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영화 뺨쳤던 ‘라임 몸통’ 김봉현의 도주극

휴대폰 유심 바꾼 뒤 잠적…도주 48일 만 경기도서 검거 항만 원천 봉쇄에 밀항 실패한 듯…남부구치소 입감 예정

2022-12-29     박성의 기자
1조6700억원대 초대형 금융범죄를 저지른 뒤 재판 직전 전자장치를 끊고 달아난 ‘희대의 사기꾼’. ‘라임 사태’ 주범 김봉현(48)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도주극이 48일 만에 막을 내렸다. 김 전 회장은 검거 직전까지 휴대폰 유심을 바꾸고 위조신분증을 사용하는 등 ‘범죄 영화’ 같은 도주극을 벌였다. 그러나 밀항 루트를 모두 봉쇄한 뒤 지인과 가족을 샅샅이 훑는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에 덜미를 잡혔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1월11일 오후 재판을 앞두고 전자장치를 끊은 채 도주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공개 수배령을 내리고 그의 소재 파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 서울남부지검 제공

예고됐던 도주, 사법부가 도왔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이준동 부장검사)는 경기 화성시 동탄에 은신해 있던 김 전 회장을 검거했다고 29일 밝혔다. 검거된 김 전 회장은 남부구치소에 입감될 예정이다. 검찰은 도주 경위 등 집중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김 전 회장은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낸 라임사태의 ‘몸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8년 10월부터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 자금과 수원여객, 상조회 자금 등 약 1000억원을 빼돌리고 정치권과 검찰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왔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사기 등 혐의를 받는다. 김 전 회장은 재판에 성실하게 임했다. 지난해 7월 구속기한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난 후부터 11월11일 도주하기 전까지 모든 재판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김 전 회장의 도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과거 도주 전력이 있는 데다 10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30년 정도의 중형 선고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은 9월14일 김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은 10월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과는 또 기각. 검찰은 재차 통신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영장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꼬여가자 검찰은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검찰은 재판부에 김 전 회장 보석 취소를 요청했다. 법원이 영장을 ‘줄 기각’하는 사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11월8일 김 전 회장 변호인단은 단체로 사임계를 제출한 것이다. 결심공판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김 전 회장이 모종의 작전을 펼친다고 판단한 검찰은 거듭 재판부에 보석 결정 취소 의견서를 냈다. 그 사이 검찰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 전 회장은 11월11일 오후 1시30분, 결심공판을 불과 1시간30분 남겨두고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전자팔찌를 끊고 달아났다. 법원은 그제서야 오후 2시50분 보석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검찰로부터 구속 대상자가 도주했다는 통보를 받고 난 뒤였다.
ⓒ시사저널

밀항은 실패? 다시 감옥에 갇힌 김봉현

김 전 회장이 도주한 것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말에도 잠적한 바 있다. 당시 수원여객 회삿돈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라 5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간 끝에 2020년 4월 서울 성북구의 한 주택가에서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은 체포 직전까지도 수사관에게 위조 신분증을 제시했다. 두 번째 도주극에서 김 전 회장은 더 치밀해졌다. 친족의 범죄자 도피 조력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잠적 직전 조카 A씨와 휴대전화 유심칩을 바꿔 끼우고, 팔당대교까지 함께 이동한 A씨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도 제거해 놓는 등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지웠다.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의 밀항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김 전 회장 배후로 지목됐던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49)이 2019년 말 해외로 나간 뒤 현재까지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이에 검찰은 전국 항만 경계를 강화해 평택 등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가거나, 부산·거제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는 경로를 차단했다.  검찰은 바다, 하늘, 땅 모든 도주 루트를 막은 뒤 김 전 회장의 지인과 가족의 행적을 쫓는 ‘저인망식 수사’를 벌였다. 결국 김 전 회장의 도주극은 48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 미비점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법부의 영장 기각이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돕는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은 “검찰이 두 번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판사 역시 혐의를 인정했다면 도망 우려와 신병 확보 필요성에 대한 심각성을 법원이 좀 더 적극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며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불구속 재판 피고인의 신병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영장 항고제도 도입 등 적극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