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 열풍 이끈 3가지 키워드

회귀 설정·결핍으로 인한 욕망·재벌 선망 현상 등에 업고 시청률 고공행진

2022-12-18     하재근 문화 평론가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12월11일 11회에 전국 유료가구 기준 시청률 21.1%를 기록했다. 올해 대다수의 드라마가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쳤던 JTBC로선 오랜만의 흥행 단비다. 비지상파 채널 전체로 봐도 2020년 JTBC 《부부의 세계》 이후 2년 만의 20% 돌파다.  방송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선 4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주연배우 송중기 역시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발표한 통합 콘텐츠 랭킹에선 3주 연속 1위다.  심지어 KBS 주말극까지 위협한다. 현재 KBS2에서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삼남매가 용감하게》는 12월11일 시청률 22.5%였다. 그런데 같은 날 《재벌집 막내아들》이 21.1%를 기록하며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상승 추세이기 때문에 《삼남매가 용감하게》를 넘어설 가능성이 엿보인다. 넘어서지 못한다 해도 비슷한 수준까지 간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KBS 주말극이 드라마계의 압도적 원톱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삼남매가 용감하게》가 KBS 주말극치고는 유난히 인기가 저조하긴 하다. 그런 약세엔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영향을 미쳤겠지만, 방송 시청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변수였다. 인터넷 동영상 회사들이 인기를 끌면서 기성 방송의 입지가 약해졌다. 그래서 드라마 시청률이 동반 하락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독 《재벌집 막내아들》이 급상승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한 장면·포스터ⓒJTBC 제공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한 장면·ⓒJTBC 제공

드라마에 무관심했던 중년 남성과 젊은 층 열광 

과거 JTBC에서 기록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부부의 세계》는 치정극이어서 주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가 쉬웠다. 반면에 《재벌집 막내아들》은 막장 치정극하고는 거리가 먼 미니시리즈 형식의 드라마인데도 주말극에 필적하는 시청률 수치를 기록했다.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신흥 인터넷 동영상 채널에 밀리기만 하던 기성 방송사들에게 희망을 보여줬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토일 편성이라는 과감한 선택이 요즘 시청자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졌다.  이 작품은 평소 드라마에 무관심하던 중년 남성들의 관심을 모았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주말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중년 여성이라는 공식을 깬 것이다. 이 작품이 현대사를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경제계의 굵직한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렇게 과거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이 작품이 이른바 회귀물이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한국 최대 재벌 순양에서 오너 일가 시중을 들던 고졸 사원 윤현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1980년대로 돌아가 순양 진양철 회장의 초등학생 막내 손자 진도준이 된다.  과거로 돌아갔지만 윤현우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즉 미래를 안다는 이야기다. 원래 진도준의 부모는 진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처지였다. 하지만 어린 진도준이 1987년 대선 때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후보 중에서 어느 줄에 서야 할지를 할아버지에게 알려준다. 선거자금을 제공한 진양철 회장은 반도체 독점권을 받는다. 할아버지에게 반도체 산업에 대한 확신도 심어준다. 중동에 출장 갔던 할아버지가 KAL 858기에 탈 뻔한 걸 구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진도준은 진양철 회장의 총애를 받게 된다. 진도준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분당 땅 5만 평을 선물로 달라고 해서 받는데, 그 땅이 노태우 정권 때 240억원이 된다. 그 돈을 달러로 바꾼 진도준은 미국 인터넷 업체에 투자해 닷컴버블 당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고 외환위기 때 한국 금융시장의 큰손이 된다. 상암DMC 개발이나 펀드 열풍도 주도한다. 그리고 급기야 순양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최근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려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중년 남성의 시선을 끌게 됐다. 드라마 속 표현과 실제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순양은 삼성처럼 보이고, 진양철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전 회장을 합친 캐릭터 같다. 기아자동차나 새롬기술(과거 코스닥 버블 대장주)을 떠올리게 하는 회사가 등장하는가 하면 진도준이 투자한 회사는 아마존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추리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기성 채널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젊은 층도 시청 대열에 합류했다. 회귀 설정이 젊은 층의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상당히 널리 퍼진 보편적 욕망이다. ‘내가 재벌집에서 태어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가 많이 퍼져 있다. 양극화 속에서 미래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원래 결핍이 커질수록 욕망도 커지는 법이다. 우리 사회엔 상대적 결핍이 매우 크다. 최근 유동성에 의한 자산 상승기에 많은 젊은이가 마지막 기회라며 투기에 뛰어들었지만 인생 역전에 성공한 이는 드물다. 이젠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사라지자 집, 주식, 가상화폐 가치가 하락해 결핍의 골이 더 깊어졌다. 부유함에 대한 욕망이 더 커졌는데, 그때 《재벌집 막내아들》 주인공이 새 삶을 시작해 통쾌하게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대리만족을 준 것이다. 드라마 제목을 노골적으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고 한 것 자체가 사람들의 1차원적인 욕망을 건드렸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JTBC 제공

재벌 오너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지적도 

결핍이 커지면 선망도 커진다. 재벌을 선망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선 진양철 회장의 인기가 높다. 진도준이 진양철 회장을 적대시하자 인터넷상에서 진도준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어났을 정도다. 과거 1980년대엔 젊은이들이 재벌에 부정적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우리 재벌을 통해 ‘국뽕’을 느끼는 이가 많아졌다. 오너의 갑질엔 비판적이지만 세계를 누비는 기업 자체는 우리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업들의 성장사는 눈부신 성공의 연대기라고 여긴다. 그런 이들에게 저개발국가에서 대기업을 일군 1, 2대 오너들은 선망할 만한 위인이다. 젊은이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자기계발과 재테크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독하게 반도체 사업을 밀어붙이는 진양철 회장에게 응원이 쏟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 오너를 너무 미화한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 재벌 성장사엔 국가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작품 속에선 오로지 오너의 능력으로만 이룬 것처럼 그려진다. 이런 설정이 재벌에 대한 선망을 더 키울 수 있다. 어쨌든 그 선망 속에서 이 작품의 승승장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