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통일부’ 지우기 나섰다…김영호발 인사태풍 예고

尹 격노에 “사실상 권영세 장관과 김기웅 차관을 파면한 것” 얘기 나와 앙숙이던 외교부 출신 차관 임명에 굴욕감…“우릴 부역자 취급” 항변도

2023-07-14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의 5~8층에 위치한 통일부가 그야말로 얼어붙었다. 장차관 동시 경질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은 통일부 내부에서는 “권영세 장관과 김기웅 차관이 대통령에 의해 파면당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조직 장악은 물론 부처의 정체성 찾기에 완전 실패한 지난 1년여간의 성적표를 토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란 얘기다. 업무의 연속성 등을 고려해 장차관을 함께 바꾸는 경우를 피하는 게 관례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통일부의 존재 의미에 대한 대통령의 전면 거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처럼 파격적인 인사 조치가 용산발 뇌성벽력의 끝이 아닌 시작이란 점이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를 겨냥해 “그동안 마치 대북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강력한 질타 메시지를 보낸 데서도 이런 기류는 잘 드러난다. 한마디로 환골탈태하라는 주문이다. 특히 휴일이던 7월2일 통일부만을 콕 집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홍보수석을 통해 메시지를 낸 건 대통령의 문제인식이 확고하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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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대남 협상기구 없애며 ‘文 민족주의’ 지우기

사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논란이 불거졌을 때부터 이른바 ‘문재인 통일부 지우기’의 징조는 시작됐다는 게 부처 안팎의 기류였다. 그 속도가 늦어진 데 대한 문책성 경질이라는 것이다. 때마침 얼어붙은 광화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북한도 화답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7월10일 미 공군 정찰기가 EEZ(배타적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했다며 미 정찰기 격추 등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하더니, 결국 11일 ICBM 고각 발사 도발을 감행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기존 대남 협상을 담당하던 직책과 기구도 없애면서 북한 또한 ‘문재인 통일부 지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대두됐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순방 중이던 7월12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긴급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했다. 이래저래 통일부는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윤 대통령의 격노가 가져올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부 직원 사이에서는 불만 수준을 넘어 격한 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무관급 직원은 “우리를 마치 부역자 취급한다”며 “대북 지원이나 교류가 통일부의 존재 이유 아니냐”고 항변했다. 행시 출신 과장급 간부는 “마치 조폭들 모아놓고 지난 과거를 참회하라며 문신을 지울 것을 강요하는 형국”이라고 격한 주장을 토해냈다. 전직 간부는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사회는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를 상황이 벌어졌고 통일부는 가장 큰 피해자”라고 난감해했다. 무엇보다 통일부 구성원들은 외교부 출신인 문승현 전 태국 주재 대사가 차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 상당한 거부감과 굴욕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장급 간부는 “인권 외교는 지금도 외교부가 하고 있는데 우리 부를 ‘대북인권부’로 만들려는 거냐”며 “굳이 외시 출신까지 통일부 차관에 앉혀 구성원의 사기를 꺾고 망신 주기를 하려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때 잠시 김기웅 차관이 장관으로 영전하고, 백태현 통일비서관이 차관으로 임명된다는 설에 반색하던 직원들은 인사 결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통일비서관 자리마저 민간 전문가인 김수경 한신대 교수에게 내줬기 때문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왼쪽 사진)와 문승현 신임 통일부 차관 ⓒ연합뉴스

