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무죄 선고한 원심 깨고 유죄 취지 파기환송
대법원 “피해자가 피해 인식 못했다고 추행 아니라고 볼 수 없다”
2021-11-12 박선우 디지털팀 기자
서로 모르는 사이인 여고생의 머리카락과 옷에 소변을 본 30대 남성 연극배우가 1심과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를 받고 기소된 A씨(33)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연극배우인 A씨는 지난 2019년 11월25일 천안시의 한 아파트 놀이터 의자에 앉아 통화하고 있던 B양(18)의 뒤로 다가가 머리카락과 윗옷 뒷부분 등에 소변을 봐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B양은 이어폰을 착용한 채 전화통화를 했고 옷도 두껍게 입었던 터라 사건 당시에는 A씨의 범행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B양은 경찰 조사에서 “집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남자가 앞쪽으로 튀어나가 깜짝 놀랐는데, 보니까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중 봤던 남자였다”며 “집에 가서 보니 옷과 머리카락이 젖어있고 냄새를 맡아봤을 때 소변 냄새가 나서 뒤에서 서있던 남자가 한 일이라 생각해 신고했다. 짜증나고 더러워서 혐오감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공연을 같이하는 동료와 말다툼 후 화가 난 상태에서 횡단보도 앞에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화풀이를 하기 위해 따라갔고, 욕설 등을 하려 했으나 피해자가 계속 통화를 하고 있어 홧김에 소변을 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A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강제추행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B양이) 혐오감을 느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 방뇨 행위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지난 6월 검찰 측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반면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는) 성기를 드러내고 피해자를 향한 자세에서 피해자 등쪽에 소변을 봤다”며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심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행위 대상이 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침해됐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행위 당시에 피해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