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K-방역’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대구지방법원의 지역 내 방역패스 일시 중단 결정에 항고 입장을 밝혔던 정부가 불과 4일 만에 입장을 선회한 셈이다. 자영업계와 의료계 일각에선 정부가 법원 결정에 따라 방역 기조를 바꾸는 ‘오락가락 방역’으로 현장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2차장 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중대본 회의에서 “내일(3월1일)부터 식당, 카페 등 11종 다중이용시설 전체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방역패스가 해지되는 다중이용시설은 △유흥시설 △실내체육시설 △노래연습장 △목욕장 △경마·경륜·경정·카지노 △PC방 △식당·카페 △파티룸 △멀티방 △안마소·마사지업소 △(실내)스포츠 경기(관람)장이다.
방역패스 잠정 중단 결정의 결정타는 대구지법 측 판단이었다. 대구지법은 지난 23일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시민 308명이 대구시장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집행정지 소송 일부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대구 지역 식당·카페서 60세 미만 시민의 방역패스 적용이 중지됐다. 정부는 반발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기자 간담회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안정화된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즉시 항고를 검토할 것”이라며 판결 불복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부는 돌연 항고 결정을 번복하고 방역패스를 잠정 중단했다. 앞서 서울, 인천, 경기, 울산 등 타 지역에서도 방역패스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방역패스 중단 취지의 지방법원 판결이 추가될 경우 국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8일 방역패스 잠정 중단의 이유에 대해 “(백신) 예방접종률이 상당히 향상되고 있음에 따라서 방역패스 필요성에 대해서 논란과 갈등이 커지고 있고 (해당 갈등이) 오히려 방역 정책에 있어서의 사회적 연대성을 약화하는 측면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거리두기 및 방역패스의 철폐를 요구해온 자영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확진자 증가 가능성’을 근거로 방역패스를 고집하던 정부가 법원 판결 하나로 방역 기조를 뒤바꾼 건 처음부터 방역의 ‘원칙’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민상헌 코로나피해자영업자총연합 공동대표는 28일 “정부의 이번 결정을 기본적으로는 환영한다”면서도 “정부가 그간 방역에 있어 일관성이 없었다. 방역 조치에 대한 근거가 확고하면 우리가 아무리 반대해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민 공동대표는 “자영업자들 중에선 진작 중단할 수 있었던 방역패스를 이제서야 중단한 건 이미 늦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며 “이런 식으로 (방역을) 조금씩 풀어갈 거면 영업시간 제한도 철폐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는 방역패스와 함께 방역체계의 큰 축인 거리두기 완화 결정에 있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전체적인 방향에서 방역 완화 측면으로 가는 건 큰 문제 없을 거라고 본다”면서도 “거리두기를 전면적으로 완화하는 건 의료 대응 여력 등을 고려했을 때 정점을 찍고 내려올 때 단행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