“대북 지원에 지나치게 경도돼, 반성 필요” 지적

외교부 출신이 통일부 차관을 맡은 건 김영삼 정부 당시 김석우 차관 임명 이후 처음이다. 오랜 부처 간 알력에다 스마트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외교부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갖고 있다고 얘기되는 통일부 입장에서 ‘외교관 차관’은 견디기 힘든 상황일 수 있다. 과거 정부서울청사를 함께 쓰던 두 부처는 서로 ‘아랫것들’ ‘상것들’ 하며 다퉈 견원지간을 방불케 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 시절에는 대북 경수로 사업을 두고 감정싸움을 하다 서로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외교부는 바로 옆 청사로 옮겨간 후 ‘외교부 청사’로 부르지만, 통일부는 ‘중앙청사 별관’으로 부르며 신경전을 펼칠 정도다. 문 차관이 7월3일 취임식 직후 “남북교류 등 타성에 빠져 있었다”며 윤 대통령의 기조에 보폭을 맞추고 나서자 통일부 직원들의 볼멘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사실 꼼꼼히 팩트체크를 해보면 통일부의 항변에 일리는 있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를 ‘대북지원부’라고 몰아세웠지만,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북한에 식량이나 비료 등 지원물품이 건네진 건 없다는 점에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조선 것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데다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외부와의 통행·교역 통로를 완전 차단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쌍방울그룹의 불법적인 대북 송금이 논란을 빚고 이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이는 엄밀히 따져보면 통일부의 소관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부가 문재인 정부 시기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원칙을 벗어난 대북 지원을 추진하거나 북한의 요구에 질질 끌려다녔다는 지적 또한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2019년 9월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5만 톤의 쌀을 지원하겠다면서 40kg들이 쌀포대 130만 장을 서둘러 제작했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북측의 거부 분위기에도 일방적으로 대북 지원을 강행했지만 결국 쌀 지원은 무산됐고 쌀포대 제작비 8억원만 날렸다. 마치 “북한에 주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었다는 지적이 당시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의 ‘대북지원부’ 발언을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일부가 줏대 없이 정권 입맛에 맞춘 정책을 쏟아내거나 대북 지원과 교류에 지나치게 경도된 일처리를 해온 건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2019년 11월 벌어진 탈북 어민 2명의 판문점 강제북송 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뼈아프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수뇌부가 강제북송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한 데다 현 정부 들어 구체적인 잘못이 드러난 데 따른 대응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7월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를 감행했다고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강제북송·서해 공무원 피격 관련 수사 진행 중

한 국장급 퇴직 간부는 “탈북민 주무부서로서 북송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북측으로 서둘러 떠밀어내는 데 급급한 상황으로 보였다”면서 “장관이나 국장급 간부 등이 동조한 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송 과정을 이끈 간부가 탈북민 정착지원시설의 책임자로 윤석열 정부 들어 발령 난 건 통일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목과 관련해서는 권영세 장관과 김기웅 전 차관의 책임론이 대두한다. 잘못이 드러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관련자 문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면 통일부가 지금처럼 윤 대통령 눈밖에 나지 않았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권 장관이 윤 대통령이나 용산(대통령실)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지 않은 데다 최소한의 방패막이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도 있다. 한 간부는 “권영세 장관이야 정치인 출신으로 한계가 있겠지만 김 (전) 차관의 경우 정권 초 부처 인적 쇄신 등으로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이 손에 피를 묻히기 꺼려 하는 뉘앙스의 언급을 측근들에게 수차례 건넨 게 용산 쪽에 포착돼 경질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통일부에 대한 쇄신 메시지로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제언도 있다. 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동안의 국정 운영 전반을 평가해본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와 내년 총선을 겨냥해 ‘국가 정체성 확립’이란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측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박보균 문화부 장관을 유임시키면서도 유인촌 전 장관을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에 임명한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장관이 문화예술 분야의 ‘좌파 척결’을 내세웠지만 성과가 미흡하자 대통령이 유 특보를 통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려는 구상”이라고 풀이했다. 최근 들어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평가와 서훈 논란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확연히 차별화된 ‘윤석열표 대북 정책’ 곧 나올 듯

이런 기류를 볼 때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등 일정을 마치고 부임하면 통일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작업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교류협력에 맞춰졌던 업무 방점을 북한 인권 문제와 탈북민 정착 지원, 김정은 체제의 실체 바로 알기 등으로 옮겨가는 데 둘 것이 분명하다. 개성공단지원재단이나 남북교류지원협회 등 조직은 크게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대로 미뤄진 인권재단 출범 등에 무게를 실을 수 있다. 통일부는 현재 실·국장급 간부들이 사실상 일괄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 시절 판문점 강제북송이나 북한군에 의한 해수부 공무원 서해 피격 사망 사건 등에 직간접으로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았거나 문제가 드러난 경우는 최우선적으로 짐을 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북송에 관여했거나 공무원 피격 사망과 관련해 청와대·국방부 등과 주고받은 서류 파일을 삭제하거나 조작한 경우가 있어 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통일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 기자실 폐쇄 등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공보과장 출신 인사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하더니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등의 문제도 김영호 장관 취임 이후 정리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북한 비핵화와 과감한 대북 지원, 인프라 제공 등을 천명한 ‘담대한 구상’을 대북 정책 로드맵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고도화와 노골적인 대남 적대시 정책으로 남북관계의 반전을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김정은 체제의 폭압적이고 호전적 움직임에 눈감고 남북정상회담과 예술단 교류 등 유화 공세에 끌려다닌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국민 비판여론에 윤 대통령으로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의 강도 높은 통일부 군기 잡기는 이 같은 남북관계 상황과 한반도 정세는 물론 국민 여론의 추이와 미·일 등 우방국과의 대북 공조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곧 선보이게 될 ‘윤석열표 대북 정책’은 이전 정부와 확연하게 차별화된 기조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조직 개편과 인사는 그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