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혁·잼미 벼랑 끝 내몬 ‘악플’…다시 불 붙는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준실명제 발의됐으나 수개월째 국회서 계류 전문가들 “처벌 수위 강화, 신고 절차 간소화 등이 우선”

2022-02-07     박선우 기자
ⓒ픽사베이

‘익명의 살인자들’ 탓에 27세 아까운 청춘 두 명이 스스로 생을 등졌다. 김인혁 프로배구 남자부 삼성화재 레프트와 트위치 스트리머 잼미(조장미)의 이야기다. 김씨와 조씨 모두 생전에 ‘악플(악성 댓글)’ 및 루머 확산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바 있다.

‘악플’ 문제가 부상하면서 다시금 ‘인터넷 실명제’ 논의에도 불이 붙는 양상이다. 글을 쓸 때 이름이나 신상 등을 같이 밝히면 무분별한 ‘악플’도 감소할 것이란 추측에서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연 인터넷 실명제는 ‘악플’에 대한 정답이 될 수 있을까.

경찰에 따르면 배구선수 김씨는 지난 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김씨가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선 추모 물결이 일었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수년 동안 절 괴롭혀온 ‘악플’들 이제 그만해 주세요. 버티기 힘들어요. 이제”라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생전에 김씨는 동성애설, 성인배우 활동설 등 근거없는 루머에 고통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치 스트리머 잼미(조씨)의 죽음 역시 ‘악플’로 인한 것이었다. 5일 조씨의 삼촌이라고 밝힌 A씨는 조씨의 트위치 게시판에 조씨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장미는 그동안 수많은 ‘악플’과 루머 때문에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2019년 방송 중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여 2020년 5월 결국 방송을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조씨는 ‘악플’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약을 복용 중이며, ‘악플’로 인해 어머니가 극단 선택을 했다고 토로했다.

‘악플’로 인한 죽음을 막고자 여러 조치가 단행돼 왔다. 그러나 악순환의 사슬을 끊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의 절친한 친구이자 ‘악플’로 인한 신변비관으로 극단 선택을 한 배구선수 고유민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2020년 8월 고씨의 극단 선택을 계기로 스포츠 뉴스 댓글란을 폐지했다. 그러나 ‘악플러’들은 선수들의 개인 SNS로 옮겨가 활동을 지속했고, 결국 약 1년6개월 간격으로 두 동갑내기 친구가 ‘악플’로 생을 등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현행 처벌법보다 강력한 ‘악플’방지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악플러’들을 더 빠르게 추적할 수 있게끔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0년 12월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인터넷 이용자의 아이디와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함께 표시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수개월째 답보 상태에 있다.

인터넷 준실명제 논의가 재시작된다고 해도 실제 도입 가능성은 미지수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2020년 12월 인터넷 준실명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며 “이미 위헌으로 판단된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를 사실상 강제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안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 위축 등을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린 이른바 ‘인터넷 실명제’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미 주요 포털들의 경우 댓글 이력제 등을 통해 사실상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일부 ‘악플’을 막자고 주요 커뮤니티 이용자 전체의 아이디를 공개해야 한다는 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온라인상 명예훼손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 등으로 대처해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악플’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악플’의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하다. 처벌 수위를 올리는 것이 (인터넷 준실명제 논의보다) 먼저가 아닐까 한다”며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 수사당국의 수사도 전보다 철저해진다는 이점도 있다. 스토킹 범죄처럼 하나하나 입건될 테니 ‘악플러’들 입장에선 ‘이러다 진짜 징역 가겠구나’하는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