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2》가 보여 준 마블 대혼돈의 시기
더 빨려들까, 멀어질까 마블 관객 수용력의 리트머스지가 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2022-05-07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 《닥터 스트레인지2》의 일부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서글픈 뉴스 하나. 당신은 디즈니플러스(이하 디즈니+)가 제공한 《완다비전》(2021)을 보지 않았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2》)에 등장하는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가 왜 저 지경(흑화)이 됐고, 왜 ‘팀 킬’을 하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은 언제 낳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이 미친 여자야!’라고 할 공산이 크다. 《닥터 스트레인지2》는 분명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영화지만, 절반의 비중은 완다가 쥐고 있는 영화다. 이야기 흐름 면에서 《완다비전》의 후속편처럼 보이는 설정도 드글드글하다. 그런 《완다비전》을 모른 채 《닥터 스트레인지2》를 보겠다고? 그건 흡사, 수학에서 ‘덧셈’ ‘뺄셈’을 배우지 않고 ‘곱셈’ ‘나눗셈’으로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야 몇 마디 대화만으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락영화 찾았다가 오리무중을 한 아름 안고 극장 문을 나설 게 자명하다.1인 다역을 감상하는 재미
그렇다면 제기할 법한 의문. 디즈니-마블은 왜 이럴까. 그들이 노리는 건 명백하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즐기려면 디즈니+도 구독하라’는 일종의 암시가 극 전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벤져스’, 더 나아가 ‘시빌 워’라는 큰 그림을 향해 ‘따로 또 같이’라는 기획의 시대를 열었던 마블은 이제 영화와 OTT 플랫폼을 동시에 크로스하는 시대를 열려고 하고 있다. 디즈니-마블의 자신감인지, 모험인지, 무리수인지 모를 이 제안에 이제 관객이 반응할 차례. 《닥터 스트레인지2》는 이에 대한 관객 수용력의 리트머스지로 평가될 운명으로 보인다. 지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멀티버스’는 세계관 확장을 노리는 MCU엔 사랑의 묘약과도 같은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2008년 《아이언맨》으로 첫 삽을 뜬 후, 마블 왕국이 세를 넓혀온 세월도 어느덧 15여 년. 그사이 개국 공신들이 하나둘 하차했고, 남은 캐릭터들이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입지도 좁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즈니-마블은 멀티버스를 껴안으며 캐릭터와 설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심폐소생시키는 발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또 다른 자신과 공존했던 것이 대표적. 마침 소니픽처스와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 제작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이 역대 스파이더맨을 한자리에 소환하는 깜짝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멀티버스가 MCU의 핵심 화두로 기능할 것임을 짐작게 했다. 예상대로 《닥터 스트레인지2》는 멀티버스를 엔진 삼아 빠르게 달려 나간다. 마블 유니버스에 첫 데뷔한 히어로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의 능력부터가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차원 이동 능력을 가진 아메리카 차베즈를 노리는 완다와 그런 완다를 저지하기 위해 다차원 세계를 여행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활약이 이번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일단 《닥터 스트레인지2》가 선사하는 그래픽 이미지는 놀라운 수준이다. 특히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 차베즈가 여러 차원을 연이어 넘어갈 때 부리는 묘기는 눈이 호강할 정도로 호사스럽다. 이 멋들어진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고군분투했을지가 감지된다. 다른 차원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정 또한 이번 편을 추동하는 ‘빅 재미’다. 보는 이들의 오감을 단숨에 사로잡는 자질을 갖춘 마성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1인 다역 캐릭터를 이물감 없이 너끈하게 해치운다. 그중 백미는 ‘살아있는 시체’처럼 등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것은 좀비 영화인가, 블록버스터인가, 코미디 영화인가! 배우의 다채로운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곳곳에 들어앉은 샘 레이미의 인장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등장인물만큼이나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메가폰을 잡은 샘 레이미다. 샘 레이미가 누구인가. 소니판 《스파이더맨》 시리즈 1~3편을 저글링하며 놀라운 흥행 신공을 발휘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이블 데드》 《드래그 미 투 헬》 등 공포영화에서 남다른 기지를 발휘해온 영화광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는 샘 레이미의 인장들이 즐비하게 튀어나온다. 전투 장면에서 등장하는, ‘허리 댕강’ ‘머리 싹둑’ ‘피 칠갑 질질’ 같은 이미지들은 호러 영화의 그것과 판박이다. 전투로 산발 머리가 된 완다가 두 다리 쩔룩거리며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뒤쫓는 터널 장면 역시 호러물을 보는 듯 기괴하고 흥미롭다. 다만 감독이 자신의 인장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작품 전체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으로 이어지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이 영화에서 샘 레이미의 손맛이 느껴지는 몇몇 장면은 분명 호쾌하고 서늘하고 때로 낄낄거리게 하는 재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슈퍼히어로물 안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종종 이상한 기운을 발화시키기도 한다. 음표 대결 시퀀스가 그런데, 엉뚱하고 기괴한 샘 레이미의 취향을 지지하는 관객에게 이 시퀀스는 다시 돌려 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겐 유치하게 다가갈 위험도 안고 있다. 샘 레이미의 취향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가 연출한 다음 마블 영화도 개인적으로 챙겨볼 생각이다. 그러나 의문이긴 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마블의 행진에 기꺼이 동참할지. 점점 방대해지는 마블 세계관에 피로감을 느끼는 팬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닥터 스트레인지2》는 그 피로감을 덜어줄 생각이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것이 팬층을 견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팬들의 이탈을 부를지. 바야흐로 마블 대혼돈의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