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종 뒤에 드리운 ‘연쇄살인의 그림자’
20·30대 여성 성폭행 후 잇따라 살해…추가 범행 수사 중
2020-05-22 정락인 객원기자
범행 목적과 여죄 확실하지 않아
A씨의 시신이 실종 9일 만인 4월23일 전북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천변에서 발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최씨는 살인을 인정하면서도 이번에는 “돈 문제로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졸림)였고,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가 체포된 뒤 그의 아내가 경찰에 “남편에게 받은 것”이라며 금팔찌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숨진 A씨의 손목에 차고 있던 것이다. 최씨 아내는 경찰에서 “남편이 선물이라고 주기에 출처를 물었더니 ‘중고로 샀다’며 둘러댔다”고 진술했다. 최씨의 아내와 A씨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데다 사건 발생 전까지도 한동네에 살아 가까운 사이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3개월 전 갑자기 사이가 벌어졌다. 이 금팔찌는 과거 최씨의 아내와 A씨 등 몇몇이 우정의 의미로 함께 맞춘 것이었다. 또 최씨의 금융계좌에서는 A씨가 송금한 48만원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사건 당일 A씨를 승용차에 태운 후 4월15일 0시쯤 완주군 이서면 한 굴다리 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이어 A씨의 지문을 이용해 모바일 뱅킹으로 48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 돈은 무직이었던 A씨의 전 재산이었다. 최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A씨 손목에 차고 있던 금팔찌를 빼앗아 아내에게 선물로 줬다. 최씨는 시신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이튿날 오후 6시30분쯤 임실군 관촌면과 진안군 성수면 사이에 있는 천변에 유기했다. 최씨의 스마트폰에서는 범행 전후 ‘살인 공소시기’와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을 검색한 내용이 나왔다. 최씨가 검찰에 송치된 지 하루 뒤인 4월29일 부산진경찰서에는 B씨(여·29)의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B씨 아버지는 “외동딸이 4월15일 집을 나간 뒤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했다. 부산진경찰서는 B씨가 4월15일 부산 집에서 나와 누군가의 승용차를 타고 전라도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18일 전주에 있었던 정황을 파악했다.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포착된 곳도 이 지역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8일 전주 완산경찰서 측에 수사 공조를 요청했다. 경찰은 B씨가 4월18일 늦은 밤과 19일 이른 새벽 사이에 전주 한옥마을 근처 문 닫은 주유소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탄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또 당시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옥신각신하고, 옆에 탄 남성이 B씨의 목을 조르는 듯한 모습이 찍힌 CCTV 영상도 확보했다. 승용차가 주유소를 빠져나갈 때 B씨의 한쪽 팔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축 늘어져 있다가 1시간 뒤 완주에서 전주로 돌아올 때는 차 안에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그사이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국과수 감식 결과 최씨의 차 안에서 발견된 여성의 머리카락이 B씨의 DNA와 일치하면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CCTV에 찍힌 차량도 최씨가 타고 다니며 범행에 이용한 장모 소유의 혼다 차량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때부터 최씨의 연쇄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다 B씨의 시신이 지난 5월12일 오후 3시쯤 완주군 상관면 죽림온천 부근의 한 과수원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발견됐다. 이곳은 A씨가 사체로 발견된 곳과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경찰이 B씨 몸을 확인한 결과 “딸의 팔뚝에 본인 생년월일이 크게 새겨진 문신이 있고, 명치와 옆구리까지 수술 자국이 있다”는 B씨 아버지 진술과 일치했다. 잇따라 드러난 증거 앞에서 최씨는 “모두 내가 죽였다”며 사실상 연쇄살인을 시인했다. 하지만 범행 목적과 여죄가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우선 범행 동기가 확실하지 않다. 경찰은 ‘돈’을 노린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씨는 전주에서 퀵서비스를 운영하며 인터넷 도박에 빠져 수천만원의 빚을 진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두 여성을 살해하고 최씨가 챙긴 금액은 현금 48만원이 전부다. 또 A씨에게서 빼앗은 300만원 상당의 금팔찌는 현금화하는 대신 아내에게 선물했다. 돈을 노리고 연쇄살인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에 최씨의 범죄 전력을 보면 ‘성폭력’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씨는 2012년 공익근무요원 시절 여자친구가 이별을 요구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하고 차에 태워 6시간 동안 끌고 다니며 감금·폭행하고 성폭행까지 했다. 그는 협박과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전북 김제의 한 마트에서 2100만원을 훔친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 또다시 범죄를 저질러 앞서 면한 형기까지 추가돼 수년간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았다. 이처럼 최씨의 범죄는 ‘성폭력’과 ‘돈’으로 연결돼 있다.채팅앱 통해 불특정 여성 접촉
경찰이 최씨의 최근 1년간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보해 보니 이 기간 동안 통화한 사람만 1148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990명은 신변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나머지 158명은 추가 조사 중이다. 경찰은 전북 지역에서 실종된 여성이 최씨와 관련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최씨는 또 랜덤채팅앱(불특정 인물과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불특정 여성들을 만나 왔다. 부산 여성인 B씨의 경우도 이런 방식을 통해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최씨는 한때 ‘씨름왕’으로 이름을 날린 모래판의 유망주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씨름부에서 활동했고, 2002년 소년체전 등 전국대회에 출전해 3개 체급을 석권했다. 최씨는 이를 바탕으로 그해 전북체육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대한체육회가 선정하는 ‘최우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전국 단위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날렸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갑자기 선수 생활을 접었다.