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尹 전쟁] (上) ‘기·승·전·檢’ 두 칼잡이에 여권 ‘치명상’
친문 여권이 바라보는 秋-尹 사태 “나쁘지 않은 프레임” 판단 여론전 밀리면서 셈법 복잡해저
2020-12-07 송창섭 기자
기(起): 文 정부, 검찰과의 비극적 인연
그간 법무부와 검찰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 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찰떡궁합이었던 것. 이러한 밀월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장관에 판사 출신 강금실 변호사가 취임하면서 검찰과의 대립은 시작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것도 노무현 정부 들어서다. 보수진영 시각에 비춰진 ‘추미애-윤석열 갈등’ 구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분된다. 추 장관이 가해자라면, 윤 총장은 피해자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 즉 여권의 시각으로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정반대가 된다. 특히 여권의 주류인 ‘친문(親文)’의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사태가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선 국정 최고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검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지금 검찰 개혁이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 권력, 지나치게 정치화된 검찰 권력,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책에서 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사법 개혁과 함께 추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 줬다”고 주장했다.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해 보면 문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검찰에 대한 현 집권층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사법 개혁 때부터다. 정권이 바뀌고 칼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자 친노(親盧)는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치면서 검찰 개혁은 지금의 여권이 반드시 이뤄내야 할 ‘1호 사업’이 됐다. 문 대통령이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쓴 책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다시 생각한다》에는 이러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한국의 검찰은 이미 충분히 정치화되어 있고 형사절차상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의 독립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검찰 정치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고 극대화하는 것이다.” 책에서 문 대통령은 정치권이 검찰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유일한 기구를 ‘법무부’로 봤다. 법무부를 통한 합법적인 검찰 통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검찰의 친인권화와 함께 중요한 과제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법무부 장관에 박상기·조국·추미애 등 ‘비(非)검찰’ 출신들을 임명한 데는 이러한 생각이 담겨 있다. 친문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데는 검찰의 정치 개입이 있었다고 본다. 문 대통령 핵심 측근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한 말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왜 폐족(廢族)까지 갔던 친노·친문이 죽지 않고 살아난지 아는가. 수장(首長)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동교동·상도동계 등은 계파 수장이 대통령이 된 후 사라졌다. 정상적이었다면 친노·친문도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안 그랬다. 한국 정치사에 아주 특이한 케이스다.” 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상을 이명박 정부로 규정했지만 칼끝은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검찰도 공범으로 봤다.승 (承): “조국 수사는 여권 상대 대담한 도전”
검찰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촛불에 의해 탄생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 처리의 1등 공신인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선임하면서 양측 간 밀월은 오랫동안 지속될 줄 알았다. 그 뒤 윤 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오른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오른 뒤 양측 사이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윤 총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게 뭔가. 조국 법무부 장관 비리부터 뒤지지 않았나. 이건 조국 장관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없다. 기회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개입하려는 검찰의 못된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이다.” 대표적인 검찰 개혁론자인 조국 장관의 취임에 대한 윤 총장의 불편한 시각에 대해서는 전임 박상기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거론하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 첫날 윤 총장이 조 장관 낙마를 거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큰 변곡점이 됐다. 지지율이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조국 사태부터다. 법무부를 통한 검찰 통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수장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여권 내에선 정치인 출신 추미애 장관을 적임자로 본다. 전형적인 ‘강 대 강’ 전략이다. 지금은 국정원장으로 가 있는 박지원 전 의원은 지난해 8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신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과 상대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여느 인사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처럼 도덕적으로 완벽하리라 생각됐던 조 장관마저 낙마하면서 여권과 검찰 관계는 회복 불가능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 뒤 취임한 이가 추미애 장관이다. 정치권 내에서 추 장관에 대한 평가는 ‘미스터 추’부터 ‘추(秋)하다’ 등 ‘극과 극’이다. 당 대표 시절 추 장관 측근으로 활동했던 한 여권 인사는 “검찰이 추미애 장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1996년 초선 의원 시절 상임위장에서 여당 의원들의 항의에도 당시 연세대 사태 때 성추행당한 여대생들의 증언을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직설적으로 그대로 읽은 이가 바로 추 장관”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렇듯 ‘추(秋)-윤(尹) 갈등’을 바라보는 여권의 생각은 여론의 흐름과도 다소 거리감이 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렇게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공무원 집단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특정 집단을 위해 거의 전 언론이 정부를 싸잡아 비판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윤 총장과 검찰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여권의 생각이 국민 정서와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여권 내 강경파는 추 장관의 ‘윤석열 때리기’를 무리수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다소 잡음은 내고 있지만 여권을 향한 검찰의 예봉을 1차 저지선에서 막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되레 이번 사태로 검찰의 정치 개입이 줄어들 공산이 커졌다고 본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검찰을 저리 그냥 놔뒀으면 불똥이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다소 잡음이 있지만 ‘장관과 총장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것도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친문은 과거 사직동팀으로 대표되는 경찰 내 특수정보 부서가 없어지고,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마당에 남은 개혁 기관은 사실상 검찰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요약하면 ‘정권 칼잡이(추 장관)’와 ‘검찰 칼잡이(윤 총장)’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