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겨눈 공정위 칼에 벼랑 끝 선 재벌들
총수 검찰 고발 여부 가른 키워드는 ‘통행세’
2020-06-17 송응철 기자
통행세 혐의 하이트진로·대림산업·LS 고발
공정위 조사 대상이 된 재벌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유형과 규모는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총수 일가가 검찰에 고발된 사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존재했다. ‘통행세’가 바로 그것이다. 통행세는 거래 과정에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끼워넣어 수수료를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한 의도에서 이뤄진다. 이는 공정위가 그동안 근절을 강조해 온 대표적 총수 일가 사익 편취 행위 중 하나다. 실제 박태영 부사장은 재판에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맥주캔 제조·유통 과정에 그가 최대주주인 서영이앤티를 끼워넣어 수십억원의 일감을 부당하게 몰아준 혐의가 인정됐다. 이해욱 회장도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인 에이플러스디를 통해 통행세를 거둔 혐의를 받고 있다. 에이플러스디에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 상표권을 출원·등록하도록 한 뒤 호텔을 운영하는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부당하게 수수한 것이다.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구자홍 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 등 LS그룹 오너 일가도 이런 경우다. 이들은 거래 과정에 오너 일가 지분율이 49%이던 LS글로벌을 끼워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LS글로벌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일감의 규모는 약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LS그룹 오너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LS글로벌의 사세를 확장한 뒤 오너 일가 보유 주식 전량을 지주사인 (주)LS에 매각해 약 93억원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판단했다. LS그룹 오너 일가는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2·3세 경영권 유지와 승계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LS그룹 관계자는 “전기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동(銅)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해 왔다”며 “재판을 통해 성실히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미래에셋·아모레퍼시픽, 총수 고발은 면해
반면에 미래에셋그룹과 아모레퍼시픽그룹, 한화그룹 등은 통행세 이슈를 피했다. 미래에셋의 경우 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생명보험 등 11개 계열사가 고객 접대와 행사·연수 등에 미래에셋컨설팅이 운영하는 블루마운틴CC와 포시즌스호텔을 이용하도록 했다. 계열사들은 또 명절 선물을 블루마운틴CC와 포시즌스호텔에서 구매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박현주 회장(48.6%)과 그의 부인 김미경씨(10.2%), 자녀 은민·하민·준범(각 8.2%)씨가 지분 83.4%를 소유한 사실상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다. 공정위는 이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다만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공정위는 기존에 이용하던 골프장·호텔을 계열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단순 변경했다는 점, 무엇보다 ‘통행세’를 받는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그룹도 공정위 조사 결과 지주사인 (주)아모레퍼시픽그룹이 100% 자회사 코스비전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포착됐다. 코스비전이 금융권에서 시설자금을 차입할 수 있도록 아모레퍼시픽그룹이 보유한 정기예금을 담보로 제공한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올해 4월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코스비전에 각각 4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다만 이런 지원 행위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직접적으로 얻은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조사가 검찰 고발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그룹은 현재 한화S&C에 그룹 차원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18년까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50%),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25%),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25%) 지분율이 100%이던 시스템통합(SI) 업체다. 한화S&C는 내부 거래를 바탕으로 에너지 관련 업체들을 연이어 인수합병(M&A)해 사세를 확장했다. 후계자가 소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승계 재원을 마련하는 재벌가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공정위는 최근 한화S&C에 대한 제재에 착수한 상태다. 한화그룹 측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있어 이를 전원회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밝힐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희비가 엇갈린 사례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기업들도 있다. 공정위 제재를 목전에 둔 하림·SPC그룹이 그런 경우다. 이들 기업은 모두 통행세 논란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자칫 총수가 검찰에 고발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하림그룹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장남 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닭고기 가공업체 올품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와 관련해 공정위 조사를 받아 왔다. 올품은 현재 ‘김준영→올품→한국인베스트먼트→하림지주→계열사’로 이어지는 하림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회사다. 하림그룹은 올품의 100% 자회사이던 한국썸벧을 양계농장에 필요한 약품 공급 중간 단계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부당 지원은 공교롭게도 김 회장이 준영씨에게 올품의 지분 100%를 증여한 2012년부터 이뤄졌다.제재 앞둔 하림·SPC 모두 통행세 논란
SPC그룹에서도 통행세 혐의가 포착됐다. 공정위는 밀다원·에그팜·그릭슈비인 등 계열사가 파리바게뜨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SPC삼립이 통행세를 거뒀다고 판단했다. SPC삼립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4.64%)과 그의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16.31%), 차남 허희수 전 SPC 부사장(11.94%) 등 오너 일가 지분율이 32.89%인 회사다. 다만 SPC그룹은 자산 5조원 미만으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공정위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 지원을 금지하는 불공정행위 금지 조항을 적용해 제재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향후 전원회의 등 소명을 청취하는 절차를 거쳐 이들 그룹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하림·SPC그룹은 일제히 공정위 조사 결과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맞서고 있다. 하림그룹은 통행세 논란과 관련해 “거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통합 구매”라고 설명했고, SPC삼립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상적인 거래”라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