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와 尹의 전쟁, 비전 없는 네거티브의 악순환 [유창선의 시시비비]
3·9 대선 이후 5년 동안 극심한 분열과 갈등 이어질 가능성 농후…시민들이 합리적 이성 이끌어내야
2021-12-24 유창선 시사평론가
여야 셈법에 언론들의 참전까지 더해져
물론 후보 자신이 아닌 가족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검증은 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출마한 후보보다도 가족들에 대한 관심이 압도하고 있는 선거전의 광경이 정상은 아니다. 후보도 아니고 배우자인 김씨를 둘러싼 논란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것은 윤 후보 측의 부적절한 대응이 자초한 바 크다.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사실과 다른 것들이 적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인정할 것들은 인정하며 그것만 갖고도 자신이 무겁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을 끄는 사이에 여론은 악화되었고 그런 상황을 민주당 측이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국민에게 중요했던 것은 세세한 팩트의 진위를 가리는 내용 이전에, 부풀려진 이력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태도 면에서 김씨나 윤 후보나 모두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정당한 공세만 폈던 것은 아니다. 이 기회에 문제가 되기 어려운 것까지 의혹이라며 마구 던져 모두가 의혹인 것처럼 일부 몰고 간 것도 사실이다. 김씨를 겨냥한 민주당의 융단폭격은 그가 윤석열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마한 후보도 아니고, 20년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배우자의 일들을 집요할 정도로 터는 광경이 정상은 아니다. 민주당도 ‘생태탕’ 네거티브 선거에 올인하다가 오히려 민심의 역풍을 초래했던 4·7 재보선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야 간에 가족들을 겨냥한 네거티브전이 계속되자 그에 대한 혐오 여론도 대두되었고, 여야가 서로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이라도 맺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런 여론을 의식한 듯,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여야 간 네거티브 중단을 제안하고 이동호씨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정작 윤 후보의 반응조차 소극적이었고 국민의힘 역시 네거티브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네거티브전에 대한 여야의 득실 계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이씨의 불법도박 사건에 비해 김씨의 허위 경력 문제가 지지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이참에 골든크로스를 이루려는 민주당은 ‘김건희 때리기’에 계속 매달리는 것이고, 반대로 피해가 더 큰 국민의힘은 이쯤에서 네거티브 중단을 원했던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환경을 감안할 때 이번 대선에서 네거티브전이 중단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만약 민주당도 네거티브 중단 얘기를 꺼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재명 후보가 역전해 안정적인 선두 자리에 올랐을 때일 것이다. 결국 이번 대선은 서로가 죽이고 죽는 피투성이 전쟁터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기에는 여야 후보들과 정당들의 셈법은 물론이고 언론들의 참전까지 더해, 돌이키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제왕적 대통령 낳는 권력 구조가 문제
이번 대선이 이토록 최악의 전쟁터가 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한 진영 간 대결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조국 부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 정부를 흔들었던 윤석열은 용서할 수 없는 공적인 셈이다. 중도층을 의식해 이재명 후보가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윤석열은 결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정치검찰의 우두머리였다는 것이 그들의 시선이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은 공수처와 검찰의 온갖 수사와 음해로 야당 후보를 탄압하는 집권 세력의 행태에 분노하며 심판하려 한다. 거짓말만 일삼는 이재명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시선이다. 서로에게 상대 후보는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몹쓸 인물이니, 그 대결이 극단적인 진영 대결로 치닫게 돼있다. 또 하나의 고질적 문제는 어김없이 제왕적 대통령을 낳곤 하는 권력 구조다. 대선에서 이긴 세력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절대권력이 되고, 패한 세력은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르는 처지가 되고 만다. 불과 1%의 차이로 승패가 갈리더라도 권력은 득표율에 비례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승자가 독점하게 돼있다. 그러니 모두가 대선 승패에 죽고 살게 돼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협치를 하도록 만드는 제도 개혁 혹은 개헌이 있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악순환이다. 비전은 없고 네거티브만 남은 대선의 문제는 오는 3월9일 밤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대로라면 다음의 5년 동안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출발점이 되는 후유증을 남기기 십상이다. 불과 몇 % 차이로 정권을 잡은 쪽은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고, 그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진정한 승복을 하지 않은 채 반대의 목소리를 내내 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겪어왔던 국가적 분열과 갈등의 폐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다시 연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거를 피할 수 없다면 결국 남는 것은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여야가 서로 던지는 수많은 의혹 가운데 어느 것이 검증이고 어느 것이 마타도어인가를 가려내는 일, 그리하여 합리적 이성이 이끄는 선거가 되도록 하는 일, 이 모두가 우리 시민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다. 교과서적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에도 이제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