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만 하라고?”…용산도 인정한 ‘달라진 김건희’

대선 당시 ‘아내 역할’ 강조…당선 후 ‘영부인 역할’에 방점 사회‧문화 ‘광폭 행보’에 야권 일각 “제2부속실 부활해야”

2023-05-25     박성의 기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2021년 12월26일 김건희 여사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공언했다.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허위 이력’ 논란 등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지자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것이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다. 법 외적인 지위를 관행화하는 건 맞지 않다’며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과연 대통령 부부의 공언은 지켜지고 있을까. 김 여사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단지 ‘아내의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의 중론은 ‘아니다’에 찍힌 모습이다. 실제 용산 대통령실도 “영부인이라고 해서 집에서 살림만 살라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김 여사 지원팀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에 야권을 중심으로 김 여사의 약속이 무색해졌다며, ‘제2부속실’ 폐지의 근거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021년 12월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림만 하란건가”…‘김건희 방패’로 나선 김대기

24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는 대통령 비서실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날 대통령실 참모진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 ‘김건희 여사의 행보’를 두고 날선 공방전이 벌어졌다. 김 여사가 대선 당시의 약속을 파기하고 ‘광폭행보’에 나선 배경,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연이어 나오면서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김대기 비서실장이 ‘문제없다’고 반박하면서, 운영위의 분위기는 다소 험악해졌다. 질의자로 나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국민들께서 또 궁금해 하는 것이 김건희 여사 활동 사항”이라며 “최근 김건희 여사 활동이 아주 부쩍 많이 늘었는데, 제2부속실도 없는데 어디서 일정을 편성하고 동선 관리를 하는 건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비서실장은 “제2부속실은 없지만, 그냥 부속실에서 여사를 보좌하는 팀이 있다”며 “한 4~5명 되는 팀이 있다”라고 밝혔다. ‘제2부속실’은 사라졌지만 그 역할을 대행하는 별도의 팀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이 무의미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별도의 팀을 부속실에서 운영한다고 하지 말고, 원래 조용한 내조한다고 하셨는데 활동이 많아지면 (공약을 파기하는 데 대해) 사과하시고 제2부속실을 정식으로 만들어서 이렇게(김 여사 외부 활동을) 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 부속실 내에) 별도의 팀을 만들어서 이렇게 하면 계속 의혹만 넘치잖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비서실장은 야당의 제2부속실 설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이 “김건희 여사가 이제는 현안 메시지까지 내는 상황인데 제2부속실을 만들 계획은 없나. 팀도 만들어져 있는데 모두가 의구심 없이 받아들일 2부속실을 왜 안 만드는지 신비롭다”고 비꼬자, 김 비서실장은 “왜 신비로운지, 작년에도 수없이 말을 드렸다. 그렇게 2부속실을 만들면 또 인원이 늘어나지 않나. 비서관도 또 하나 늘어나고”라고 답했다. 김 비서실장은 김 여사가 밝힌 ‘조용한 내조’가 ‘살림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김 여사의 최근 행보는 영부인의 통상적 활동으로, 현 부속실 인원만으로 충분히 보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비서실장은 김 여사에게 ‘넷플릭스 투자 유치 과정’을 보고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유정주 의원 질의에 “영부인이라고 집에서 살림만 하라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받아쳤다. 김 비서실장은 “저는 보고할 수 있다고 본다”고도 주장했다.
김건희 여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홍보관 '하이커 그라운드'에서 열린 K-관광 협력단 출범식에서 한국방문의 해 홍보대사인 배우 차은우와 함께 외국인 SNS 기자단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존재감 키우는 김건희, 제2부속실 폐지 무의미?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김 여사 행보를 바라보는 야권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앞서 윤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한 김 여사가, 대통령실과 별개의 메시지를 내고 존재감을 키우는 건 ‘정치인의 행보’라는 지적이다. 실제 김 여사의 행보는 날로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김 여사는 올해 1월 여당 여성 의원들을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윤 대통령 없이 단독 오찬을 가졌다. 이어 김 여사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소통했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기간이었던 지난달 24일(현지시간)에는 벨라 바자리아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만나 “한국 신인 배우와 신인 감독, 신인 작가가 더욱 많이 발굴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치권을 넘어 사회‧문화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가는 모습이다. 일례로 김 여사는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명예위원장직을 맡았다. 김 여사는 지난 23일 ‘케이(K)-관광 협력단’의 출범식에 참석해 이부진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위원장, 차은우 한국방문의해 홍보대사 등과 함께 세계인을 한국으로 초대하는 초청장 발송 세리머니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여사는 “K-관광이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여사의 적극적인 행보가 ‘대통령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제1부속실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일정과 의전을 공동으로 챙기는 모습이 기형적이며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여사가) 정식적인 보좌진을 두고 모든 일정들을 대통령에 준해서 국민들에게 브리핑하거나 성과를 공유해야지, 이도저도 안하면 결국 국민들한테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정쟁만 낼 것”이라며 “제2부속실 등을 통해 일부 중요한 일정 정도는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의전을 담당했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지난 1월23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 제2부속실이 없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 얼마나 기형적인 구조냐 하면은, 제1부속실이 대통령과 여사의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한다”며 “그러면 산하 비서관실이나 부처는 이게 대통령 뜻인지 여사의 뜻인지를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칫하면 월권이면서, 대통령이 받아야 할 예우와 의전을 여사가 받게 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정상화(제2부속실 부활)하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