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현실화’는 정말 세금폭탄일까
2030년까지 공시가격 90%…6억원 이하 1주택자 재산세 감면 “집값 안정·조세 형평성 강화” vs “사실상의 증세”
2020-11-08 김종일 기자
# 공시가격이 대체 뭐기에
공시가격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조사·평가해 공시한 토지의 단위면적(㎡)당 가격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발표하는 ‘땅값’이다. 실제 우리가 거래하는 가격과는 다르다. 거래할 때 쓰는 가격이 아니라면 공시가격은 대체 왜 필요할까. 정부는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지가 정보체계를 세우기 위해 ‘부동산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땅값을 산정해 공시하고 있다고 밝힌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정부의 유일한 공적 부동산 조사통계 자료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각종 세금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부동산 세금의 기준은 물론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건강보험료 등의 잣대로 활용돼 복지 제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외에도 공시가격은 생계유지 곤란 병역 감면 판단 기준, 공공주택 입주자 자격 등 복지·조세·행정 목적 등 60여 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공시가격은 고령화 때문에 점점 더 많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일을 해서 내는 소득세보다는 재산 규모에 따라 내는 보유세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데, 보유 재산의 판단 기준이 바로 부동산 공시가격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고령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조세 형평 실현을 위한 공시가격의 정확성과 균형성에 대한 요구는 점차 커질 전망이다.# ‘공시가격 현실화’가 대체 무슨 뜻일까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게 뭘까?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대한 단계적 목표를 두는 것이다. ‘현실화율’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다. 즉 공시가격을 시세로 나누는 것이다. 만약 시세 10억원의 주택인데 공시가격이 6억원이라면 6억원 나누기 10억원으로 현실화율은 60%가 된다. 이게 바로 시세 반영률이다. 정부는 이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단계적으로 90%까지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왜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나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실제와 너무 다르면 조세 형평성은 흔들리게 된다. 가령 매매가는 20억원인데 공시가격은 10억원도 되지 않으면 세금 부담이 실제 자산 규모보다 훨씬 적은 모순이 발생한다. 고가 단독주택이 대표적이다. 서울 부촌에 있는 단독주택은 비싼 시세에도 공시가격은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낸다는 지적이 많다. 공시가격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고가 주택과 토지를 보유하고도 건강보험료를 아예 내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처럼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추진에는 국민들이 부동산 보유액에 따라 공평한 부담을 져야 한다는 조세 형평성 논리가 가장 크게 자리한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크다. 최근 몇 년간 가파르게 가격이 오른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속내는 분명하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당장 다주택자들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들이 보유한 주택 물량 상당수가 시장에 풀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아울러 다주택자의 주택 추가 구매를 막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증세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고가 단독주택 시세 반영률이 왜 아파트보다 낮을까
고가 단독주택의 시세 반영률이 아파트 등보다 낮아 세금을 적게 내는 문제는 우리의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체계가 이원화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의 경우 공동주택(아파트·다가구주택)은 한국감정원이, 단독주택·토지·상가는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조사하고 있다. 지자체의 경우 감정원이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표준 부동산 가격을 산정하면 이를 참조해 개별 부동산의 적정 가격을 산출한다. 문제는 지자체가 민원 등을 우려해 정부보다 가격을 턱없이 낮게 산정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점점 확대됐다.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등의 산정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낮추면 지역 주민의 세금 부담도 같이 줄어든다.# 정부 발표의 핵심은 무엇인가
핵심은 9억원 미만 아파트는 2030년까지,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2025년까지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이 90%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신 공시가격 6억원 이하 1주택자는 향후 3년간 재산세가 0.05%포인트 감면된다. 현실화가 완료될 경우 현재 토지 65.5%, 단독주택 53.6%, 공동주택 69.0%로 들쑥날쑥한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은 유형별로 동일해진다.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 90%까지의 소요 기간은 토지 8년, 단독주택 7~15년, 공동주택 5~10년으로 부동산 유형별·가격대별로 서로 다르게 설정됐다. 아파트가 해당되는 공동주택의 경우 9억원 미만은 2030년,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은 2027년, 15억원 이상은 2025년에 현실화율 90%를 달성하게 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집단 내 편차가 적고 이미 현실화율이 높은 9억원과 15억원 이상은 내년부터 바로 연간 3%포인트의 현실화 제고율이 적용되는 반면, 집단 내 현실화율 편차가 큰 9억원 미만 주택은 2023년까지 1%포인트 미만의 ‘균형 기간’을 갖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역시 15억원 이상 고가 단독주택은 2027년으로 달성 시기가 짧지만, 9억원 미만은 2035년에 달성하게 된다. 국토부는 연도별 제고율 상한을 6%포인트로 정했다. 평균 현실화율을 적용할 경우 현실화율이 현저히 낮은 개별 부동산은 세금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왜 90%를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라 할까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왜 ‘90%’로 결정됐을까.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100%로 맞춰야 그게 말 그대로의 ‘공시가격 현실화’ 아닐까. 