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노사모와 다른 文 팬덤, 민주주의 걸림돌로 작용”
[인터뷰] 홍세화 前 진보신당 대표 “적어도 수구세력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2021-01-11 구민주 기자
신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월11일 기준 484일이 남았다.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는 오히려 분열상을 더 키우고 있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은 새해에도 정치권을 보며 한숨짓고 있다. 시사저널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를 초대해 난국에 빠진 우리 사회의 해답을 구했다. 집권 5년 차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세 원인과 다가오는 4월 보궐선거의 의미도 들어봤다.
진보 원로 언론인인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임금님’에 빗댄 칼럼을 써 때아닌 ‘악플’에 시달렸다. ‘불편한 자리,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문 대통령을 지적한 그에게 “파리에 가서 다시 택시나 운전하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1월6일 자택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홍 전 대표는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에도 임금님이 아닌 대통령으로 돌아오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잡초, 즉 적폐를 다 없애겠다고 해서 우리에게 후련함에 대한 기대를 줬다. 그런데 정작 자기 앞마당 무성한 잡초는 건들지도 않는 형국이 이어졌다”며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왜 집권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 같은 모습들이 쌓여 현재의 지지율 하락세를 초래한 것이라고도 그는 분석했다.
홍 전 대표는 정부·여당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정치공학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도 얘기했다.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이야말로 이러한 ‘정치공학적 태도’의 전형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가. 부동산에 코로나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재난이 약한 고리부터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는데 집권여당 대표라는 인물이 꺼내는 얘기는 고작 사면이었다. 얼마나 정치공학에만 물들어 있는 것인가. 아직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재판도 다 안 끝났는데, 사면 얘기를 꺼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과 상의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를 일이고 관심 사항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여당 대표가 지금 사면 얘기할 땐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등이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나온 구호였다. 홍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내용은 없고 수사(꾸미고 다음어진 말)만 있는 정부”라고 지적했다. 뚜렷한 정치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촛불정신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길 모두 기대했다. 그런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최저임금 문제에 봉착했다. 산입 범위를 확장하면서 사실상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상승 폭도 거의 없게 됐다. 특히 이후 조국 사태를 보면서 이들이 내걸었던 윤리적 우월성이라는 것이 토대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적어도 수구세력과는 다를 거라 믿었는데 그게 전혀 안 보였던 거다.” 홍 전 대표는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약속한 것 중 무엇이 지켜졌는지도 반문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은 집값을 잡는다고 장담했는데, 지금 거의 파탄이 났다. 그렇다면 당연히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떤 변수를 못 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얘기가 있어야 한다. 이건 정치 지도자로서의 책임윤리다. 매우 당연한 일인데 그런 게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다. 안전 문제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모른 척할 수 있나. 이 점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임금님 같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전 대표는 현 집권세력을 이야기할 때 특이한 형태의 ‘팬덤’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비교해 설명했다. “노사모의 경우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이 팬덤에 작용했다. 지금 문 대통령에 대해선 그런 게 없다. 지금은 그냥 좋은 인상이나 화려한 수사에 대한 단순한 호오 감정이 작용한다. 이러한 감정에 빠지게 되면 옳고 그름, 진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팬덤의 ‘덤’은 집단이란 뜻이잖나. 무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이렇게 주변에 많은데 내가 틀리겠어?’라고 생각하며 생각의 수정 또한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 발전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한 가지 예를 들어 부연했다. “한겨레신문에서 창간 후 30여 년간 인물 뒤에 ‘씨’를 붙이기로 정해 왔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기 위함이었다. 노사모에선 영부인을 권양숙씨라고 칭해도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숙씨’라고 했다가 난리가 나지 않았나. 지금의 팬덤 현상을 설명하는 작지만 상징적인 예다. 민주주의가 성숙이 아닌 퇴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년 넘게 이슈의 블랙홀 역할을 한 조국 사태와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그는 집권 세력과 지지자들의 감정이입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조국 전 장관 부부가 자녀를 위해 일종의 ‘기회 사재기’를 한 데 대해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렇게 폭넓게 용인을 하나 싶었다. 어용 지식인들과 미디어 장사꾼들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면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부부를 얼마나 괴롭혔는지는 전달하면서,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의 서사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입이 아래쪽보다 위로 더 잘되는 듯 보였다.” 홍 전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권력기구를 만든 데 대해 우려스럽다. 앞으로 좀 더 지켜볼 일”이라고 평가했다.“보궐선거에 왜 룰까지 바꿔 후보를 내는가”
다가오는 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대해 그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홍 전 대표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면서 “당선인이 민주당 후보는 아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위성정당을 출범시켜 비례대표 후보들을 당선시킨 것도 그렇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사실상 후보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룰을 바꾼 것 아닌가. 지키지 않을 거라면 왜 약속을 하고 공약을 내는가”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기왕이면 국민의힘도 안 됐으면 한다. 안철수 대표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누굴 지지하고 누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누구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지금의 상황이 참 불행한 일”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 주자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데 대해선 “지금 지지율은 윤 총장을 향한 지지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란 의미다. 홍 전 대표는 “야권에 다른 인물이 없고,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겪으면서 너무 많이 대중에 부각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지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이낙연·이재명 후보가 얻고 있는 지지와 대등하게 해석할 순 없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