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특집-연금] 30년 뒤 내 팔자를 다르게 하는 안전망

연금 플랜, ‘단기적인 본능’ 묶고 ‘장기적인 이성’ 가동시켜야

2020-10-28     김경록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대표
아내는 ‘사람 팔자’ 이야기를 할 때 가끔 친구의 오빠들 얘기를 한다. 한 명은 공부를 잘해 유학 갔다 와서 교수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외국계 금융기관에 들어가 평생 지냈다고 한다. 막내 오빠는 9급 공무원이 되어 같은 공무원과 결혼했다. 지금 막내 오빠는 퇴직 후에 부부가 해외여행을 다니느라 국내에 붙어 있는 날이 별로 없다고 한다. 연금이 말년의 팔자를 바꾼 셈이다. 
노인 325만 명에게 월 최대 30만원의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된 1월23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북부본부에서 직원이 시민에게 기초연금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금은 ‘갬블’이 아니라 ‘안전망’

연금에는 장기간의 관점과 행동이 영향을 준다. 직장에 들어오면 30년 이후를 보고 연금에 얼마를 납입할지, 연금 운용은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연금 플랜이 이처럼 철저히 장기인 데 반해 사람의 뇌는 단기적이어서 미래의 편익을 위해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퇴직이 닥치면 연금 준비가 미비해 후회하게 된다. 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면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자신을 묶고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은 것처럼 ‘단기적인 본능’을 묶고 ‘장기적인 이성’을 가동시켜야 한다.  연금은 매력적인 노후 파트너다. 우선, 연금보다 노후에 안정적인 자산은 없다. 특히 공적연금은 노후에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거의 다 없애준다. 종신토록 지급하기에 수명과 일치된다. 소위 ‘수명 리스크’를 없애준다. 국민연금은 지급액을 소비자물가와 연동해 매년 증액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물가 상승으로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리스크를 막을 수 있다. ‘시장 리스크’도 없애준다. 시장 리스크는 금융시장 변화에 따라 연금액이 변할 가능성을 말하는데 연금은 사전에 지급액을 고정해 놓아 그럴 가능성이 없다.  또한, 연금은 스스로를 결박해 외부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수년 전 지인 한 분이 5억원으로 즉시연금에 가입했다. 이유인즉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든 쓸 것 같아서 자식도 자신도 건드리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는 것이다. 현명한 결정이다. 연금은 한 번 가입하면 해지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오히려 이 단점이 바로 연금의 장점이 된다. 불편함이 노후를 안정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노후에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더 이상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금융사기, 자녀 지원, 사치성 지출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이 들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때 목돈은 사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젊을 때는 자신의 통제 아래 돈을 관리하는 것이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돈은 자동으로 관리되게 해야 한다.  연금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연금을 ‘갬블(gamble·도박)’로 본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수령을 한 해 연기하면 7.2%를 더 주고 5년을 연기하면 36%를 더 받는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금융자산은 현재의 지출에 사용하고 국민연금은 몇 년 연기해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대부분은 그냥 제때 받겠다고 한다. 이유는 거의 동일하다. 빨리 죽으면 손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두고 도박을 하는 셈이다. 자신의 수명을 예측해 연금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금의 본질에 어긋난다. 국민연금과 같은 종신연금은 공사장에 쳐놓은 안전 그물망처럼 ‘노후의 안전망(safety net)’이다. 내가 혹시 오래 살더라도 혹은 금융사기를 당해 은퇴소득이 급감하더라도 나의 노후 생존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노후파산을 해서 어렵게 사는 노인들은 연금이 미비한 사람들이다. 안전망조차 부실한 탓이다.  연금의 안전망 역할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종신연금 가입률이 낮다. 이를 일컬어 연금퍼즐(pension puzzle)이라 부른다. 이처럼 사람들이 합리적인 방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연금에 가입하고 빨리 죽으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수익성 관점 때문이다. 노후에는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그때 그물망처럼 나를 보호해 주는 게 연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연금 운용 방식을 바꾸자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처럼 초(超)장기로 운용해야 하는 상품에는 ‘투자 상품’이 적합하다. 예금과 같은 확정금리 상품은 단기 상품이기에 연금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도 따라가기 힘들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로금리 시대에 연금 운용은 확정금리 상품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다. 연금저축에는 연금저축보험, 연금저축신탁, 연금저축계좌가 있는데 서로 계좌 이전이 된다. 지금 같은 제로금리 시대에는 투자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 연금저축계좌로 옮겨볼 만하다. 연금저축계좌는 펀드나 ETF(상장거래펀드)를 계좌에 편입해 자신이 운용한다. 최근 ETF는 다양한 상품이 쏟아지고 있으므로 이들을 자산 배분해 수익을 높이면 좋다. 자산관리에 자신이 없거나 관리할 여유가 없으면 ‘타깃 데이트 펀드(TDF·target date fund)’처럼 자동으로 관리해 주는 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퇴직연금에는 DB(확정급여형)와 DC(확정기여형)가 있다. 전자는 회사가 퇴직 시에 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지급하므로 개인이 운용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 근로자는 평균임금 상승률이 퇴직 때 받을 퇴직연금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임금 상승률이 낮으면 퇴직연금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20년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20년 후 퇴직연금은 지금 받는 월급의 20배라고 보면 된다. 현재 연봉이 6000만원(월 500만원)이면 20년 후 DB 퇴직연금은 1억원이 된다.  반면 DC는 매년 연봉의 12분의 1을 적립해 적립금을 자신이 운용한다. 위의 예처럼 연봉이 20년 동안 변하지 않으면 매년 500만원을 적립한다. 그런데 적립금을 연 5% 수익률로 운용했다면 20년 후 자신의 퇴직연금은 1억6500만원이 된다. 연 7%로 운용하면 2억500만원이 되며, 만일 2% 수익률이면 1억2100만원으로 낮아진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저성장으로 임금 상승률이 낮아져 DB의 매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임금구조도 변하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임금이 계속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초저금리로 인해 확정금리 상품으로 운용하는 DC 수익률도 낮아진다. 퇴직연금은 30년 이상 장기로 운용하기 때문에 수익률의 작은 차이에도 퇴직연금액은 큰 차이를 보인다. 현재 퇴직연금은 DC에서조차 확정금리 상품 비중이 80%에 이른다. 제로금리 시대에 맞지 않는 구조다. 저성장·초저금리 시대에는 현재의 안전 위주 퇴직연금 관점을 ‘DB→DC’로, ‘확정금리 상품→투자 상품’으로 바꾸어야 한다.   

