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는 성공했는데 《브로커》는 왜 실패했나
다국적 협업 콘텐츠의 가능성과 한계는? 로컬 관객 감동시키기 위해 철저한 고증 필수
2022-07-02 정덕현 문화 평론가
봉준호는 일찍이 눈떴던 다국적 협업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2020년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여기서 ‘1인치의 장벽’은 다름 아닌 ‘자막’이다. 특히 자막 읽는 걸 싫어하는 미국인들을 겨냥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사실 봉준호 감독의 이 선언적인 이야기는 이미 과거 그가 《설국열차》나 《옥자》를 통해 조금씩 현실화해 왔던 것들이다. 물론 《기생충》은 온전히 우리 자본에 우리 제작진과 배우들이 출연한 토종 콘텐츠지만, 봉준호 감독은 일찍이 글로벌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영역을 넓혀온 인물이다. 이미 다국적 협업이 가진 가능성을 봤고, 그것이 미래의 길임을 내다봤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제작 과정을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다국적 협업에 신경 썼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2004년 우연히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설국열차》라는 프랑스 만화를 읽으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2006년 원작 판권을 계약했고, 2010년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으며, 2011년 다국적으로 이뤄진 프리 프로덕션과 배우 캐스팅을 하고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4월까지 체코에서 촬영했다. CJ가 400억원대 제작비를 투자한 이 작품에 프랑스는 물론 체코, 미국 국적 회사와 인물들이 제작, 출연, 배급까지 참여했다. 《괴물》부터 《마더》를 거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를 통해 대중성까지 확보한 감독으로 글로벌 시장에 인지됐다. 넷플릭스가 《옥자》에 600억원을 투자해 오리지널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옥자》는 개봉 당시 멀티플렉스와의 갈등 때문에 지역 극장에서 개봉됐는데, 넷플릭스로서는 OTT라는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우리 콘텐츠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줬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러한 프로덕션이 다국적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미 시장은 글로벌로 가고 있었고, 우리네 영화의 최전선에 선 봉준호 감독은 그 흐름에 일찍이 뛰어들었다. 그가 ‘1인치 장벽’을 이야기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과 다국적 협업은 봉준호 감독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이미 자리해 가고 있었다. 우리네 영화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 역시 BBC가 제작 투자한 영국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나리》도 한국 배우들과 한국계 미국인 감독 리 아이작 정이 협업한 작품이고,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재일한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디아스포라를 담아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파친코》 역시 애플이 투자하고 한국 배우들과 한국계 미국인 감독, 작가가 협업한 작품이다. 이 흐름은 올해 칸영화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에는 중국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이 주연을 맡았고,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로커》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했다. 콘텐츠 시장에서 다국적 협업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미 OTT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오는 로컬 콘텐츠들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소비환경 변화다. 이러한 소비환경 변화는 이른바 ‘글로벌 대중(혹은 소비자)’이라는 보다 전 세계적인 관객을 콘텐츠들이 타깃으로 삼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1인치의 장벽’을 넘어 다양성을 즐기면서도 그 문화나 언어 등의 경계를 깨버리는 공감지대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 같은 시리즈는 우리네 경쟁사회를 풍자적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전 세계가 공감하며 열풍을 일으키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물론 이런 글로벌 공감은 이미 할리우드가 지향해 왔던 것이지만, 최근 달라진 건 지역적이고 로컬의 색깔이 분명한 콘텐츠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K콘텐츠의 급부상은 이런 글로벌 시장과 대중의 탄생과 소비 방식의 변화가 밑바탕이 돼 가능해진 일이다.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그렇다면 다국적 협업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항상 성공할까. 그렇지 않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흥행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됐다. 6월8일 개봉해 27일 현재까지 120만 관객을 동원한 《브로커》는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평가도 좋지 못했다. 여러모로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브로커》는, 그 작품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CJ가 투자한 작품으로 감독이 일본인이지만, 배우들은 모두 한국인이라 그 정서적 차이가 큰 것이 작품에는 한계로 지목됐다. 즉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가진 상황이나 대사들이 우리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로 옮겨지면서 어딘가 이질감을 만든 면이 있다. 한국 영화지만 특유의 속도감이나 드라마틱한 극 진행 같은 것들이 아쉽게 느껴지고, 어떤 대사는 한국말이지만 일본어가 떠오르는 정서적 괴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인 감독이 연출하는 것이라고 해도,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고 등장인물들도 한국인이라면 감독의 대본을 좀 더 철저하게 한국화하는 작업이 전제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