창궐, 인프라 부족, 위생 불량 등으로 인해 일종의 재난이 됐다. 이것이 되레 국내외 언론의 이목을 끌면서 국민들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당분간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는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 등이 종식될 때까지 이색적인 관광 명소(?)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전망이다.

8월 15일 오후 전북 부안 하서면 새만금 잼버리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야영지. 철거작업에 나선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추모여행’ 내지 ‘반성여행’이란 휴양관광을 위한 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반성과 교훈을 얻는 취지에서 많이 아픈 곳들을 찾아가보는 여행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 유대인 대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형무소,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국내에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나 세월호 사건과 관련 있는 진도 팽목항 등이 꼽힌다.   

15일 오후 전북 부안 하서면 새만금 잼버리공원 전망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국기 게양대에 잼버리 참가국 국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방문객들의 행렬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잼버리 야양장 안에서는 중장비와 트럭 등이 철거 작업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지만 적막감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할 말을 잃은 분위기였다. 8·15 광복절 휴일을 맞아 주로 가족과 함께 찾은 방문객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잼버리 야영장을 내려다봤다. 일부는 썰렁해진 야영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웃음기 사라진 숙연한 표정이 역력했다. 

8월 15일 오후 전북 부안 하서면 새만금 잼버리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영지. 일부 방문객들은 썰렁해진 야영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웃음기가 사라진 숙연한 표정이 역력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애초 잼버리 공원 전망대는 267만평에 달하는 잼버리 야영장에 일시에 꽉 들어찬 개최지 부안군 인구(4만6000명)만큼의 텐트도시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하지만 전망대 곳곳에서는 웅성거렸고 짧은 탄식도 나왔다. “여기야!” “세상에 저런 간척지에다가...”라는 비명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는 박아무개(58·여)씨는 “잼버리 개막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하루 2000~3000명의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며 “다만 그때 들렸던 거대한 텐트도시에 대한 탄성이 지금은 한숨 쉬는 소리로 바뀌었다”고 귀뜸했다.     

대부분 사고 현장을 찾아 반성과 교훈을 얻기 위한 재난여행 차 방문한 것이 뚜렷했다. 방문객들의 화두는 단연 부실 잼버리의 원인에 모아졌다. 애초 간척지에 야영지를 조성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지지부진하던 새만금 개발 속도와 이를 위한 매립 명분을 찾기 위해 새만금 잼버리 개최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이 바탕에 짙게 깔린 분위기였다.

충남 서천군에서 온 김 아무개(45)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국제행사 파행의 현장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어 개학을 앞둔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애들을 데리고 왔다”며 “평소 까불대던 애들도 막상 황량한 야영지를 내려다보자 진지한 표정이었다”며 대견해 했다. 그는 “여야 정치권이 네 탓 공방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실패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8월 15일 오후 전북 부안 하서면 새만금 잼버리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영지. 주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썰렁해진 야영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웃음기 사라진 숙연한 표정이 역력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인들과 모임에서 왔다는 주부 이정희(42·여)씨는 “몇몇 회원들이 요즘 뉴스에서 야단법석인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함께 다녀오자는 의견을 내 동참하게 됐다”며 “어른들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야영하기 힘든 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전망대 난관에 기대어 말없이 야영장을 바라보던 한 60대 남성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아직 매립되지 않은 생 갯벌을 개최지로 밀어 붙인 데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 아닌가 싶다”며 “이번 일을 절대 잊지 않고 상식적인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부실 잼버리의 역설’을 이제라도 직시하고 인간중심의 자연관을 되돌아 볼 할 때라는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가 조성된 해창 갯벌은 2만㎡ 가량으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021년 4월 갯벌 보전과 생명평화의 마음을 담아 장승 50개를 세운 곳이다. 새만금 매립공사 중단과 환경친화적 세계잼버리 전환을 촉구하면서다. 

해창갯벌은 새만금신공항 부지로 지정된 수라갯벌과 함께 새만금 마지막 갯벌로 해수 유통을 통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새만금 사업 추진 논란과정에서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등이 참여한 새만금 삼보일배가 2003년 3월 28일부터 65일 동안 이곳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약 305㎞ 구간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