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위대하게 쓰~윽, 추신수가 왔다
SSG 랜더스 선수단 합류한 추신수, 귀국 후 3주간 한국 생활 엿보기
2021-03-21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주 자가격리, 독했다…탄산음료·라면은 입에도 안 대
추신수는 2월25일 귀국 후 경남 창원 모처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당시 SSG 야구단은 제주 강창학야구장에서 훈련하던 터.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야구단이 부산으로 훈련지를 옮기기 때문에 택한 장소가 창원이었다. 추신수는 격리 기간 동안 오전 7시에 기상해 보통 하루 두 끼만 먹었다. 탄산음료는 전혀 입에 안 댔다. 라면 또한 먹지 않았다. 알코올도 멀리했다. 격리 해제 하루 전 맥주를 아주 조금 마셨을 뿐이다. 추신수의 국내 대리인으로 그와 함께 생활했던 송재우 전 갤럭시아SM 이사는 “원래 추신수는 라면도 잘 먹고 술도 마셨다. 하지만 격리 기간에 실내에서만 있던 터라 몸무게 조절을 위해 열량이 높은 음식은 피했다”면서 “아주 독하게 자신이 정한 규칙을 지켰다”고 했다. 추신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과 분석으로 보냈다. 루틴대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몸을 만들어갔다. 실내 사이클을 타고 좁은 공간에서도 캐치볼을 했다. 근력 강화를 위한 튜빙도 늘 했다. SSG 구단에서 구해 준 타 구단 투수들의 실전 투구 영상 및 데이터 자료를 보면서 나름대로 분석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하던 대로 동체 시력 훈련도 이어갔다. 골프공 크기의 구멍 뚫린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공을 작은 나무젓가락으로 때리는 식의 훈련인데 선구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송 이사는 “색깔을 정해서 3~4m 정도 거리에서 던져주면 그 공만 골라 치는 식의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추신수가 빅리그에서 ‘눈야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추신수는 3월11일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면서 부산 사직구장에서 선수단에 합류했다. 사직구장은 부산고 출신의 그에게는 꽤 익숙한 곳이다. 이날 추신수는 팀 동료들과 처음 상견례를 했다. 더불어 자신에게 등번호(17번)를 양보해 준 후배 이태양에게 고가의 시계를 선물했다. 시가 2000만원 상당으로 알려져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추신수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더라. 받으면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 “나한테는 17번이라는 게 굉장히 의미 있는 번호다. 초등학교 때부터 17번 하면 추신수였고 추신수 하면 17번이었다”고 했다. ‘박찬호’ 하면 61번, ‘류현진’ 하면 99번이 생각나듯 17번은 그에게 ‘시그니처 번호’나 다름없다. 추신수의 합류로 SSG 선수단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취재진만큼이나 선수들도 추신수의 몸짓 하나, 말 하나에 관심을 보인다. 1982년생 동갑내기 김강민부터 팀 내 ‘호기심 천국’인 최정까지 추신수를 둘러싸고 대화를 이어간다. 주된 대화의 주제는 물론 메이저리그 생활과 훈련 방식이다. 타격 연습을 할 때도 SSG의 선수들은 추신수 곁에 머무른다. 배트 종류부터 그립 잡는 것까지 궁금한 것이 많다. 배트 길이와 무게 또한 화제가 됐다. 이진영 SSG 타격코치는 “추신수가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인데도 길이 35인치, 무게 35온스의 방망이를 휘두른다. 힘을 50%밖에 쓰지 않고 툭 건드리는데도 가볍게 담장을 넘겨 주변 사람들 다 놀랐다”고 했다. 35온스는 992g으로 1㎏에 가까운 무게다. 송전 이사에 따르면 추신수는 연습 때는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지만 실전 경기 때는 그보다 가벼운 890~900g의 배트를 쓴다고 한다. 무거운 배트로 훈련하다가 가벼운 배트를 휘두르면 그만큼 스윙 스피드가 빨라진다. 참고로 보통 국내 거포들은 860~900g의 배트를 쓰는데, 900g 배트는 요즘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추신수의 특이점은 좌투수, 우투수를 상대하는 배트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송전 이사는 “좌투수 상대 때는 조금 더 반응을 빨리 해야 해서 우투수 상대 때보다 10g 정도 가벼운 배트를 사용한다. 좌투수라고 해도 볼이 느리거나 하면 우투수 때와 같은 방망이를 쓴다”면서 “배트 길이도 1인치 정도 차이가 나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생긴 요령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 선수들도 시즌 중 체력이 떨어지면 배트 무게를 줄인다. 추신수는 아예 처음부터 상대 투수 맞춤형으로 배트를 준비하는 셈이다.전문가들, 3할-20홈런 예상…출루율에 더 주목하기도
추신수는 시범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힌다. 시범경기 성적은 그저 참고용일 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신인급 선수가 아닌 이상 타자들은 보통 개막일에 맞춰 타격감을 끌어올린다. 추신수도 마찬가지다. 시범경기 성적만으로 추신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원형 SSG 감독 또한 “시범경기는 추신수가 국내 투수들의 공을 보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SSG를 제외한 9개 구단 감독들은 대부분 추신수가 올해 3할 안팎의 타율에 홈런 20개 이상을 칠 것으로 예상한다. SSG 홈구장(문학 행복드림파크)이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기 때문에 30홈런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추신수의 나이를 고려해야 하지만 은퇴한 이승엽이 마흔 살(2015년)에 타율 0.332, 26홈런을 기록했던 바 있다. 추신수도 이승엽만큼 자기 관리가 엄청 뛰어난 선수다. 전문가들은 타격·홈런보다는 추신수의 출루율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선구안으로 출루율이 꽤 높은 선수였다. 통산 출루율(0.377)은 메이저리그 현역 선수 중 10위에 올라 있다. 추신수가 KBO리그 시즌 최다 볼넷 기록(127개·롯데 호세·2001년)도 깰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좋은 선구안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까지 추신수를 향한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다. 그만한 경력을 가지고 국내 야구에 등장한 메이저리그 타자는 타격왕 출신의 훌리오 프랑코(전 삼성 라이온즈) 정도뿐이기 때문. 가뜩이나 추신수는 여타 외국인 타자와 달리 문화 적응이 전혀 필요 없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한국말로 편하게 소통하면서 가진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 된다. 자신만의 루틴대로 KBO리그 공식 데뷔를 준비 중인 추신수의 ‘꽃길’이 예상되는 이유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