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푸틴은 14년 전부터 이미 계획이 있었구나
2008년부터 ‘종이호랑이’ 러시아군 대대적 개혁…나토 위협하는 지금의 군 전력 대해부
2022-02-18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핵전력 외에 재래식 군사력도 강력해
러시아의 군사력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핵전력이다. 러시아는 1만2000개 핵탄두를 보유하고 이 중 4650개를 실전배치한 핵보유국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9600개 핵탄두를 보유하고 이 중 2468개를 실전배치한 미국보다 더 큰 규모다.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전략무기 삼지창’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탄도미사일발사잠수함(SSBN), 전략폭격기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ICBM 336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SSBN 11척, 그리고 전략폭격기 76대 등이 있다. 러시아가 위협적인 이유는 재래식 전력도 강력해서다. 러시아군은 육군(28만 명)·해군(15만 명)·공군(16만5000명)과 함께 전략미사일군(8만 명)·공수군(4만5000명)까지 기본 5군 체제를 유지한다. 해군 소속의 해상항공(3만1000만 명)·해병대(3만5000명)와 국경경비대·철도군 등을 합쳐 90만 병력을 운용한다. 전통의 군수산업을 바탕으로 무기체계와 장비도 현대적이다. 육군은 T-72B 계열의 주력전차 2840대, BRDM-2를 중심으로 하는 기갑정찰차 1700대, BMP-1 등 보병전투차 5220대, BTR-80을 비롯한 병력수송장갑차 6100대를 운용한다. 헬기 전력도 상당하다. 공군은 Tu-95를 비롯한 장거리 폭격기, 미그-29, 미그-31, 수호이-27, 수호이-30 같은 전투기에 수호이-24나 수호이-25 등 지상 공격기까지 1160대의 항공기를 운용한다. 해군은 항공모함 아드미랄쿠즈네초프함과 38척의 전술 잠수함, 그리고 다수의 수상함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췄다. 주목할 점은 육해공 모두 막강한 미사일 전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이다. 2015년 10월 내해인 카스피해의 러시아 군함이 1500km 떨어진 시리아의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집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적도 있다. 흑해의 러시아 해군이 우크라이나의 지상 목표물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상군 부대의 경우 적 항공기를 방어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지상 목표물을 타격하는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 그리고 적 기갑 전력에 대응하는 대전차 미사일을 다량 운용한다. Tu-95나 Tu-160 같은 공군 폭격기도 투하용 폭탄뿐 아니라 장거리 크루즈미사일을 운용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목표물을 공략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군사 강국 러시아의 부활이다. 1991년 12월 무너진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핵무기는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심각한 경제난으로 재래식 군사력이 약화돼 그야말로 종이호랑이 신세가 됐다. 그랬던 것이 30년이 지난 지금, 전력을 대거 회복해 급기야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나토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방만한 조직에서 핵심·전문·정예 전력으로
그 배경으로 2008년 시작된 대규모 군사 개혁을 들 수 있다. 군 개혁은 푸틴이 대통령 3연임을 금지한 헌법 규정에 따라 정치적 동지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잠시 대통령 자리를 넘기고 실세 총리로 일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ISS와 미국 과학자연맹(FAS) 보고서, 이코노미스트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의 군 개혁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이뤄졌다. 2008년 이전 러시아 육군은 3개 전차사단, 16개 차량화 소총사단, 5개 기관총 포병사단 등 24개 사단과 12개 독립여단을 보유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산물인 거대 사단은 무겁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며 방만하고 관료적이었다. 부패와 가혹행위도 만연했다. 당시 24개 사단 가운데 기준 전력을 완비한 부대는 5개 차량화 소총사단밖에 없었을 정도다. 푸틴의 군 개혁이 시작되면서 모든 전차사단이나 차량화 소총사단은 각각 2개 여단으로 분할됐다. 2009년 말에는 24개 사단 중 23개 사단이 분할됐다. 그 결과 러시아 육군은 4개 전차여단, 35개 차량화 소총여단, 1개 요새화 여단으로 재편됐다. 모든 여단은 전투대비 태세를 완전히 갖췄다. 전국을 나눠 관리하던 7개 군관구는 서부(상트페테르부르크), 중부(예카테린부르크), 남부(로스토프온돈), 동부(하바로프스크) 4곳으로 축소됐다. 군관구-군-사단-대대의 4단계 지휘체계는 군관구-작전사령부-여단으로 단축됐다. 1890개에 이르던 러시아군 부대는 172개로 줄어들었다. 인력도 대대적으로 감축했다. 전체 장교를 36만5000명에서 14만2000명으로 61% 줄였다. 대령은 80%가 감축됐다. 특히 징병제를 유지하되 복무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징병 군인의 전투현장 배치도 금지했다. 대신 상당한 급여와 복지 혜택을 내세워 부사관을 모병해 장기 복무를 시키면서 핵심·전문·정예 전력으로 키웠다. 여기에 더해 2012년 취임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육군 대장)은 지상군에 대대전술단(BTG) 개념을 도입해 개혁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BTG는 600~1000명의 병력으로 이뤄진 독립 차량화 또는 전차 대대에 대전차미사일·포병·수색·전투공병에 후방 지원 소대가 배속돼 독립 작전이 가능한 부대를 가리킨다. 통상 10대의 전차, 40대의 보병전투차량에 기계화보병으로 이뤄진다. 기존 여단은 전시나 비상시가 되면 BTG로 전환돼 현장에서 독자 작전을 펴게 된다. 현장 지상군을 BTG 단위로 편제하면서 러시아군은 기동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배치 전환과 작전 전개가 가능해졌다. 대규모 부대 이동 없이도 언제든 기습공격을 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관은 지난해 8월 러시아군이 170개 BTG를 운용한다고 밝혔다.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미국은 위성사진에 나타난 BTG 증감을 살펴 러시아 동원 병력을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가장 최근에 밝힌 우크라이나 국경 배치 러시아군 규모는 17만 명으로, 100개 BTG와 다른 부대가 동원된 것으로 관측된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가 푸틴의 군 개혁을 완료한 원년이라는 점이다. 푸틴은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압박을 시작한 셈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구상은 이미 2008년 시작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