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은 거북이, 자산은 토끼… 역전 없는 부동산 드라마
[인터뷰] 30대 희비 가른 부동산발 양극화…소득은 5년간 13%, 집값은 1년 만에 13% 올라
2021-08-24 공성윤 기자
수도권 집 사려면 8년치 월급 꼬박 모아야
30대의 희비가 교차한다. 그 지점에 부동산이 있다. 부동산발(發) 자산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순자산이 2019년 대비 10.6% 많은 5억1220만원으로 추산됐다. 2008년 통계 작성 이후 증가 폭과 액수 모두 최대치다. 주요 원인으로는 부동산 자산 비중과 가격이 오른 사실이 꼽힌다. 지난해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를 기록했다. 또 국내 주택 시세의 합계인 주택 명목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5722조원으로, 2019년 대비 13.1% 증가했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 없는 자에겐 다른 나라 얘기다. 뒤늦게 합류해 보려 해도 소득 상승률이 부동산 가격 증가 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가구당 경상소득은 5924만원으로, 최근 5년간 13.9% 늘어났다. 주택 명목 시가총액이 단 1년 만에 13.1% 오른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국토교통부가 8월13일 발표한 ‘2020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수도권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8년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B부동산 조사 결과는 더 암울하다.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려면 18년 가까이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 한다고 나온 것이다. 무주택자들은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프리랜서 온라인 마케터로 일하는 인천 출신 백아무개씨(32)는 지난 6년간 서울에서 전셋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해왔다. 그동안 번 수입은 직장인 평균 연봉을 훌쩍 넘는 정도였다. 그러다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올해 초 제주도로 터를 옮겼다. 제주도에서는 월세 1년 치를 한 번에 내는 연세살이를 하고 있다. 백씨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압박을 덜 받으며 일하는 중이다. 수입도 여전히 나쁘지 않다. 그러나 서울에서 느꼈던 그 불안감이 언뜻언뜻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부동산 걱정 때문이다. 백씨는 “언젠가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텐데 집을 구할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가 치민다”면서 “내 뜻과 달리 제주도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까봐 걱정된다”고 전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서울과 같은 메가시티(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건 당연하다고 보지만, 아무리 벌어도 이를 쫓아갈 수 없으니 허무함이 밀려온다”고 덧붙였다. 불안감을 느끼는 건 20대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구에서 미디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28)는 “집값 상승 탓에 급한 마음이 든다”며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부동산을 빼고 1억원 정도 자산을 모았다. 김씨는 “대기업 근로자도 1년에 3000만원 이상 모으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3000만원씩 10년 동안 모아봐야 겨우 3억원”이라며 “이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인 11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집 없어도 괜찮다”?…직장인 55% “근로 의욕 상실”
물론 모든 무주택자가 불안함을 느낀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아무개씨(38)는 부모님 집에 거주하고 있다. 김씨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특수성을 고려해야겠지만, 혼자 살았더라도 부동산을 사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부동산이 아닌 다른 방식의 재테크를 통해 자산을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 5000여만원을 받는 김씨는 주식과 채권, 적금 등으로 자산을 3억원 정도 모았다고 한다. 김씨는 “최근 부동산 가격이 가파른 속도로 올랐기 때문에 금리 상승과 함께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굳이 무리해서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을 살 경우 월급과 금융 소득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에 (부동산 보유자들에 대해) 딱히 박탈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이 김씨와 같은 생각으로 일하는 건 아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일할 의지를 앗아가버렸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의 지난 4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820명 중 55.8%가 “부동산 가격 폭등 뉴스로 근로의욕을 상실했다”고 답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응한 직장인은 19.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여전히 예비 부동산 수요층이다. 같은 조사에서 88.7%의 직장인은 “내 집 마련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도 주택 보유 의지를 밝힌 40세 미만 가구주는 82.0%를 기록했다. 어쨌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은 안정감이 든다는 데 입을 모았다. 주거에 대한 안정감은 리스크를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아무개씨(35)는 처음 임대차 3법이 시작된 지난해 7월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홍씨는 “결혼하고 남편이랑 같이 살던 서울 송파구 전셋집이 7억6000만원에서 11억원으로 순식간에 3억원 이상 뛰어버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당시 전세 기간이 1년 남아있었고 만료 후에도 (전세계약 갱신으로) 2년 더 살 수 있었지만, 3년 뒤에 전세금으로 어디를 갈 수 있을지 앞날이 캄캄했다”고 털어놓았다. 홍씨는 고민 끝에 올해 초 경기도 하남시에 아파트를 구했다. 그는 “이제야 내 집이 생겼다는 데서 안정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 “매일매일 미래를 걱정하던 전세살이 시절과 이별할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도 했다. 안정감은 거액의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사게 만드는 동인이 됐다. 서울 성동구 아파트를 매입해 거주 중인 강아무개씨(35)는 “전셋집을 살고 있다면 집값이 오를 때 하릴없이 쳐다보며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고, 집값이 내릴 때는 보증금 떼일 걱정을 할 테니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강씨는 “주거는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라며 “주거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노력으로 채울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의욕 상실과 박탈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집을 가지니 집값 변화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성남의 주부 주씨는 “빚이 수억원인데도 불안감이 사라졌고, 오히려 더 근검 절약하면서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출은 위험한 게 아니라 잘 쓰면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다.“정부가 사다리 치워 양극화 더 심해질 것”
한편 부동산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부분이 있었다. 정부 정책이다. 부동산을 산 사람도, 사지 않은 사람도,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었다. 전남 목포에서 일하는 교사 소아무개씨(35)는 “전 세계 자산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내 집값만 안 오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그런데 정부에서 당연한 자산 가치 증가에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게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소씨는 목포와 광주, 부산 등에 부동산 4채를 갖고 있다. 그는 “현 정권이 임기 만료를 1년 앞둔 시점에 그 누구도 표를 의식해 집값 잡는다는 소리를 못 하고 있다”며 “아마 내년에는 더 큰 집값 상승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와 달리 국내의 집값 상승은 유독 정책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봤다. 그는 “최근 1년간 코로나 지원금 살포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과 임대차 3법, 토지거래허가제, 대출 규제 등 지나친 규제가 부동산 시장에 참극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사다리를 치워 양극화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