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범죄자 100명 중 99명은 빠져나간다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
2021-05-04 조해수·유지만·공성윤 기자
5년 새 학대·재학대·사망 아동, 3배 폭증
이보다 앞서 시사저널은 보건복지부, 경찰청, 대검찰청, 대법원 등의 자료를 통해 아동학대 실상을 파악했다. 아동학대는 5년(2015~19년) 만에 1만 건대에서 3만 건대로 폭증했다. 재학대 역시 1000건대에서 3000건대로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망 아동 역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또한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10년(2010~19년) 사이에 16%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처벌은 참혹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동학대 중 3분의 1만이 형사사건화됐다. 아동학대 3건 중 2건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재판까지 가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1%에 불과했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아동학대 범죄자 100명 중 99명은 벌금조차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많은 국민은 112 등으로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이 경찰, 검찰, 법원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아동학대로 인정된 사건 중 약 70%는 아예 형사사건화되지 않아 사법적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한국에서 아동학대는 범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올라온 보건복지부의 피해 아동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3만45건이다. 이는 2015년 1만1715건에 비해 3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아동학대 건수는 2017년 처음으로 2만 건을 돌파했고, 해가 갈수록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그래프① 참조).아동학대 3만 건 중 징역형 24건에 그쳐
아동학대 유형을 보면, 정서학대와 신체학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학대 역시 6~7%의 비율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9년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는 1376건이다. 이는 2010년 1180건에서 16.6% 늘어난 것이다. 13~20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역시 2010년 6218건에서 2019년 7108건으로 14.3% 증가했다(그래프③ 참조).아동학대 가해자 70%는 친부모
2019년 3만45건의 아동학대에서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는 2만2700건이었다. 무려 73%에 이르는 수치다. 그중에서 양부모를 제외한 친부모의 아동학대는 2만1713건(부 1만2371, 모 9342)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아동학대처벌법의 기본 목표가 ‘원가정 복귀’다. 아동학대로 신고되더라도 아동을 분리하지 않고 원가정으로 복귀시키려 한다. 가해자(부모)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보다는 일종의 계도나 선도를 해 보겠다는 것”이라면서 “문제는 계도나 선도를 할 사안이 아닌 것도 사건 처리를 못한다는 점이다. ‘정인이 사건’만 해도 3번가량 내사 종결된 사건이었다. 3번이나 신고됐는데,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불기소 의견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넘겨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 측은 “아동학대 사건을 외부에서 개입하기 곤란한 가정 내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면서 “피해자인 아동과 달리 가해자는 학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한다. 이런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 아동 국선변호사’ 제도가 도입됐다. 지난 3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모든 피해 아동에게 국선변호사가 의무적으로 선정돼,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 아동의 권익을 좀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으로 인해 올해 1분기 아동학대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건수는 1974건으로, 전년 같은 분기 530건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美 아보전, 특별사법권까지 보유
“서울 양천, 전북 익산, 경기 용인, 경북 구미, 인천 부평…우리는 왜 그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했을까? 왜 지금까지 학대의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구조작업을 실시하지 못했을까? 왜 아이가 죽고 사건화돼야만 뒤늦게 개입하는 무책임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나?”-4월27일 기자회견 中 정확한 실태조사 다음에는 예방책과 대처법이 마련돼야 한다. 이때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지방자치단체, 경찰-검찰, 법원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의 ‘차일드 프로텍티브 서비스(Child Protective Service)’가 좋은 예다. 여기에는 형사정책 전문가·사회복지사는 물론 심리학자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경찰 못지않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텍사스의 경우, 법원 명령 없이 아동의 즉시 격리가 가능하며, 아보전은 특별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법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외국의 경우에는 ‘패밀리 코트(Family Court, 가정법원)’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한국에서는 법원이 절차의 가장 마지막에 있지만, 외국은 패밀리 코트가 경찰 바로 다음 단계에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패밀리 코트가 보호처분뿐만 아니라 사안이 심각할 경우에는 직접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 패밀리 코트에 잘못 보일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생업이 끊기고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