연금의 숨은 기능을 활용하자

바둑에는 ‘내 말이 살고 난 후에 상대방 돌을 잡으러 간다(我生然後 殺他)’는 격언이 있다. 돌의 생존이 확보되면 과감한 수를 둬볼 만한다는 말이다. 이는 노후의 연금 활용 전략으로 바로 연결된다. 국민연금과 같은 종신연금은 나의 생존(我生)을 확보해 준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자산은 투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익을 취하는 것이 ‘살타(殺他)’다.  국민연금이나 종신연금은 수령액이 정해져 있으므로 수익을 많이 내는 기능은 없지만, 연금 수령액의 안전성을 활용해 다른 자산에서 적극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간접적인 기능이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노후에 안전자산을 대부분 보유하면서 이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노후 자산관리는 연금의 숨은 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요체다. 국민연금과 같은 종신연금이 장기적으로 나의 노후 지출을 감당해 줄 때 다른 은퇴자산을 투자해 수익을 높이는 것이다.  노후에도 글로벌 자산을 가져야 한다. 노후를 책임져 줄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젊은이다. 글로벌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으면 이들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일부가 나의 것이 된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은행주를 60%가량 갖고 있어, 우리 젊은이들이 생산한 이익의 60%는 다른 나라 노인들의 소득이 된다. 노후에 이러한 투자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든든한 연금의 숨은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