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트럼프에 맹목적인 ‘백인 우파’, 그들은 누구인가?

극단주의적 성향으로 진보진영과 마찰 트럼프 이후 공화당과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라

2020-11-07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
이번 미 대선은 미국 사회가 전에 없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파 백인들이 총기를 들고 나서는 모습이나 선거일을 앞두고 폭력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은 미국 역사상 전에 없던 일이다. 1980년대 전에는 공화당 내에도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었고, 민주당 내에도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었다. 이념에 따라 조성된 유럽의 정당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 1980년대 들어 남북전쟁 후 민주당을 지지해 오던 남부가 공화당 지지로 선회하자 미국의 정치 판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진보와 보수로 갈라서는 진영 정치에 몰두하게 됐다.        
‘벌거벗은 카우보이’로 알려진 트럼프 지지자 로버트 버크가 11월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모든 표를 집계하라’ 집회에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REUTERS

남부·내륙은 공화당, 동북부는 민주당으로 지역색 뚜렷  

1860년 대선 직전에 동북부에 기반을 둔 정파들이 모여 만든 공화당은 남북전쟁 후 오랫동안 집권해 왔다. 그러나 1933년 이후 공화당은 20년 동안 야당 신세였고, 1952년 대선에선 아이젠하워 장군을 초빙해 간신히 정권을 잡았으나 1960년 존 F 케네디에게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보수주의를 내세웠으나 린든 존슨 대통령한테 참패했다. 루스벨트의 ‘뉴딜’, 존슨의 ‘위대한 사회’ 등 개혁정책을 통해 민주당은 흑인 등 소수인종과 진보계층의 지지를 넓혀 갔지만 전통적 텃밭이던 남부에선 지지를 상실했다.  1968년 대선에선 남부 5개 주가 진보로 흐른 민주당을 버리고 제3당 후보인 인종주의자 조지 월리스를 지지하는 바람에 민주당 표가 분산됐고,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은 어부지리로 간신히 승리했다. 닉슨은 공화당이 더 이상 흑인과 동북부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것을 알고 민주당이 지지를 상실한 남부를 공화당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2년 대선에서 급진 성향인 조지 맥거번을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은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그 후 남부 주는 남부 출신인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만 민주당에 지지를 보냈을 뿐 공화당 텃밭이 되었다. 1980년 대선에서 보수주의를 내건 로널드 레이건이 압승함에 따라 공화당은 12년 동안 황금기를 보냈고, 남부는 남북전쟁 때 자신들의 적이었던 공화당을 확고하게 지지하게 됐다. 무엇보다 레이건은 배우 출신답게 대중을 움직일 줄 아는 포용적 정치인이었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자유를 사랑하고 가정과 국가라는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공화당을 지지한 백인 보수운동가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낙태와 동성애 같은 이슈와 세금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했는데, 이들은 당내 우파로서 입지를 다졌다. 엘리트 출신의 실용주의 정치인인 조지 H W 부시가 1992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 것은 이런 이슈에서 보수주의를 이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 조지 W 부시는 부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보수주의를 충실히 따라 2004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위기로 공화당은 2008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2000년 대선을 기점으로 남부와 내륙은 공화당, 태평양 연안과 동북부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색으로 갈렸고, 흑인 등 소수인종이 많이 사는 도시는 민주당 우세, 농촌과 산간 지역은 공화당이 우세한 오늘날의 정치지도가 완성됐다.   

“뉴욕타임스 보는 자식들이 이따위 말을 하고 있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여론은 동부에 근거를 둔 신문과 네트워크 뉴스가 이끌어갔다. 1987년 연방통신위원회가 방송의 공정성 원칙을 폐기하자 미디어 지형에 큰 변화가 일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방송국을 전전했던 러시 림보가 자기 이름을 내건 신디케이트 라디오 토크쇼를 시작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지금껏 청취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림보는 클린턴 부부의 위선과 가식을 20년 동안 비판했고, 총기 소유는 미국인의 권리이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반역자라는 메시지를 백인 근로계층에 전파했다. 림보는 “뉴욕타임스 보는 자식들이 이따위 말을 하고 있어” 하는 식의 방송으로 저학력층 백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1996년 폭스뉴스가 개국하자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뉴스채널을 보게 됐다. 빌 오라일리가 진행했던 뉴스쇼는 진보정치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폭스뉴스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애국자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역자로 취급했다. 백인 근로계층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군인들에 대해 동질성을 갖고 지지했다.   민주당 후보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 대선은 이들에겐 충격이었다. 오바마 정부가 금융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을 지원하면서 정작 어려운 근로자 계층을 무시한다는 분노가 이들에게서 터져나왔다. 공화당 지지 세력 중 일부가 티 파티(Tea Party) 운동을 전개해 전국적 현상으로 발전했다. 2008년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동부 언론에 의해 ‘무식한 여자’ 취급을 받았던 세라 페일린은 주로 백인 근로계층들 사이에선 영웅이었다. 이들은 사커 맘(Soccer Mom)이라 불리는 평범한 엄마, 조 식스팩(Joe Six Pack)이라 불리는 평범한 남자를 정부가 무시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진짜 미국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마크 루비오, 테드 크루즈 등을 의회로 진출시킬 정도로 한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군 지휘관 로버트 리 등 남부 인사들을 기리는 동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도 우파 백인들을 자극했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북부군 사령관 그랜트 장군은 “이제 남부군도 우리 동포”라면서 국민 통합을 선언했다. 그 후 남부는 남부군의 유산을 자신들의 역사로 존중하고 보존해 왔다.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등 남부 도시에는 남부 인사들의 동상이 서 있고, 남부의 도로·공원·학교는 이들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았다. 흑인 민권단체가 동상 철거와 개명을 요구하고 나서자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의 역사 유산이 부인당하는 데 대해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6년 대선이 치러졌다. 예상을 뒤엎고 젭 부시 등 공화당 주류 후보 대신 공화당 후보가 된 트럼프를 백인 우파는 열렬히 지지했다. 이들에게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마녀’이자 ‘악마’였다. 트럼프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대통령이 됐다.  2017년 8월, 토머스 제퍼슨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극우 시위대로 인해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백인 우파 운동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었는데, 트럼프는 이런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태도를 취했다. 트럼프는 이런 식으로 4년 내내 국민을 분열시키면서 제멋대로 나라를 운영했다. 이제 백인 우파의 문제는 트럼프 이후 공화당, 그리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