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이 청소년에게 조기성애화를 부추긴다고? [배정원의 핫한 시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접하는 온라인 세상이 더 문제 교육부의 거꾸로 가는 성교육에 대한 우려 커져
2023-01-01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국제학회에서 통용되는 ‘섹슈얼리티’ 삭제시켜
그간 성에 대해 유독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가치와 태도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대상 성교육의 필요성을 각성하게 된 것은 1996년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운동을 펼쳐오던 구성애씨의 지상파 TV 강의에 힘입은 바 크다. 그 후 청소년 성교육과 성폭력 상담을 하는 NGO와 지자체의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성교육은 아동에서 청소년, 성인, 노인,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지평을 넓혀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성교육 현장은 주도적이지 못하다. 2022년에도 전남 담양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콘돔 교육을 하겠다고 했다가 일부 학부모의 항의와 거부로 인해 학교 당국으로부터 결국 경고를 받아야 했다. 최근 함께 방송을 한 지방의 한 교사는 ‘성교육이 성애교육’이라는 일부 학부모의 민원이 학교로 쏟아질 게 부담스러워 급기야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 논란의 와중에는 ‘포괄적 성교육’이란 또 다른 용어가 있다. 일부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이란 용어를 보면 마치 과녁이 나타난 것처럼 비난으로 날 선 화살을 쏘아댄다. 그런데 진짜 ‘포괄적 성교육’은 위험한 포르노 교육이고 ‘성애교육’인 걸까. 정말 ‘섹슈얼리티’란 용어를 교육하면 청소년들이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까. 성교육을 하면 아동과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성관계를 하게 될까. 그래서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지(낙태)를 수없이 하게 될까. ‘성적 자기결정권’을 허용하면 청소년들은 무분별한 성관계에 빠져들까. ‘섹슈얼리티’라는 용어가 성교육에서 중요한 개념이 된 것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 본래 성교육은 ‘sex education’이라 했지만, 성기 혹은 성행위 개념이 sex의 의미를 대표하면서 정작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인간의 넓은 성’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졌다. 성의 영역에서 성관계(섹스)는 그야말로 n분의 1에 불과하다. 성교육에서 다뤄야 할 인간의 성은 생명으로서의 자신의 신체(발달 단계에 따른)와 심리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잘 관리하며, 나를 존중하고, 마찬가지로 남을 존중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고, 성적 의사결정에서도 건전한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에 이로운 쪽으로 하는 훈련과 태도를 모두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로 섹슈얼리티가 채택된 것이다. 오해하듯이 섹슈얼리티는 성정체성만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몸과 정신, 관계, 가치, 태도, 행동을 말하는 용어란 것이다. 국제학회에서 성교육을 기존의 sex education이 아니라 sexuality education으로, 성상담은 sexuality counseling이라 부른 지 이미 10여 년이 넘었고, 성교육 관련 연구발표 때도 sex보다 sexuality에 대한 논의가 훨씬 많다.겁주는 성교육이 아닌 제대로 된 교육 필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있는 존재를 무시하고, 지워버린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살아있는 누구나 다 소중한 사람이다. 오히려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으로 차별하고 괴롭히거나 무시하지 않는 ‘인간 존중’의 가치가 아닐까. 2018년 유네스코에서는 인권이 기반이 된 국제 기준의 성교육안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포괄적 성교육’이며 2035년까지는 전 세계가 한 방향으로 성교육을 전개하기로 권고한 바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위험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인간으로서 자신과 또 타인을 존중하며, 합리적이고 좋은 관계를 맺어가며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데 진정한 목표가 있다. 어쩌면 정말 문제는 우리 사회가 ‘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성행위 중심으로만 사고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테다. 그래서 성교육도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교육이라기보다는 섹스 교육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조기성애화니 무분별한 섹스니 하고 법석을 떠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은 거의 모두 그 나이에 이차 성징을 겪는다. 좀 더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월경을 하고 사정을 하는 이른바 생식이 가능한 성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단계가 이때다. 이때 그 생식을 불러오는 통로인 성관계가 일어나는 시점이나 방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위험 혹은 어려움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결정이나 동의를 하거나 받아들이는 훈련, 혹은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겁주는 성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면 청소년들의 성관계 개시 연령은 늦춰진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위험이나 고달픈 인생이 펼쳐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보는 지속적으로 똑같은 내용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또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행위에만 한정된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하는가의 권리다. 좁게는 성행동을 결정하고, 내용을 정하고, 피임 방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자기에게 이롭고 좋은 행동을 스스로 주도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이 권리는 부모나 어른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권리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면, 남들의 성적 부추김이나 강요 상황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동의 여부를 행사할 수 있다. 성을 금기로 쉬쉬하는 세상에 살았던 우리가 정말 원할 때 성행동을 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주도적으로 자기 의견과 권리를 말하고 지킬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성교육이 조기성애화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특히 청소년들이 너무나 쉽게 접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성을 부추기고 있다. 성교육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그런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랑과 성행동을 하도록 안내하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도다. 교육부가 이번에 개정한 내용을 적용하기까지 아직 1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다시 한번 논의하고 협의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