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 눈도 못 감고 하늘로”…적재물 추락이 부른 가족의 비극

사고 가족 “같은 비극 없도록 관련법 강화” 호소 적재물 낙하로 사망사고 나도 처벌 수위 미미

2021-05-19     이혜영 기자
5월14일 오후 3시50분께 충북 보은군 당진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 수리터널 21㎞ 지점에서 25t 화물차에 실린 핫코일(자동차, 가전, 건설 등에 쓰이는 강판)이 떨어져 일가족이 탄 승합차를 덮쳤다. 이 사고로 A(8) 양이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 충북소방본부 제공

지난 14일 고속도로에서 화물차에 실린 13t 무게의 코일 강판이 승용차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8세 여아가 숨지고, 아이의 엄마는 큰 부상을 입었다. 피해 가족은 되풀이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화물차 운전자에 대한 엄벌과 관련 법규를 강화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8세 아이의 가족은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엄정한 수사와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촉구했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적재물 추락사고로 억울하게 가버린 저희 조카를 도와주세요'라는 국민청원 글에는 19일 오전 7시 기준 2만 명 넘는 시민이 동의를 표했다.

자신을 숨진 초등생의 이모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철제 코일이 25t 화물차에서 굴러 떨어져 8살 이쁜 아이가 말도 안되는 나이에 눈도 감지 못한 채 하늘로 가버렸다"며 "저희 언니는 지금 척추와 갈비뼈가 골절돼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수술을 앞둔 언니에게 차마 아이의 사망 소식을 알릴 수 없어 잘 치료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의료진이 (언니가 수술을 하더라도) 후유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며 "저희 가족은 오열하며 쓰러지는 아이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믿기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작성자는 "가해자 측은 고속도로 순찰대에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졸음운전에 대한 진술이 빠졌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발 우리 아이가 한치의 억울함도 없이 가도록 사과조차 없는 가해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도와달라"며 "조카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철저히 수사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앞서 지난 14일 오후 3시50분께 충북 보은군 당진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 수리터널 21㎞ 지점에서 25t 화물차에 실린 핫코일(자동차·가전·건설 등에 쓰이는 강판)이 떨어져 일가족 4명이 탄 승합차를 덮쳤고, 이 사고로 뒷좌석에 있던 A양(8)이 숨지고 운전석에 있던 엄마가 중상을 입었다. 조수석과 오른쪽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이 아빠 등 다른 가족 2명은 화를 면했다. 

경찰은 차선 변경을 하던 화물차 적재함에서 떨어진 핫코일이 차량 정체로 옆 차로에 정차했던 카니발을 덮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60대 화물차 운전자를 도로교통법상 안전운전 불이행 혐의로 입건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5월14일 화물차에 실린 13t 무게의 코인 강판이 승용차를 덮쳐 8살 난 여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아이의 가족은 5월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엄정한 수사와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촉구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적재물 낙하 사고 반복되지만…처벌 수위는 '미미'

화물차가 싣고 가던 낙하물이 도로 위 또는 다른 차량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반복되면서 관련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간 고속도로 위로 낙하물이 떨어져 발생한 교통사고는 78건에 달한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까지 합할 경우 사고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교통공단이 분석한 결과 고속도로에서 적재물 낙하 사고가 발생해 사망할 확률은 무려 28.5%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의 2배에 육박한다. 사고 빈도도 적지 않은 데다, 사고가 날 경우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을 확률이 일반 사고에 비해 훨씬 높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화물차는 적재물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저속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단순 적재 불량으로 적발되더라도 범칙금 5만원, 벌점 15점에 불과해 사고 발생 피해에 비해 지나치게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로교통법 등에 따라 낙하물 추락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한 경우 운전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가해자가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상당수는 징역 1~2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졸음운전이나 전방주시 태만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고처럼 10t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적재물이 떨어질 경우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관련 부처와 기관의 관리감독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코일 강판의 경우에는 전용 적재 차량으로 운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차량에 덮개가 장착돼 있거나 하부 홈이 파여있어 급작스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코일이 추락해 다른 차량이나 도로 위에 떨어지지 않아 2차, 3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전용 화물차로는 다른 화물을 실을 수 없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일반 화물차에 통상 고무로 된 미끄럼 방지 지지대를 깔고, 받침목과 강철 테이핑, 쇠사슬과 고정장치로 결박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운전자가 안전거리 유지와 전방주시를 하지 못해 급격한 차선 변경 등이 이뤄지면 이번 사고처럼 코일 강판 등 대형 적재물은 그대로 '도로 위 살인마'가 된다. 

낙하물 사고는 교통사고 12대 중과실로 분류되지만, 2019년  한 해동안만 적재 불량으로 단속된 화물차는 8만여 대에 달하는 등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원청과 화주 등에 대한 책임 강화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코일 강판과 같은 위험물을 운반할 때는 출발점에서 화물을 실을 때부터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시간과 비용 문제로 이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화물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별도 사업자로 분류돼 사고가 나더라도 개인의 책임으로 끝나는데, 적재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원청과 이를 중개하는 화물업체에도 일부 책임을 물려 관리를 한층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