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치인 ‘세 치 혀’에 휘둘리는 욕망의 도시 세종

대선 단골 공약 ‘세종천도론’에 출렁이는 民心 1년간 집값 평균 상승률 18.2%…전국 최고

2021-07-26     공성윤 기자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권에서 전가의 보도로 통한다. 한 번 언급할 때마다 그 파장이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을 면밀히 따져본 뒤 꺼내들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전가의 보도를 너무 쉽게 휘두른다는 걱정이 자자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대선 단골 공약이 됐고, 차기 대선을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날에 베이고 상처 입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시사저널 임준선
“민심을 흔들어놓고 세금만 뜯어갔죠 뭐.” 세종시 연동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주아무개씨(71)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충남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이전부터 고향과 관련된 지도자들의 공약을 모두 지켜봤다. 주씨는 “세종시를 위한 정책이 보도될 때마다 투기꾼들이 끼어들면서 집값과 땅값이 모조리 올랐다”며 “그에 따라 세금도 오르니 부담은 주민들만 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후에 가진 집 한 채 팔아서 여윳돈을 챙겨볼까 했지만 세금으로 다 뺏길 테니 소용없는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정치인들의 입방아에 세종시가 들썩거리고 있다. 정확히는 투기 세력이 그렇고, 원주민들은 휘둘리는 형국이다. 시사저널은 7월19~20일 이틀간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의 5·6생활권을 돌아보며 부동산 업자들과 주민들을 만났다. 5·6생활권은 의료와 복지시설, 첨단지식 단지 등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개발이 예정된 지역이다. 이미 아파트 분양까지 완료된 1~4생활권에 비해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개발 한창인 세종 5·6생활권, 집값도 세금도 올랐다

5생활권의 경우 올해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지금은 땅을 다지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아 둘러보니 트럭과 화물차가 택시보다 눈에 더 많이 띄었다. 5생활권은 행정구역상 세종시 합강동과 연동면 다솜리·용호리 등 3개 지역으로 나뉜다. 다솜리·용호리와 맞닿아 있는 연동면 내판리를 찾았다. 이곳은 5생활권과 더불어 지가 상승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30여 개 기업이 입주한 산업단지와 겹쳐 호재가 가시화된 상황이다. 내판리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변 시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주목받으면 정부에서 또 매매를 규제할 텐데 관심 갖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호가는 오르는 추세”라고 짧게 덧붙였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내판리 산업단지 인근의 대지는 도로와 떨어져 있음에도 평당 매매가가 300만원이 넘었다. 내판리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박아무개씨(70)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때 세종시를 경제도시로 만든다고 할 때만 해도 큰 변동은 없었는데 재작년 들어 집값이 너무 올랐다”며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공시지가도 뛰었다. 작년 대비 올해 세종시 개별공시지가 상승률은 11.89%로 전국에서 광주(12.36%) 다음으로 높다. 개별공시지가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의 부과 기준이 된다. 박씨는 “투기꾼들이 재미 보는데 왜 우리가 희생해야 하나”라며 쇳소리를 냈다. 대를 이어 7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손아무개씨(68)는 “나 같은 토착민은 집값 오르는 데 관심 없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손씨는 “집 팔고 다른 데 가도 어차피 비싼 건 똑같을 것”이라며 “보유세가 올라서 화만 난다”고 했다. 슈퍼를 운영하는 오아무개씨(79)는 “슈퍼 하나 갖고 있다고 노령연금도 안 나오는데 세금은 쌓이니 더 살고 싶지도 않다”며 체념투로 말했다. 인천 출신으로 내판리에서 농사를 짓는 장해동씨(78)는 400평쯤 되는 땅과 집을 갖고 있다. 장씨는 “2000년대 초반에는 평당 땅값이 2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50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토지 가격만 최소 2억원인 셈이다. 장씨는 그러나 기쁜 마음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딱히 돈 욕심도 없다”며 “여생을 보내려고 온 곳인데 팔라고 해도 안 판다”고 했다. 내판리와 5생활권에 인접한 또 다른 동네 명학리에서도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주민 최아무개씨(81)는 “차라리 개발하지도 말고 노인들 집터나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바람과 달리 세종시 집값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양새다. 집값 상승세에 불을 댕긴 건 지난해 7월 김태년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란 시각이 짙다. 당시 그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를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 발언이 나왔던 작년 7월 세종시 주택 평균 매매가는 4억2800만원이었다. 이후 약 1년 만인 올 6월에는 5억600만원으로 18.2%(7800만원) 올랐다. 상승률과 상승폭 모두 전국 최고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김 전 원내대표의 발언을 “세종시 아파트값을 폭등시킨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김두관·이광재 의원도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약속하며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세종시 6-4생활권(해밀동)에 줄지어 들어선 공인중개사 사무소들(왼쪽 위 사진)과 4-2생활권(집현동)의 LH 행복 주택 입주자 모집 홍보 플래카드(왼쪽 아래 사진), 6-3생 활권 공사현장에 붙어 있는 광고 스티커들(오른쪽 사진)ⓒ시사저널 임준선·공성윤

