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을 대하는 기업의 현명한 자세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기업 경영과 지속적인 사업을 위협하는 요소로 거론 미래 리스크 전반에 대한 점검과 평가 통해 대비해야
국제적인 연례행사 가운데 하나는 매년 이맘때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다. 거의 모든 나라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이기 때문에 당사국 총회는 200여 개 나라의 대표단과 더불어 관련 기업, 시민단체 등 많은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라 할 수 있다. 올해 제27차 당사국 총회(COP27)는 아프리카 이집트의 홍해 휴양지인 샤름 엘 셰이크에서 11월6일 개막했다. 작년 스코틀랜드에서 개최된 제26차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세계적 차원의 석탄 사용 중단 등 많은 논의에서 진전이 있었던 만큼 올해 회의는 회담장이 위치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배상 등의 논의들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는 손실과 피해에 대한 자금 조달이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 국가와 그로 인해 피해를 본 국가들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해온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거나 충분히 대응할 경제적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적도 근처 및 저위도 지역에 위치하는 개도국 및 빈곤국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은 미미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개도국들은 ‘손실과 피해’ 조속 지원 촉구
지난 20년 동안 기후변화협약에서의 논의는 주로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선진국들은 그동안 개도국들의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및 민간 등을 합해 연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고 이 가운데 400억 달러는 적응을 위해 지출될 것이라고 약속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과 목표는 제대로 달성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에너지 사용을 감축해야 한다는 선진국 중심의 담론에 대해 반감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능력에 따른 부담’이라는 기후변화협약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보유한 화석에너지를 이용해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권리라는 점을 확인받으려 하고 있다.
물론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져야 할 대규모 재정 부담을 우려해 이러한 메커니즘 도입과 활성화에 대해 거부해 왔다. 올해 초 독일 본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 연합체인 G77그룹은 선진국에 적응 수준을 뛰어넘는 ‘손실 및 피해’에 대해 선진국들이 약속한 지원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선진국 재무장관들이 2021년 말 개도국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수조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 지원은 2019년 이후 796억 달러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표출인 것이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30년 사이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조3000억 달러에서 1조6000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7150억 달러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필요하지만, 손실 및 피해(2890억~4400억 달러), 적응(2599억~4070억 달러) 등도 상당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인도양과 접하고 있는 동아프리카 지역이 1430억 달러로 가장 높은 적응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전 지구적인 행동을 위한 열정과 노력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른 국가 간 대립과 전선이 좀 더 명확해지고 있다. 개도국의 이러한 논리와 요구에 대해 미국은 현재의 배출 규모 및 증가량을 고려할 때 2030년이 되기 전에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은 이제 미국과 EU 선진국 이외에 중국, 인도 등도 동등하게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종전의 구분을 폐지하고 ‘주요 배출국(major emitters)’이라는 용어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으나 중국, 인도 등으로 구성된 개도국 연합 세력과 아랍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좌절됐다.
산업 특성상 한국 기업에 리스크 커
손실 및 피해에 대한 지원 방안에 독일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은 기존의 인도적 지원 확대와 보험 형태의 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동안 약속했던 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만큼 개도국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개도국들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 배출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에 대해 직접 보상하라는 것이지만 선진국들은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지출 비용이 수조 달러에 이를 것이며, 특정 국가의 배출과 특정 국가의 피해를 직접 연결할 수는 없다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개도국의 이러한 요구는 얼핏 보면 무리한 요구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보면 유사한 형태의 협상이 타결된 전례가 있다. 2010년 체결된 유엔생물다양성협약은 유전자변형(GM) 유기체와 관련한 책임과 보상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도해 유전자변형 유기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끝에 이를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더 큰 문제인 기후변화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장이다.
경제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손실 및 피해에 대한 보상책임 메커니즘이 구체화할 경우 기업의 부담이 가중된다. 손실 및 피해에 대한 보상 재원은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집단인 기업들에 세금 또는 부담금 등의 형태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전환과 효율화 등에 이미 많은 투자와 비용 상승의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부담 가중은 기업 경영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산업구조 특성상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재생에너지 비중도 낮은 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손실 및 피해와 관련한 메커니즘 도입에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과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단 시작된 논의는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리게 되며, 그 과정에서 비용과 부담 상승은 불가피하다.
기후변화는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조치는 당장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막연한 먼 미래에 맞춰 잘 준비하겠다는 수준이 아닌 당장의 기업 경영과 지속적인 사업 영위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부담과 위협 등 리스크 전반에 대한 점검과 평가를 통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