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뭐야?” 굳건한 ‘명품 불패’

백화점 매출 감소에도 명품 소비는 증가…막힌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소비로 몰려

2020-07-15     박지호 시사저널e. 기자

7월말 발리 여행을 계획했던 직장인 박인경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자 여행을 취소했다. 당초 박씨는 숙박비와 식비 등을 통틀어 150만원가량을 지출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비용에 추가 금액을 더해 국내에서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 박씨는 “어차피 나를 위해 쓰기로 했던 비용이니만큼, 평소 사고 싶었던 제품을 샀다. 가방 구입은 예정에 없었지만 전체 비용으로 따지면 계획된 소비이기도 해서 가계에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비심리가 침체했지만 명품 매출은 오히려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 2분기(4~6월) 백화점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증가했고, 온라인 해외직구 수요 역시 늘어났다. 하늘길이 막히자 덩달아 묶여버린 중산층의 해외여행 여윳돈이 명품 소비로 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4~6월의 작년 동기 대비 명품 매출 신장률은 각각 월별로 11%, 19%, 24%를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올해 상반기 명품 부문 매출액이 21.3%나 신장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4월과 5월 명품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3.8%, 25.3% 상승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됐지만 명품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연합뉴스

백화점 3사 명품 매출액 20% 전후 상승

3월까지만 해도 명품은 코로나19의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업체 매출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국내 백화점 3사의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2.9%, 4.2%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었던 지난 3월에는 이 수치가 -19.4%까지 급감했다. 산업부가 2016년 6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통계를 개편한 이후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이 처음 감소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둔화되자 명품 매출액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4월과 5월 매출 증가율이 8.2%, 19.1%로 반등한 것이다. 면세점 재고품이 판매된 6월말, 판매 시작과 동시에 제품이 매진되거나 판매처인 백화점 앞에 오픈 전부터 500여 명의 대기줄이 이어지는 모습에서도 명품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해외여행길이 막히면서 생긴 여윳돈이 명품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하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산층이 지금 돈 쓸 데가 없다. 해외여행이 막혀 있으니 외부하고 교류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행위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게 바로 명품 소비”라고 말했다. 온라인 명품 구매 역시 늘어났다.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과 옥션의 ‘패션뷰티 빅세일’ 프로모션 첫날인 7월1일, 명품 직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최대 5배 이상 증가했다. 해당 기간 G마켓 명품 해외직구 매출 신장률은 429%, 옥션은 3배 가까운 161% 신장세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일명 ‘보복소비’가 확대되는 가운데, G마켓과 옥션이 패션뷰티 단일 프로모션으로는 연중 최대 규모의 행사를 열자 수요가 몰린 것이다. 박민혁 이베이코리아 해외직구팀 매니저는 “소비심리가 점차 회복세에 들어가고, 여기에 보복소비 트렌드가 확대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명품 직구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코로나19 이전에도 감염병 국면은 있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에도 유사한 트렌드가 나타났다.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발생했던 지난 2009년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6월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3% 오르는 데 그쳤다. 당시 4.3%라는 한 자릿수 증가율은 2006년 8월(2.9%) 이후 최저치였다. 같은 해 명품 매출 증가율은 2월 47.7%로 고점을 찍었고, 3월 23.6%, 4월 19.3%, 5월 14.7%로 다소 둔화되다가 6월 4.3%라는 저점을 기록했다. 당시 지식경제부는 이를 두고 신종플루 등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화 표시 가격이 올라가면서 명품 매출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7월 다시금 명품 매출 증가세가 회복됐다. 6월말부터 백화점 업계가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 7월 명품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두 자릿수인 11.8%로 반등했다.
6월25일 오전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 열린 재고 면세품 판매행사에 소비자들이 대거 몰렸다. ⓒ연합뉴스

신종플루·메르스 때도 마찬가지

메르스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5월말 확진자가 발생해 6월 확산세가 최고점을 기록했던 2015년 당시에도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은 10%가량 증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의 6월 유통업체 매출동향을 살펴보면 백화점의 경우 선(先)세일 및 시즌 오프에도 메르스 영향으로 패션 장르가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하며 증가율은 11.9% 하락했다. 반면 7월에는 백화점의 판매 촉진행사 등으로 생활가전과 해외 유명 상표(시계·패션) 판매가 증가하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0.7%, 전월 대비 10.6% 늘어났다. 같은 해 12월 백화점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액도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대내외적인 상황 악화에도 명품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자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까지 했다. 디올은 7월2일부터 레이디디올백 등 주요 상품 가격을 10~12% 인상했다. 지난해 10월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린 뒤, 올해 처음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샤넬도 지난 5월 주요 제품 가격을 20%가량 인상했다. 루이비통은 지난 5월 핸드백과 의류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5~6% 인상했다. 이 외에도 구찌, 프라다, 티파니앤코 등 인기 명품 브랜드가 올해 상반기 줄줄이 가격을 인상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명품은 구매 이후에도 쉽게 되팔 수 있다. 중고 수요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명품 수요가 꾸준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3분기 전망 역시 밝다. 명품의 주된 소비 채널인 백화점의 3분기 경기전망지수 역시 다른 소매유통업에 비해 높다. 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업체 1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82였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2분기 66에 비해 침체가 다소 둔화된 모습이다. 이 중 백화점은 전분기 61에서 93으로 지수가 오르며 모든 업태 가운데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