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만 되면 반복되는 ‘노무현 마케팅’, 셈법은?

‘친노반민’ 유권자 포섭 의도…“고인 캠페인에 이용 부적절” 비판도

2022-02-08     박성의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 지난 5일 제주 강정마을, 한 대선 후보가 “노 전 대통령께서는 국익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본인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극구 반대하는 해군기지 건설 결단을 내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감정에 북받친 듯 연신 말을 끊었다. ‘노무현’을 말한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가 아닌 ‘정권 교체’를 외치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였다. 대선이 다가오며 여야 대선 주자들이 너도나도 ‘노무현 정신’을 말하고 있다. 비단 이재명 민주당 후보뿐 아니라 ‘친노 세력’과 거리가 먼 야권 후보들까지 연이어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의 일생과 큰 교집합이 없어보였던 이들이다. 과연 이들이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을 입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정상회담공동취재단
이 후보는 지난 6일 오후 노 전 대통령이 묻힌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았다. 윤 후보가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노무현 정신’을 말한 그다음 날이었다. 이 후보는 너럭바위에 다가가기 앞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이내 흐느꼈고 흰 면장갑을 낀 채 눈물을 닦아 냈다. 노 전 대통령 묘소 앞에 선 이 후보는 “그 참혹했던 순간을 잊기 어렵다”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그는 즉석연설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은 노무현의 꿈이고 문재인의 꿈이고 이재명의 영원한 꿈”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말한) 반칙과 특권 없는 사람 사는 세상, 이재명이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가 눈물을 흘린 다음날인 7일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아침 회의 말문을 노 전 대통령으로 열었다. 안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속에 저 안철수를 비추어 보았다”며 “만약 그분이 지금 살아 계셨다면 그분이 보시기에 지금의 대선판이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이어 노 전 대통령과의 지역적 연고를 거론하며 내적 친밀감을 나타냈다. 그는 “저는 부산 범천동에서 자랐고, 범천동 옆 범일동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곳”이라며 “저는 부산 초량동에 있는 부산고등학교 출신으로 노 대통령이 본인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하셨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노무현이 없는 지금, 누군가는 일생을 걸고, 정치적 명운을 걸고, 국민을 분열시키며 상대방의 실수와 반사이익만으로 평생을 먹고 사는 진영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며 “미약하지만 그 길을 지금 저 안철수가 걷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됐다가 삭제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가상영상 ⓒ유튜브 캡처

타깃은 ‘노무현은 좋고 민주당이 싫은 사람들’?

노 전 대통령의 팬덤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이재명에게서 노무현을 본다”며 지난달 10일 이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이 후보가 노 전 대통령을 기리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이어 4기 민주정부 실현을 소망하는 친노계가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다만 야권 후보들까지 나서서 일제히 노 전 대통령을 칭송하는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정치권 관계자들은 실제 윤 후보가 일상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드러냈다고 전했다. 정략적인 선택 혹은 계산된 발언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윤 후보와 사석에서 만났었다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후보가 한 방송에서도 말했던데, 애창곡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곡인) 그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더라”며 “윤 후보가 원래 계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실제 진심으로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치 평론가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발언이 지난 5~7일 연달아 나온 점, 노 전 대통령관 관련된 장소에서 연설을 이어가는 것 등을 종합하면 여야 캠프가 의도적으로 ‘노무현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노무현은 좋지만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른바 ‘친노반민’(親盧反民) 유권자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 후보는 윤 후보의 상승세를 방어하는 동시에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정체성이 강하지만, 본인에 비판적인 친노·친문 지지층을 포섭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인간적인 면모, 따뜻한 감성이 돋보였다면 이 후보는 오히려 MB(이명박 전 대통령)에 가까운 인물”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현 민주당이 싫은 유권자에게 윤 후보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노무현 마케팅’이 과하게 펼쳐지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노 전 대통령 영상에 성대모사를 입혀 올려 ‘고인모독’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영상을 삭제했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7일 KBS1 《사사건건》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가장 큰 어른”이라며 “그런 분을 선거 캠페인에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