당초 연구용역을 맡았던 국토부 싱크탱크인 국토연구원은 80%, 90%, 100% 등 3개 안을 제시했는데 당정(黨政)은 90%를 가장 중립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시가격 80%는 실거래가와 차이가 너무 크고, 100%는 부동산 시장이 하락할 경우 자칫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국토부는 “90%는 적정가격을 공시하도록 한 법률 취지에 따라 최대한 시세를 반영하되, 공시가격 조사·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감안했다”고 밝혔다.# 세금이 오르면 얼마나 오르나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결국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세금 증가 규모다. 국토부가 공개한 ‘보유세 추정 자료’를 통해 2023년까지 단계별로 얼마나 세금이 늘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연간 3%포인트씩 공시가격 현실화 제고율을 적용받으면서 재산세율 인하가 없는 9억원 이상 주택의 보유세 부담은 분명히 커진다. 서울 마포구의 시세 15억원 아파트의 보유세는 올해 243만7000원에서 2021년 306만5000원, 2022년 352만6000원, 2023년 408만4000원으로 증가한다. 2023년엔 보유세가 올해 대비 67.6% 증가한다. 고가 아파트 보유세도 가파르게 오른다. 서울 송파구의 20억원 아파트는 올해 보유세 528만3000원에서 2021년 683만1000원, 2022년 806만4000원, 2023년 889만9000원으로 늘어난다. 서울 서초구 32억원 아파트의 올해 보유세는 1788만원에서 2023년 2743만9000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중저가 주택은 재산세 특례 도입으로 3년간은 세금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 경기도 안양시의 시세 6억원 아파트 재산세는 올해 41만9000원에서 2023년 32만5000원으로 22.4%(9만4000원) 줄어든다. 재산세 감면이 없을 경우에는 45만2000원을 내야 한다. 서울 관악구의 시세 8억원 아파트의 재산세도 올해 68만8000원에서 2023년 56만1000원으로 18.5%(12만7000원) 감면된다.# ‘세금폭탄’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일정 정도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크게 오른 점을 고려하면 일부 국민은 이전에 비해 부담을 크게 느낄 가능성이 큰 것도 맞다. 하지만 월급이 오르면 자연히 세금이 늘어나듯,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보유세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저가 1주택 보유자라도 집값이 올랐으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조세 원칙에 부합한다. 정부가 재산세를 인하하는 것에 대해 선거를 의식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2017년 기준 0.16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39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프랑스 0.58%, 일본 0.53%, 영국 0.76% 등에 비해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한참 낮은 수준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낮은 것이 핵심 원인이다. 정부가 예정대로 공시가격을 90% 선까지 올려도 100% 수준인 선진국보다는 여전히 낮다. 이전 정부들도 공시가격 현실화를 시도했지만 “사실상 증세”라는 반발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이번에도 제1야당 국민의힘은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추진에 대해 “실질적 증세 목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수언론 등도 일제히 ‘세금폭탄론’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부동산 공시법’에는 공시가격을 사실상 시장가격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산세 3년 한시 인하 카드는 왜 나왔나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며 당근책도 제시했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늘어날 수 있는 세금 부담을 감안해 공시가격 6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의 재산세율을 내년부터 0.05%포인트 인하하기로 한 것이다. 국토부는 한 채당 연간 최대 18만원까지 재산세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인하된 세율은 내년 재산세 부과분부터 적용된다. 과세 기준일은 6월1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재산세 감면 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으로 할 거냐 9억원으로 할 거냐를 두고 줄다리기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6억원으로 결정됐다. 공시가격 9억원이면 실제 가격은 10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 정도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청와대의 의견이 관철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감면 혜택을 받는 서울 노원구 시세 3억원 주택은 올해 보유세가 총 15만4000원이었지만 내년에는 9만4000원으로 줄어든다. 이후 2023년까지 9만7000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반면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울 마포구 시세 15억원 주택은 보유세가 내년 306만5000원에서 2023년 408만4000원으로 늘어난다. 현재 공시가격 6억원(시세 9억~10억원) 이하 주택은 1주택자 보유 주택(1086만 채)의 약 94.8%(1030만 채)에 이른다. 재산세 부과 대상 주택(1873만 채)의 절반이 넘는다. 감면율은 공시가격에 따라 22.2~50%다. 총 감면액은 연간 4785억원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2023년까지 특례로 세율을 인하하고 이후 연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왜 재산세 3년 한시 인하 카드를 꺼냈을까. 정부는 추후 주택시장 변동 상황을 반영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중요한 포인트는 3년이라는 기간이다. 그사이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와 내후년 치러지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다. 집권여당 입장에서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면서 재산세 인하라는 당근책을 꺼내 여론을 달래는 효과를 중요한 선거를 치를 때까지 누릴 수 있는 셈이다. 3년 후에 재산세 인하가 연장될 수도 있겠지만 뒷수습은 차기 정부에 미뤘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는 대목이다.# 공시가격 결정 정보는 공개되나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지만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정보의 투명성과 정확성이 담보돼야만 조세 저항을 피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개정된 부동산 공시법에 따라 내년 공시부터 가격 산정의 기초자료와 공시가격 결정을 위한 심의 자료 등을 공개할 계획이다. 공개되는 구체적인 정보 대상에는 부동산 유형별 종합적 시세 반영률, 부동산 유형별 공시가격 조사·산정 기준 및 절차, 부동산 주요 특성 및 현황과 실거래가 등이 포함된다. 정부는 올해 세종시 부동산에 대해 산정 기초자료를 시범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