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하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예상 밖 인사’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후보자는 이른바 ‘조국 수사’를 계기로 변방으로 밀려났던 인물이다. 정권 교체와 동시에 한 후보자가 법무부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한 후보자와 민주당 출신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과의 악연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후보자는 검찰 안팎에서 인정받은 실력자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수사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까지 권력 수사의 중심에는 한 후보자가 있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출세길’이 막혔다. 이른바 ‘조국 수사’를 주도하고 ‘채널A 검언유착 의혹’에 휘말린 영향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한 후보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으로 연이어 좌천됐다.
그러나 대선이 윤 당선인의 승리로 끝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한 검사장이) 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주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다”며 한 후보자 중용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한 후보자가 오는 검찰 정기 인사에서 가장 유력한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지검장의 한참 ‘윗선’인 법무부 장관 자리로 직행하게 됐다. 한 후보자의 ‘초고속 승진’에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상당 부문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응하기 위한 ‘맞대응 인사’라는 해석도 나온다.
법무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오면 문재인 정권에서 진행했던 검찰개혁 관련 모든 업무가 ‘올스톱’ 되거나 ‘리셋’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 후보자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및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견원지간’이다.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칭을 생략하거나 ‘씨’로 대체하는 식으로 불신과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왔다.
앞서 추 전 장관은 2021년 12월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널A 검언유착 의혹’을 언급하며 “검언공작에 대한 진상 조사 보고서에는 한동훈이 범정을 연결해준다고 이동재 기자에게 범정에 제보하라고 유인,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썼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입장문을 내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추미애씨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자는 정권 교체 뒤에도 전·현직 법무부 장관에 대해 거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6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채널A 사건’ 연루 의혹과 관련해 자신을 무혐의 처분한 직후 입장문을 냈다. 한 후보자는 ‘법무장관 추미애·박범계의 피의사실공표와 불법 수사상황 공개 및 마구잡이 수사지휘권 남발’을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 장관이 반발했다. 그는 8일 오후 법무부 과천청사로 들어오면서 격앙된 어조로 “저는 여러분(취재진)이 그분(한 후보자)의 실명을 물을 때마다 거명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며 “금도(禁度·넘지 말아야 할 선)라는 게 있다. 무슨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한 후보자를 향해 “대통령도, 검찰총장도 그렇게 못 한다”며 “내가 죄가 있으면 당당하게 고발하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건 나라의 기강과 질서, 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참담함을 느낀다”며 “무섭다”고 했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과의 악연을 근거로 한 후보자가 부임하면 ‘보복성 수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후보자는 13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당선인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과 관련해 “당선인이 약속한 것이고, 나도 지난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의 해악을 실감했다”며 “내가 취임하더라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