세종 행정수도 줄줄이 공약…“차라리 개발 안 했으면”

야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7월6일 충청을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행정부처와 국회는 거리가 짧아야 한다”며 국회의 세종 이전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앞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세종시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충남 천안시의 공인중개사 A씨는 “정치권의 공약이 몰고 온 기대감이 집값을 대폭 끌어올렸다”며 “기대감이 존재하는 한 집값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이 띄운 기대심리는 세종시에 돈과 사람을 몰고 왔다. 세종시의 인구 순이동률은 올해 들어 5개월째 전국 1위다. 나가는 인구 대비 들어오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세종시에 대한 갭투자 비율 역시 전국 1위였다. 국토교통부의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세종시에 제출된 주택거래 자금조달계획서 120건 중 77건(64.2%)이 갭투자로 파악됐다. 세종시에 대한 주목도는 육안으로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종시 6생활권은 아직 황무지인 5생활권과 달리 도시로서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다. 세종시 해밀동 6-4생활권에는 아파트 3100가구가 조성돼 있다. 작년 9월부터 입주민을 받기 시작했다. 이 단지 외곽에는 도보로 10분 거리에 공인중개사 사무소만 15곳이 영업 중이었다. 곳곳에는 ‘임대문의 폭주’ ‘안전투자 최고의 상품’ ‘일부 잔여호실 분양 중’ 등 상가 임대 광고문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일대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면 부동산 거래 수요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해밀동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6-3생활권(세종시 산울동) 공사현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벽에는 ‘성실인력 150여 명 항시 대기 중’ ‘크레인·지게차’ ‘원·투룸 임대’ 등의 문구가 적힌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6-3생활권에서 최근 가장 떠오르는 아파트는 ‘세종자이 더시티’다. 총 1350가구로 지난 7월16일 분양에 나섰다. 이곳은 공무원들을 위한 특별공급(특공) 제도가 폐지된 이후 첫 분양 단지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전국에서 청약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대감이 치솟아 자칫 투기 광풍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불거졌다. 현장의 기대감과 달리 일부 언론은 다소 냉정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세종시 집값이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 그 근거는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둘째 주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다. 여기에 의하면, 세종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보다 0.12% 떨어져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나아가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동력이 떨어지면 집값이 줄줄이 꺾일 수 있다”는 추측도 뒤따랐다. 그러나 업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공인중개사 A씨는 “원래 7월이 비수기인 데다 각종 투자 제한 정책이 얽혀서 거래가 잠시 묶인 것”이라며 “성수기인 9월로 접어들면 다시 오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령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사라지더라도 학군, 교통, 생활조건 등 전통적으로 입지가 좋은 지역은 충분히 가격 방어를 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세종 분원 설립을 촉구하는 플래카드(위 사진)와 세종시 6-4생활권 건축공사 현장(아래 사진)ⓒ시사저널 공성윤

대권 향배는? “집값 상승 위해서” 與 vs “독불장군 文 싫어서” 野

공인중개사 B씨는 “LH 사태와 특공 문제가 거래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지만 대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봤다. 또 다른 중개사 C씨는 “양도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잠시 매물이 안 나오는 것뿐”이라며 “결국엔 거래량과 가격 모두 다시 오른다”고 내다봤다. 2017년 8·2대책 시행으로 조정대상 지역의 집주인들은 2년 이내에 주택을 팔면 양도차익의 60%를 세금으로 토해 내야 한다. 여기엔 세종시도 포함된다. 한편 세금을 더 내더라도 집값 상승을 바라는 원주민도 있었다. 6-3생활권 인근에서 조경업을 하는 한 50대 남성은 “세금 때문에 집값에 불만이라는 사람들은 그동안 가격 올라서 만족한 건 생각 안 하나”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세종시 개발계획의 큰 틀을 닦은 민주당이 또 정권을 잡아야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섣부른 약속에는 불만이 많다”고 했다. 옆에 있던 60대 남성 역시 “솔직히 공약이 제대로 이행된 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종시를 행정도시로 만든다면서 공무원 출퇴근 버스를 깔아놓은 건 뭔가. 실제로는 유령도시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인중개사 D씨는 “정치인들이 괜히 끼어들어 집값이 요동치는 것보다 조금씩 꾸준히 오르는 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D씨는 이를 위해 야당에 표를 주겠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부동산 시장에 혼란만 초래했다. 참모들이 정책을 펼칠 때 깊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하도 정책을 자주 바꾸다 보니 실수요자는 혼란스럽고, 세금으로 압박하니 원주민은 피해를 보게 됐다. 가끔은 세수를 늘리려고 집값을 일부러 띄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공산당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