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학계 진실공방

박종화 UNIST 교수 “한국인은 단일민족 아니다” 주장…일부에선 “데이터 부족, 혼혈 과정 명쾌하지 않다” 반론 제기

2020-09-10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태초에 ‘게놈’이 있었다. 게놈은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로 생명체 세포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게놈 해석은 유골이나 화석에서 DNA 파편을 찾아 해독한 뒤 유전적 특징을 밝히고, 인류 기원의 잃어버린 ‘빈 공간’을 찾아내는 새 영역이다. 게놈은 인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자서전과 같지만, 인류 기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완벽한 증거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국내에서도 게놈 해석과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논란도 만만치 않다.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 박종화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한국인은 혼합민족이지 단일민족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게놈연구재단 등과 공동으로 전 세계 158명의 현대인과 115명의 고대인 게놈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국제학술지 ‘게놈생물학 및 진화’ 2020년 5월호에 발표했다. 현재의 한국인은 지난 4만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동해 온 남중국 및 동남아시아 인구집단이 복잡하게 뒤섞여 형성됐다는 것이다. 

박종화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수가 표준 게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UNIST 제공

“한국인, 남중국과 동남아 인구 뒤섞여 형성”

박 교수팀은 “현대 한국인 게놈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악마문동굴’에서 발굴된 8000년 전 북아시아 신석기인과 3500년 전 철기시대에 지금의 캄보디아에 살았던 '밧콤노우인'의 게놈을 융합한 결과와 가장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북아시아에는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북아시아인이 퍼져 살고 있었고, 악마문동굴 신석기인도 그중 하나다. 이후 약 5000~4000년 전 신기술로 무장한 중국 남부의 새로운 고대 인류집단(후남방계)이 베트남과 티베트, 북중국, 한반도 등 방향으로 팽창하며 이들과 만나 혼혈이 됐다. 이들이 확산해 한반도 쪽으로 유입된 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이 지난해 6월 '네이처'에 실은 논문은 한국인 형성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유라시아 전반의 인구 이동 경로가 박 교수팀 주장과 차이가 났다.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악마문동굴에는 약 3만 년 전 유라시아 수렵채집인이 건너왔고, 이후 2만 년 전에 동아시아인이 들어와 '고대시베리아인'이라는 인류집단을 형성했다. 이들 중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이후 1만 년 전 다시 동아시아인이 들어와 ‘신시베리아인’을 형성했고, 현재 시베리아 지역 인류 다수가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은 지난 5월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와 정충원 서울대 교수팀의 '셀' 논문으로도 보다 자세히 확인됐다.

일부 유전학자들은 박 교수팀의 연구 논문엔 이 같은 최신 연구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수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지적됐다. 이번 연구는 드넓은 아시아 전역에서 수만 년 사이에 일어난 인구집단의 이동을 115개 고대인 데이터로 분석했다. 국내 한 유전학자는 “제한된 양의 게놈 분석으로 인류 대이동을 밝히는 건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또 “여러 인구집단이 시대별로 어떻게 혼합됐는지 구체적 과정을 밝힌 부분(계통수)도 정교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교수는 “추가 데이터를 확보해 더 정교화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며 “선남방계(북아시아 지역)의 후손이 아시아 전반에 큰 변화 없이 퍼져 살다 약 5000~4000년 전 남중국에서 시작된 새 기술을 지닌 인류의 팽창으로 격변을 맞았고, 한국인 역시 이 과정에서 형성됐다는 ‘큰 그림’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먼지가 쌓이듯 DNA에도 변이가 일정한 속도로 축적된다. ‘분자시계’는 그 축적량을 측정해 등장 시간을 역으로 추정하는 기술이다. 1987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하나의 가설이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은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모든 인류는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의 후손이고,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한 후손들이 세계 각지로 이주해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됐다고 발표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양성은 중요한 정보가 있지만, 다양성 돌연변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분자시계 접근법이 맞는지는 논란이 있다”며 “돌연변이 발생 시점이 집단이나 종의 발생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 지방의 악마문동굴 ⓒUNIST 제공
러시아 극동 지방의 악마문동굴에서 발견된 머리뼈 ⓒUNIST 제공

최근 학계서 한국인 기원 추적 연구 잇따라  

이런 논란 속에서도 윌슨의 '미토콘드리아 이브' 이론 이후 국내에서는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가 잇따랐다. 방민규 박사는 ‘생물인류학 자료로 본 한국인 기원문제에 대한 연구(2019년)’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남방계(중국 남부인) 유전자 비중은 40% 이상이라고 밝혔다. 유전학자인 이홍규의 저서 《한국인의 기원》(2010년)에 따르면, 모계 혈통을 추적하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한국인의 남방계 유전자 비중은 60%다. 김욱 단국대 생물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몽골인보다 중국 한족 및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특징을 보였다”고 2004년 발표한 바 있다. 같은 해 김종일 한림의대 교수는 “한국인은 몽골인과 연관성이 높고 중국인과는 차이가 있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종합해 보면 이들의 연구 결과는 제각각이고, 앞서 박종화 UNIST 교수팀의 논문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과 게놈 해석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진실공방에 불을 지핀 건 지난해 10월29일 ‘네이처’에 실린 호주 가반의학연구소와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논문이다.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으로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의 기원 시점과 발상지를 20만 년 전 남아프리카로 지목하면서다. 고인류학자와 유전학자들 사이에서 학문적 이견이 나왔다.  집단유전학자인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와 차이가 있어 게놈을 해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현생인류를 다루는 연구는 매우 까다롭다"고 말했다. 영국의 고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거 런던 자연사박물관 교수는 “우리(현생인류)는 아프리카 다양한 곳의 선조로부터 영향을 받은 뒤섞인 존재(amalgam)”라며 “유전자의 일부만으로 이렇게 조각난 인류 기원의 복잡함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놈 안에서 인류라는 종이 생겨났다. 생명체 기록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게놈의 암호가 하나둘 해독되면서 한국인의 기원도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다만 광범위한 게놈 해석과 데이터 축적이 숙제로 남아 있다. 한동안 진실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화 교수는 “한국인의 기원은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아시아 인류집단과 밀접하게 엉켜 있는 일종의 친족체로 봐야 한다”며 “게놈을 해석하면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