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독립을 기억하는 ‘산타리타 120’ [스토리 오브 와인]
오히긴스 장군 활약상, 한국 임시정부 독립전쟁과 닮은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쟁은 난민을 낳고 도시를 폐허로 만든다.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국가별 이권이나 정치적 목적의 전쟁은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전쟁도 있다. 영토를 수호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전쟁은 피할 수 없을뿐더러 전장의 영웅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안시성 전투의 양만춘, 임진왜란의 이순신,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등은 전쟁이 낳은 영웅이다.
의로운 전쟁의 일화가 낳은 와인이 있다. 한국 근대사의 한 축을 차지하는 독립군의 항일전쟁과 꼭 닮은 이야기를 품은 이 와인의 이름은 ‘산타리타 120’이다. 1810년대 칠레 독립군 소속 오히긴스 장군은 우리나라 독립군의 김좌진·홍범도 장군처럼 칠레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였다. 오히긴스의 승전은 칠레 독립군의 사기를 끌어올렸고, 반대로 그의 패배는 뼈아팠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는 1810년부터 우리의 임시정부 격인 국민회의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을 본격화한다.
120명 독립군이 몸 숨긴 와이너리
산타리타 120의 탄생은 18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히긴스 장군은 1814년 란카구아 전투에서 스페인군에 대패한 후 퇴각해 산타리타 와이너리에 몸을 숨긴다. 당시 남은 군사는 120명. 와이너리 주인은 선뜻 오히긴스 장군과 군사들이 숨을 장소를 제공하고 이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스페인군의 추격을 따돌리진 못했고 결국 와이너리에 스페인군이 들이닥치지만 주인의 기지로 발각되지 않았다.
당시 와이너리 주인이 어떻게 오히긴스 장군의 군대를 들키지 않도록 숨겼는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와인의 품질이 변질될 수 있어 양조장이나 카브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스페인 역시 와인 제조국이니만큼 와인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을 인정해 돌아갔다는 것이다.
오히긴스 장군은 와이너리 주인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임시정부가 상해에 거처를 두었던 것처럼 칠레 역시 아르헨티나에 독립 거점을 두었다. 오히긴스 장군은 3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1817년 독립군을 이끌고 스페인군과 싸워 승리한다. 이 전쟁은 칠레의 독립으로 이어졌고, 오히긴스 장군은 칠레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패퇴한 오히긴스 장군의 군대를 숨겨준 와이너리인 산타리타는 칠레가 독립한 후 특별한 와인을 만들었다. 와이너리의 이름인 ‘산타리타’에 당시 생존했던 군사의 수인 ‘120’을 더한 직관적인 네이밍을 내건 ‘산타리타 120’이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칠레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인지 이 와인의 가격은 데일리와인으로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도 대형마트 기준 1만원 내외면 구입이 가능하다. 매일 마시며 칠레의 독립전쟁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1일은 삼일운동 103주년이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떠올리고 또 나라를 지킨 위인들의 값진 승리를 되새기며 마시기에 ‘산타리타 120’은 부족함이 없는 와인이다. 독립운동이 아니더라도 오히긴스와 오버랩되는 위인은 또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다. “이순신 장군에겐 12척의 배가, 오히긴스 장군에겐 120명의 군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