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 폭우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동안 구간 반복처럼 이어졌던 큰 피해와 호된 경험을 겪고도 이 안타까운 희생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여러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방심했던 태도에 큰 원인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귀중한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쁘지 않을 텐데 불미스러운 실패가 계속되니 참담할 뿐이다.
이 땅에는 반복되는 폭우, 반복되는 희생만큼이나 반복되는 불상사가 또 있다. 폭우 피해를 본 지역을 살핀다고 현장에 몰려가는 ‘높으신 분’들의 볼썽사나운 호들갑과 부적절한 처신이 그것이다. 지난해 여름 수해 때 서울 사당동의 피해 복구 현장을 단체로 찾아갔던 국민의힘 의원들 가운데 한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물의를 빚었던 기억을 벌써 잊기라도 한 것일까. 보이지 말아야 할 언행들이 ‘복사+붙여넣기’처럼 올해에도 또다시 반복해 나타났다. 여당 대표가 오송 지하차도 침수 희생자를 조문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빈소를 바로 찾지 못하자 동행한 당 사무총장이 지역 공무원에게 “좀 미리 와서 (안내를) 해야지”라고 다그쳤다는 언론 보도도 그 한 사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역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방문했을 때 현장 수습을 위한 견인차량이 급하게 통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도로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바로 중단하지 않아 입방아에 올랐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충북도청의 한 고위 공무원이 원 장관 옆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마저 카메라에 잡혀 유족들의 마음을 또 한번 아프게 했다. 대통령의 행적을 비판하면서 “민족의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로 밀어넣었다”고 부적절한 비유를 한 김의겸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에서 많은 국민이 엄청난 폭우에 고통받으며 시름겨워 하는 마당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등 외교 일정을 계속해 논란을 빚었다. 일각에서는 지난 5월 이탈리아 총리가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자국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 소식을 듣고 중도에 급거 귀국한 사례를 들며 윤 대통령이 즉각 돌아와야 마땅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폭우 피해와 관련해 대통령실에서 나온 “기후변화로 인해 기상이 극단화된 데 따른 사고, 즉 천재지변의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을 두고도 책임 있는 곳의 공적 발언으로 적절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 폭우 피해가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의 참화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자세다. 잘못된 대처로 천재(天災)에 인재(人災)를 보태서는 안 되는 것이 기본이다. 그 인재에 더해 부적절한 처신까지 끼어들면 더 이상 답이 없다. 그러니 제발 ‘높으신 분’들이여,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없는 마음으로는 현장에 떼 지어 몰려가지 마시라. 정 하고 싶다면 진심 어린 배려·위로와 함께 구체적인 복구 대책을 제대로 갖추고 가시라. 높으신 분들이 경쟁하듯 현장을 찾아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등 재보다 잿밥에 치우친 행동을 보이거나 위선적 생색내기에 열중한다면 그것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다시 다치게 만드는 또 다른 ‘인재’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